이 나이까지 학교에 다니니 하나 알게 된 게 있다. 내가 언제 졸업할지 나도 모른다는 것. 대학생활 좀 허투루 한 고학번의 푸념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고시 합격이나 로스쿨 진학, 기업 취업을 딱 계획한 시점에 해낸다고 장담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불확실성을 고려한 내 계획은 이랬다. 졸업학점 미리 다 채우고 휴학 상태로 ‘취준’(취업 준비)하다 취업 되면 졸업하는 것이다. 

불가능한 계획이었다. 휴학 학기에는 졸업을 신청할 수 없다. 졸업사정 대상자는 졸업 당해 학기 학적변동 없이 학업 계속 중인 학생이다. 8월 졸업예정자는 1학기를, 2월 졸업예정자는 2학기를 수강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둘. 수업 하나를 신청해 정규학기와 취업 준비를 병행하거나, 휴학 상태로 취업을 준비하다 취업에 성공하면 취업계 내고 정규학기 듣거나. 뭐가 됐든 수업을 제대로 듣기는 힘들다. 형식적으로 요건 맞출 뿐이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졸업을 미루는 이유가 뭐냐고? 학생 신분이 유용해서다. 가장 중요하게는, 휴·재학생만을 대상으로 하는 인턴 자리가 있다. 또 공부하는 과정에서 학교 시설을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을뿐더러 학교에 소속돼 있다는 심적 안정감도 크다.

휴학 중 졸업 신청이 불가한 이유를 학사과에 물으니 ‘학교에 나와 졸업에 필요한 절차를 이행하는 것’이 ‘부득이하게 학교에 적을 둔 채 학업을 쉬는’ 휴학의 취지와 맞지 않아 그렇다는 답변을 받았다. 졸업논문이야 미리 써 놓으면 되고, 요즘에는 졸업에 필요한 각종 서류도 메일을 통해 제출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서류 내러 학교 몇 번 오는 거, 학생 입장에서 그리 큰 수고는 아니다.

다른 학교는 이 문제를 졸업유예제로 푼다. 대학교육연구소에 따르면 국공립대·수도권 사립대의 67%가 이 제도를 실시한다. 고등교육법에도 명문화됐다. 서울대의 경우 지난 총학생회부터 서울대식 졸업유예제인 ‘0학점 등록제’를 제안했으나 시행되고 있지는 않다. 졸업유예제는  학점 수강 의무가 없는 몇 개의 학기를 졸업 직전 허용함으로써 정규학기를 거쳐야만 졸업할 수 있다는 규정을 우회한다. 결국 핵심은 휴학 직후 졸업이다.

휴학 직후 졸업이 되도록 졸업 규정을 바꾸거나 0학점 등록제를 도입하자. 요건 채우기식 정규학기 수강은 불필요하다. 사회에 발붙이려 씨름하는 학생들의 편의를 학교라도 봐줬으면 하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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