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의(정치외교학부·21)
홍재의(정치외교학부·21)

지난 몇 달 새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 ‘신림역·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등 믿을 수 없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했다. 각 사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될 때마다 우리는 분노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사전에 방지할 수는 없었는지, 모두가 의문을 품고 지켜봤다. 그러나 사건을 향한 우리 사회의 논의는 본질을 다루기보다는 피상적인 수준에 그쳐, 단순히 누가 가해자인지, 가해자가 얼마나 악마 같은 존재인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가해자와 피해자 간에 형성된 기울어진 권력관계를 방치하고, 가해자의 분노가 불특정 다수를 겨냥할 때까지 안주한 사회 구조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비슷한 사건이 거듭 발생함에도 이를 예방하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쉴 틈 없이 밀어닥치는 이슈의 격랑 속에서 점차 사건의 본질은 잊힌다. 각각의 사건은 심층적으로 검토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이 제시돼야 할 필요가 있지만, 책임 있는 기관은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하다. 거시적인 사회 문제로부터 비롯한 책임을 미시적인 개인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순간을 모면한다. 감정적 대응에 국한된 여론이 형성된다. 이런 대응에 따라 누군가를 처벌하는 것으로 사건이 종결되는 듯한 보도가 이어진다. 그와 함께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한다. 점차 기존 사건의 본질적 해결은 멀어지고, 새로운 사건에 대한 분노가 사회를 물들인다. 그렇게 우리는 사건을 망각한다.

지금의 언론은 사건을 신속하게 다루는 것에 치중한다. 그런 언론 환경 속에서는 사회 구조의 개혁을 통한 본질적 문제 해결이 이뤄질 수 없다. 문제 해결의 부재와 더불어, 가속화된 사건 발생은 점차 사건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보다 사건의 전개 자체에만 관심을 두게 한다. 평면적이고 자극적인 정보의 나열로 인해 정보들의 연관 속에서 형성되는 맥락은 점차 희미해진다. 시간을 충분히 들여 자세히 살펴봐야 할 사안들을 수박 겉핥듯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해결되지 않은 사건은 점차 축적되고, 사회 속에 잠재된다. 압력이 임계점에 달하는 순간 또 다른 사건이 분출된다. 이런 악순환이 자아낸 위험이 우리 사회를 지금에까지 이르게 한 것이다.

언론의 보도에 수동적인 여론은 한 사건의 담론이 채 무르익기도 전에 또 다른 사건으로 관심을 돌린다. 이런 현상에 대한 분석을 단순히 한국인의 ‘냄비 근성’이라는 혐오 시각으로 갈음해서는 안 된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 검증되지 않은 다양한 정보가 몰아치는 현대 사회의 언론 매체 특성상, 수용자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시간을 들여 각각의 정보를 분석하는 일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에 따라 언론 보도에 대한 이성적 접근보다 단편적인 감정적 대응이 주를 이룰 수밖에 없다. 이런 반응은 악순환의 골을 더욱 깊게 한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담론을 형성해 내고 사건의 뿌리가 어디에서부터 시작했는지 밝혀낼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신속함의 화려함에 눈길을 빼앗기기보다는 꾸준함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느리더라도 정확하게 짚고 갈 용기가 필요하다. 앞선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스치듯 관심을 갖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간을 들여 노력해야만 한다. 이미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하고, 할 수밖에 없는 일을 미루기만 한다면 어떤 희망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함께, 찬찬히, 걸어갈 수 있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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