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효진(컴퓨터공학부 박사과정)
송효진(컴퓨터공학부 박사과정)

고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왕을 원했다. 전쟁과 반란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역사 속에서 민중들은 더 강한 왕과 영웅을 부르짖으며 뭉친다. 그러다 어느 정도 국가 체계가 잡히면 기존 틀을 벗어나 부조리한 지도층에 항거하면서 종교개혁이나 시민혁명 등이 이어지기도 한다. 강한 힘과 안정감의 중앙화에 대한 갈망, 그리고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탈중앙화에 대한 갈망 모두는 인류가 지닌 근본적인 실존적 물음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2023년은 어떤 특단의 개혁이나 혁명이 필요하지 않은 안정기를 지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 내면에는 어떤 갈망이 있을까? 그리고 어떤 기술로 이를 충족시키려 할까?

현대의 국가와 구성원은 상호 긴밀하게 연결돼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면면을 보인다. 그 과정에서 국가나 종교 지도자들은 이제 영웅이 되기보다 익명의 대중들로부터 1순위 공격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나아가 첨예하게 맞물려 있는 국가 간의 이해관계나 국제연합기구 등의 역할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코로나19와 같은 상황이 발발해도 기존 국제사회 체제는 크게 어그러지지 않는다. 이는 마치 국가나 현 사회 체제의 근본적인 변혁에 대해 지금의 시민들은 관심이 없거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반면에 범국가적인 탈중앙화에 대한 화두는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는데, 이를 대표하는 기술 중 하나는 바로 블록체인이다.

사람들이 블록체인 기술에 기대하는 바는, 국가나 거대기업의 중재 없이 나의 자산이나 데이터를 통제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개입 없이 컴퓨터 사이의 합의로 데이터를 쭉 쌓아 나가는 블록체인 기술이 이를 가능하게 하리라 믿으며 가상화폐 가치 상승에 힘을 보태 왔다. 이는 인간의 자유, 평등, 정의와 같은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중앙화에 해당하는 국가나 힘 있는 조직에 기대기보다는, 탈중앙화에 해당하는 데이터 주권 확보 또는 거래에 개입하는 중재자 제거와 같은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내려 한다. 그리고 이는 외계인이 침공하거나 연쇄적인 핵 피폭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계속해서 다양한 형태로 그 흐름이 이어질 것만 같은 양상이다.

그러나 현재 분산시스템 연구실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공부하면서 관련 기술 동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람들의 삶에 깊숙하게 들어올 정도로 블록체인 기술이 널리 쓰이기에는 시기상조로 보인다. 이념적으로는 1600년대에 나온 천부 인권 사상에 기반하고 있고 기술적으로는 1970년대부터 연구돼 온 암호 알고리즘, 분산 네트워크 등에 기반하고 있으나, 이를 단일화된 완전한 기술로 풀어내지 못한 채 파편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조금은 다른 분야인 IoT(Internet of Things) 기술도 프라이버시를 비롯한 몇 가지 기술 난제 및 규격 파편화 상황으로 인해 아직 우리 삶에 깊숙하게 들어오지 못한 것처럼, 블록체인도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그리고 이는 각종 규제 상황과 함께 가상화폐 가치에 서서히 스며들며 계속해서 기술 자체에 대한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향후 블록체인 전망에 대한 명과 암은 분명하다. 2023년 8월 기준으로 1조 달러가 넘는 가상화폐 시총, 전 세계적으로 수천 개에 달하는 관련 스타트업의 적극적인 연구개발 활동은 그 너머를 기대하게 한다. 반면에 지난 2021년 당시 트위터 창업자의 첫 트윗 NFT 금액이 35억 원에서 최근 5,000원으로 폭락하는 등 여러 면으로 블록체인 시장 전반의 내림세도 확연하다. 그럼에도 1950년대부터 7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침체기와 성장기를 반복하면서 끝내 우리 삶에 서서히 들어오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처럼, 인간의 깊은 내면에 자리한 탈중앙화라는 갈망을 가만히 어루만지는 블록체인 기술도 머지않아 어떤 형태로든 우리 삶에 조금씩 그리고 깊이 들어올 것이라 조심스레 전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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