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혜인 기자(취재부)
유혜인 기자(취재부)

지긋지긋한 버릇이 있다. 한시라도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초조해하는 버릇. 대학교에 오면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심해졌다. 짧다면 짧은 4년을 알차게 보내고 최대한의 결과를 끌어내겠다는 생각은 나를 더 강하게 압박했다. 그렇게 적성에 맞지도 않은 활동을 억지로 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아무 활동을 하지 않으면 게으르다며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한심한 시기를 보냈다. 얻은 것도 많고 뿌듯할 때도 있었지만 그 과정을 제대로 즐긴 적은 없는 것 같다. 내가 이런 시기를 지나 나를 다시 돌아볼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사고 덕분이었다. ‘이러고 살아야 하나?’

누군가는 이 질문을 포기하기 위한 변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에게 이 물음은 정말 단순하게도 활동의 효용성에 관한 것이었다. 이렇게 압박감을 느끼며 끊임없이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자 발악하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무작정 바쁘고 많은 활동을 했다고 해서 대학 생활을 알차게 보냈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자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

학보사 기자를 하며 많은 사람과 만나고 교수님과 대화하면서 그 대답을 찾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인생 선배로서 대학 생활을 어떻게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기사 작성을 위한 질문이었지만 동시에 내가 진실로 답을 듣고 싶은 물음이었다. 그들이라면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좋은 방법을 말해줄 것이라고 믿었지만, 질문의 답은 하나같이 실망스러웠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그냥 시간을 낭비하라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따지지 말고 시간을 낭비하며 청춘을 만끽해라. 이 대답을 찬찬히 뜯어봤다. ‘최고 효율, 최대 생산’이라는 내 인생의 목표를 한 번에 무너뜨리는 대답을 쉽게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깊이 고심할수록 나는 이 대답을 해답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을 낭비하라는 말이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어떤 활동을 함에 있어 시간이라는 자원을 쓰는 것에 얽매이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각계의 권위자라는 분들은 대개 ‘어쩌다 보니’ 얻게 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리고 그 ‘어쩌다 보니’까지의 과정에는 누군가 시간 낭비라고 무시할 수도 있는 활동이 있었다. 인생은 애초에 치밀한 계획을 통한 최고 효율, 최대 생산이 불가능한 구조다. 오히려 어쩌다 보니 일어나는 일이 나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효율성이 떨어지더라도 하고 싶은 일이라면 상관없다. ‘최고 효율’이라는 목표는 버리도록 하자. 느긋한 마음으로 도전해도 괜찮다.

청춘을 만끽하라는 말은 행복도 생산물 중 하나로 생각하자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알찬 대학 생활’을 행복감보다 영어 점수, 학점 등 정량적인 요소로 판단한다. 하지만 내가 만난 사람들은 대학에 다니면서 얼마나 많은 추억을 쌓았고 행복했는지에 더욱 초점을 맞췄다. ‘즐거웠으면 됐다’라는 태도였다. 다소 무책임해 보이기도 하는 대답이었지만 사실 타당한 말이다. 그동안 왜 행복이라는 요소를 생각하지 못했을까. ‘최대 생산’에 행복도 포함되는 것을 잊지 말자. 

느긋하게 청춘을 만끽하자.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한, 단순하지만 확실한 대답이다. 이 사실을 깨닫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누군가에게도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남들과 비교하며 하염없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짓은 그만두자. 그것은 당신에게도 당신의 청춘에게도 실례되는 행동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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