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박정훈 전 연구진실성위원회 위원장

올해 초 등장한 ChatGPT로 인해 어느 때보다 연구진실성에 대한 학내 관심이 뜨거운 요즘, 서울대는 연구진실성을 어떻게 보호하고 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연진위) 위원장을 지내며 연구진실성 확보에 힘써 온 박정훈 명예교수(법학과)를 만났다. 14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서울대 연진위에 몸담은 박 교수는 연진위의 산증인과 다름없었다. 지난 1일(금) 정년퇴임을 맞아 위원장으로서의 직무를 마무리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Q. 서울대에 연진위가 설립된 지 18년 차를 맞았다. 서울대에서 연진위가 구성됐던 이유에 대해 설명해 달라.

A.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서울대 연진위의 설립 배경은 2005년 말 발생한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이다. 당시에는 해당 사건을 처리할 정부의 훈령이나 법령상의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아 서울대를 상대로 경찰이나 검찰의 형사 수사가 진행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헌법에 명시된 대학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학교 자체적인 조사를 목적으로 하는 임시위원회가 소집돼 2005년 12월부터 2006년 1월까지 운영됐다. 이후 정식으로 위원회 규정을 만들어 2006년 2학기에 출범한 것이 서울대 연진위의 기점이자 한국의 첫 번째 ‘연구진실성위원회’다.

 

Q. 연구윤리 및 연구진실성의 개념과 위반 사항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달라.

A. 우선 연구진실성과 연구윤리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연구진실성은 연구에 거짓이 없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연구윤리는 진실성 개념에 더해 연구 자체의 정의로움까지 포함하는 조금 더 넓은 개념이기에, 두 개념이 항상 같은 의미로 쓰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연구윤리위원회’라는 명칭을 사용하려 했다. 그러나 서울대 연진위는 연구진실성에 초점을 둔 조직이기에 ‘연구진실성위원회’라는 이름을 고집했고, 지금까지도 그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 

연구진실성 위반 사항에는 4가지가 있다. 첫째, 데이터 허위 작성은 거짓된 데이터를 만들어 연구에 활용하는 것으로, 4가지 중 가장 중한 사항이다. 둘째, 아이디어·문장 표절은 다른 사람의 연구 결과를 자기 것인 양 사용하는 것이다. 셋째로 자신의 연구를 인용 없이 재사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바로 자기 연구성과 부당 중복사용이다. 마지막으로 공동 연구에서 미참여자를 저자로 등재하고 참여자를 저자에서 빼거나 저자의 순서를 기여도와 다르게 정하는 부당 저자표시가 있다. 

 

Q. 연구진실성 확보를 위해 연진위는 어떤 업무를 수행하는가?

A. 고귀한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형법의 가치인 것처럼, 연구진실성 제도의 가치는 진실한 연구와 연구자를 보호하는 데 있다. 연진위는 연구진실성이 위배되는 상황을 조사해 명확히 밝혀 연구진실성의 가치를 지킨다. 한편 연진위는 직권으로 조사하지 않으며 제보를 받아 조사에 착수하는데, 진위의 조사 대상에는 고의적인 위반뿐만 아니라 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에 대한 위반도 포함된다. 조사를 마친 후 연구진실성 위반의 혐의가 인정되면 이를 총장에게 보고하고 조사 대상자와 제보자에게 통지한다. 위반 사항이 없으면 무혐의로 판정된다. 실제로 내가 연진위에서 활동했던 기간에 조사된 약 180건 중 절반은 혐의 없음으로 결정됐다. 연진위는 억울함을 해소하는 기능도 수행하는 것이다.

 

Q. 행정법을 전공한 법학자인데, 연진위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A. 연진위는 대학 내 연구의 체계를 마련하고 위반 사항을 조사 및 결정한다는 점에서 행정법과 형사법의 특성이 결합돼 있는 조직이다. 나는 행정법을 전공하기도 했고, 실제 형사재판을 진행했던 판사 경력을 가지고 있어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 발생 당시 본부의 숨은 참모로 활동한 바 있다. 이후 연진위 위원으로 임명됐는데, 당시 법학계와 실무계에서 연구진실성을 소홀히 해왔다는 문제의식을 느껴 위원직을 수락하게 됐다. 

 

Q. 14년이라는 세월을 연진위와 함께하면서 보람찼던 일과 아쉬웠던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

A. 연진위 위원과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연구진실성 확립에 약소한 기여를 했다는 것이 가장 보람차다. 내가 처음 위원으로 임명됐을 시기인 2009년과 지금을 비교하면 연구진실성 수준이 매우 향상됐다. 데이터 허위 작성은 거의 없어졌고 부당 저자표시 또한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다. 위반 수준 또한 경미한 것이 대부분일 정도로 사정이 나아졌다. 연구진실성에 대한 인식이 발전했다는 점이 뿌듯하다. 한편 연진위 조사로 마음에 상처를 입은 분들이 있다고 들었다. 동료로서 최선을 다했지만 조사 대상자의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자리를 빌어 양해를 구한다.

 

Q. 오늘날 한국에서 연구진실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까지의 과정은 어땠나?

A.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은 연구진실성이라는 개념에 큰 관심이 없었다. 당시에는 다른 나라의 연구 성과를 베끼거나 단순히 번역한 것을 논문으로 내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1990년대부터 연구진실성 위반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고, 21세기에 들어서는 연구진실성 위반이 다른 연구자들과 다른 나라에 피해를 끼칠 수 있음을 심각하게 인식하게 됐다. 이처럼 오늘날 연구진실성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것은 한국이 학문적 선진국이 돼 참다운 연구를 보호하고 연구자들을 격려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본다.

 

Q. 위원장을 은퇴하면서 연진위와 서울대에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우선 수고하신 위원들께 도와주고 함께해 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 서울대에는 연진위처럼 계속 유지되는 상설위원회가 얼마 없다. 이는 연진위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잘 보여준다. 남은 위원들께서 자긍심을 가지고 위원회의 위상을 지켜주시기를 바란다. 한편 연진위는 대학의 자치와 학문의 수준 고양에 있어 필수적인 기관임에도 지원이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나는 2009년에 위원으로 임명될 당시부터 지금까지 봉사 정신으로 임했지만, 위원들의 일방적인 희생보다는 그에 맞는 대우와 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제도를 통한 체계적인 지원과 관심을 본부에 부탁드린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박정훈 위원장은 연구자가 가져야 할 덕목으로 호학(好學), 학문을 좋아하고 사랑할 것을 강조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학문을 하고 연구 자체를 즐겨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연구의 양에만 집착해서 성급한 연구성과를 내기보다는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연구를 자기 말과 생각을 통해 진행해야 한다”라며 “연구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스스로의 것이므로 자신의 성장을 위해 인내심을 가지고 연구하기를 바란다”라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사진: 손가윤 사진부장

yoonpat2701@snu.ac.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