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정 객원연구원(그린바이오 과학기술연구원)
이효정 객원연구원(그린바이오 과학기술연구원)

올해도 지구촌 곳곳은 극심한 기상 변화와 이로 인한 크고 작은 재난에 고통받고 있다. 여기에 더해 코로나19는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의 곡물창고를 위협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여전히 국제 식품 가격 유지에 위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개발도상국은 생명과 직결되는 식량안보에 대응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최근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세계 식량안보와 영양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아프리카 지역 인구 100명 중 60.9명은 지난 1년간 충분한 식량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인 것에 반해, 북미와 유럽 지역은 100명 중 8명이 같은 상황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아프리카의 많은 사람들이 식량이 부족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기후변화, 코로나19 등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지표 차이가 시간이 갈수록 커진다는 것이다.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국제사회는 오랜 시간에 걸쳐 노력을 해왔다. 이 중 하나가 공적개발원조(ODA)다. ODA를 총괄하는 OECD 개발원조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제사회가 공여한 금액은 총 2,040억 달러고, 우리나라는 28억 달러로 17위를 차지했다. 이는 우리나라 국민총소득(GNI)의 0.17%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룩셈부르크, 스웨덴, 노르웨이, 독일, 덴마크의 0.7%에 비해 크지 않은 비중이지만, 우리나라는 GNI/ODA의 증가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다. 이를 증명하듯 지난 6월 국제개발협력위원회에서는 내년도 우리나라 ODA 예산을 6조 8,000억 원으로 의결했다. 과학기술 연구개발 예산이 대폭 삭감되고 있는 가운데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되는 ODA 예산이 파격적으로 늘어난 것이 과연 반갑기만 한 일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때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전환된 나라’라든지 ‘우리나라의 개발 경험 전수’와 같은 진부한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선진국으로서 국제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우리나라만의 원조 철학이 과연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ODA는 단순한 봉사활동과는 다르다. 불쌍한 아이들 앞에서 사진 찍고, 후원을 호소하는 일부 몰지각한 단체의 행위가 비난받을 만큼 국민들의 인식도 많이 개선되고 있다. 앞으로는 그 나라의 제도를 개선하고, 공무원과 과학자들의 역량 강화를 통해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접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관점에서 우리나라의 ODA는 지금까지 많은 노력을 해 온 것이 사실이지만,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사업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개선해야 할 것들이 보인다. 

우리는 통일벼 품종을 개발하고 농민에게 보급해 빠른 시간 식량 증산을 이룬 경험이 있다. 국제사회로부터 많은 원조를 받으며 우리나라가 발전하던 시기에는 마침 국가 경제도 빠르게 성장했고, 중앙 정부와 지방의 마을 단위까지 거버넌스 체계가 잘 작동했으며, 단일민족으로 구성돼 있었다.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 성공사례가 아프리카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까? 잉여 쌀을 제공하는 것으로 개발도상국에서 지속 가능한 식량안보가 확보되기를 기대하면 곤란하다. 재난지역에 대한 긴급구호 성격의 식량 지원과 구분돼야 한다. 그러나 2018년부터 진행해 온 쌀 지원사업의 성과 관리도 제대로 되고 있는지 확인이 어려운 실정이다.

지원받는 나라의 사회문화적인 배경은 어떤지, 경제적 여건, 기후변화와 같은 중장기적인 관점과 함께 그 나라 과학기술의 발전 상황과 여건을 파악하고, 이들의 역량을 길러줌으로써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쉽지 않은 지난한 과정이지만 인내심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 마치 졸부처럼 갑자기 증액된 예산으로 허둥지둥 프로젝트 예산을 늘리는 데 급급한 모습이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국가 세금이 쓰이는 활동인 만큼 ODA 분야에 있는 전문가들과 담당 공무원들이 소명 의식을 가져야 하고, 무엇보다 우리나라가 어떤 철학으로 ODA를 지원하는지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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