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윤 기자(사회문화부)
김재윤 기자(사회문화부)

만으로 스물, 약관(弱冠)의 나이가 됐다. ‘갓을 쓰는 나이’로 사회에 나갈 시기라는데, 빨리 변하는 세상을 좇아가기란 참 버겁다. 많이도 달라졌다. 뉴미디어의 인기,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다. 대부분을 낙관적으로 여기지만,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숏폼 속 ‘챌린지’의 성행이다. 얼마 전까지는 “뉴진스의 하입 보이요!”라고 대답하며 춤을 추더니 요즘은 홍 박사님께 차례가 돌아왔다. “그쪽도 홍 박사님을 아세요?”라며 “홍홍홍” 거리는 춤 동작이 인기를 얻는 모습은 그저 신기하다. 얼마나 유명한지 ‘유튜브 쇼츠’만 켰다 하면 초면인 분들이 죄다 홍 박사님을 아냐고 물으신다. 알고 싶지는 않지만 전부 홍 박사를 찾으시니, 모를 수도 없겠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 댓글을 봤더니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인정하기는 싫으나 긍정적인 의견이 많았다고 말하는 편이 맞겠다. 정말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나 자괴감도 든다.

숏폼 자체가 싫지는 않다. 한두 개만 보려다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버려 놀랄 때도 많다. 짧은 영상의 달콤함은 시청자의 욕망에 제대로 부합한다. 아무리 고든 램지라도 200시간짜리 비프웰링턴 요리 영상을 올리면, 아무도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고기의 단면에서 육즙이 흘러나올 때처럼 스타 셰프의 노력이 값진 결과를 내는 특정 순간이 궁금할 뿐이다. 줄이려는 욕심은 기어이 1분짜리 영상을 만들어 냈다. 그래도 참 고맙다. 어디 가서 아는 체는 해야겠는데 다 보자니 시간은 없고, 핵심만 잘라주니 챙기기 수월하다. 〈오징어 게임〉, 〈더 글로리〉는 유튜브 쇼츠만 봐도 내용을 다 알았을 정도다. 오죽하면 숏폼이 과자를 먹듯 짧은 시간에 소비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라며 ‘스낵컬처’라고 불리겠는가.

그래도 챌린지의 대세는 아쉽다. 챌린지의 뜻은 도전이다. 도전의 정의는 어려운 일에 정면으로 맞서는 싸움이다. 어쩌다 도전이 노래에 맞춰 간단히 추는 춤을 가리키게 됐는지 기묘하다. 최근에는 별 의미 없는 콘텐츠에 ‘도전’이라는 수식어까지 갖다 붙이니 당황스럽다. 재밌는 부분을 간추린 영상이나 상품 리뷰, ‘꿀팁’ 소개처럼 유용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참신하지도 않고 성의도 없다. ‘틱톡 감성’으로 분류되는 몇 개의 노래로 돌려막는 구성이 대부분이다. 노래가 아니면 음성 파일을 틀어놓고 표정 연기만 덧붙인다. 

신선함 없는 챌린지 콘텐츠는 거치는 단계도 비슷비슷하다. 한 영상이 우연히 주목받는다. 그러다 ‘셀럽’의 관심을 받아 밈이 된다. 일반인도 흐름에 동참하며 삽시간에 퍼진다. 소비자들이 조금씩 질려할 즘에 한발 늦은 관공서가 등장하며 끝난다. ‘하입 보이 챌린지’도 오세훈 시장의 참여와 함께 막을 내리지 않았는가. 조심스럽지만 홍 박사 챌린지는 홍준표 시장의 환한 미소와 어색한 춤사위로 종결되리라 예측한다. 그렇게 홍 박사 챌린지는 우리 곁을 떠나겠지만 곧바로 새로운 무언가가 또 나타날 것이다. 봐주는 사람이 있으니 끝없이도 나온다. 물론 보겠다는 사람을 말릴 수야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가볍게 소비되는 콘텐츠라고 분위기조차 가벼울 필요는 없다고, 언젠가는 깨달아 주기를 바랄 뿐이다. 사람들이 챌린지에 요구하는 기대치가 올라가기를 소망한다.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얼음물을 끼얹으며 루게릭병의 고통을 알리고 다음 도전자를 지목하며 기부를 이어가듯, 다른 챌린지도 선한 영향력을 가졌으면 좋겠다. 반복되는 노출이 만든 억지 유행에 이끌리지 말고 창의성과 가치 창출을 챌린지의 경쟁력으로 인정하는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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