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선(자유전공학부·20)
우지선(자유전공학부·20)

우리는 일반적으로 아가페적인 사랑을 ‘대가를 바라지 않는 일방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리고 팬들은 자신이 아이돌을 아가페적으로 사랑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실제 아가페적인 사랑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과 신의 희생’입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팬이 아가페적 사랑을 한다고 말하는 것은 팬이 호혜적이지만 절대적인 사랑을 아이돌에게 베푸는 형태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아이돌과 팬의 관계는 대개 ‘파라소셜리즘’(유사사회적 상호작용) 관계입니다. 한쪽만이(물론 팬만이) 그 존재를 인지하는 관계라는 뜻이죠. 수만 명의 팬은 아이돌을 인지하지만, 아이돌은 팬을 ‘팬’이라는 관념으로만 이해할 뿐 그 객체를 하나하나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파라소셜리즘에 따라, 팬이 아이돌을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숭배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idol’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뜻을 보면 이 정의가 더 와닿을 수 있습니다. 이 단어는 ‘우상’이라는 의미가 있죠. 팬은 신을 숭배하듯 인간에 불과한 존재를 하염없이 숭배합니다. 그리고 그가 우리에게 ‘아가페적 사랑’을 하사하기를 바랍니다. 나 자신은 아이돌에게 그런 사랑을 주고 있으니 자격이 있다고 굳게 믿으면서요.

흥미로운 점은 실제로 아가페적인 사랑에도 조건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가페적 사랑이 종교적으로 해석될 때, 아가페적 사랑을 신으로부터 받는 인간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신에게 경배’하고 ‘신의 존재를 믿는 행위’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에 대한 인간의 사랑과 인간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인간의 희생이 가정돼야 신의 아가페적인 사랑이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해석까지 고려한다면 아이돌에 대한 팬의 사랑을 아가페라고 정의하는 것은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팬들은 아이돌을 일방적으로 사랑하고 숭배하지만 그것을 위해 ‘아이돌의 희생’ 또한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팬이 아이돌에게 이런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파라소셜리즘이 유발하는 거짓 친밀감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최근 숏폼과 유튜브 등의 다양한 미디어 매체로 아이돌의 역할이 늘어나며 신비주의가 사라진 시대에 이런 거짓 친밀감은 소속사들이 적극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홍보 방법이기도 합니다. 팬들은 이제 아이돌과 함께 네 컷 사진을 찍을 수 있고, 그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기분을 느낄 수도 있으며, 라이브를 통해 댓글로 소통할 수 있습니다. 아이돌은 친근함을 표방하며 일상 사진을 올리고 유튜브에 출연하며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팬들은 정말로 아이돌이 가까운 존재가 된 듯한 착각을 느끼게 되고 이런 관계에 둘 사이의 책임이 존재한다고 믿게 됩니다. 혹은 여전히 그를 숭배하며, 그가 자신의 우상으로서 완전무결한 행동만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죠. 

한편으로 팬들은 억울하기도 합니다. 애초에 ‘아가페’와 ‘파라소셜리즘’을 유발하며 돈을 버는 것이 아이돌 업계며, 자신은 그 시스템에 따른 응당한 책임을 요구할 뿐이라고요. 헌신의 대가로 어느 정도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그렇게 잘못된 요구냐는 것입니다.

아가페적 사랑은 결과적으로 신의 사랑이 인간을 구원하는 의미로 나아갑니다. 구원의 궁극적 결과로 인간들이 신을 알고, 신의 희생을 알며, 신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신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아이돌을 통해 구원을 얻기도 합니다.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 옳거나 그르다고 평가하기는 힘들지만, 때로는 우리가 그들로부터 구원을 얻는 아가페적 사랑을 받고 있음을 상기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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