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 故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집회를 찾다

▲교권보호합의안 의결을 촉구하는 추모집회 참가자들의 모습.
▲교권보호합의안 의결을 촉구하는 추모집회 참가자들의 모습.

지난 4일(월),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교사의 49재를 맞아 국회의사당 앞에서 ‘故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집회’가 개최됐다. 주최 측에 의하면 이날 5만 명이 넘는 교사와 시민이 의사당 앞에 모였고, 전국 곳곳에서 진행된 추모집회에 참가한 인원을 포함하면 12만 명 이상이 추모에 동참한 것으로 파악된다. 의사당 앞을 가득 메운 검은 옷의 교사들은 깊은 추모의 마음과 변화를 향한 결연한 다짐을 드러냈다.

 

국회의사당 앞을 뒤덮은 검은 물결

이날 집회는 서이초등학교에서 사망한 교사를 애도하고 교육권 보호를 위한 제도적 개선을 촉구하고자 개최됐다. 집회는 오후 4시 반 참가자들의 헌화 이후 사망한 교사를 기리는 묵념으로 시작됐으며 이후 유가족의 편지 대독, 학교 급별 교사들의 교육계 전반의 문제를 성토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4대 종교단체 인사들도 성명서를 통해 “먼저 가신 선생님들과 남겨진 유가족, 그리고 동료 교사들의 큰 슬픔과 고통에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라며 위로의 말을 전했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추모를 마친 참가자들은 ‘이제 우리가 지키겠습니다, 우리가 바꾸겠습니다’라는 표어를 걸고 교권보호합의안 의결을 촉구했다. 이 합의안은 지난달 22일 5개 교원단체가 국회에 발표한 입법 요구안으로,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정상적 교육이 가능할 수 있도록 법 개정 △수업 방해 학생 분리 및 학교장 보호제도 입법화 △학교 민원관리시스템 구축 및 법제화 △교원지위법 개정을 그 골자로 하고 있다. 이런 요구의 배경에는 작금의 사태가 학생이나 학부모 개인의 책임이라기보다 교사를 보호할 제도가 부재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은 한 초등교사는 “학부모가 수업에 난입해 욕설을 퍼부을 때 학교와 교육청은 어떤 제도적 도움도 주지 않았다”라고 성토했으며, 다른 고등교사 역시 “교사가 강력범죄 대응, 과도한 행정업무, 악성 민원 대응 모두를 떠맡은 시스템 속에서 정상적인 교육을 진행할 수 없다”라며 재발 방지를 위해 교사의 업무 범위가 정상적으로 재설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억압에도 모인 수많은 사람들

개최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교육부는 지난달 27일 보도자료를 통해 9월 4일 예고된 집단행동을 학습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라 규정하고 집회에 참여하는 교사에게는 파면·해임 등의 징계 혹은 형사 고발까지 검토할 예정임을 밝혔다. 이 과정에서 기존 집회의 운영팀이 해산되고 새로 꾸려지는 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교육부의 이런 위협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사가 모였고, 여러 학교에서 재량휴업일 혹은 단축수업을 진행하며 뜻을 함께했다. 집회 참가자 초등교사 A씨는 “학교, 학부모와 협의해 교육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단축수업을 진행했다”라며 집회에 참여한 경위를 밝혔다.

이 때문에 집회에서는 교육부에 대한 강도 높은 규탄이 행해졌다. 국제교원노조연맹은 “교사의 권리를 부인하려는 한국 정부의 그 어떠한 시도라도 배격할 것이다”라고 밝혔으며, 4대 종교단체도 성명서를 통해 “추모에 대한 탄압을 멈추고 선생님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라며 교육부를 비판했다. 참가자들은 “징계운운 권한남용 교육분열 이주호는 사과하라”라고 외치며 분노를 드러냈다.

 

멈추지 않을 움직임

이날의 집회는 무너진 공교육의 현실에서 고통받던 교사의 목소리가 분출된 장이었다. 집회는 충돌 없이 차분하고 질서정연하게 마무리됐지만, 참가자들이 느낀 슬픔과 울분의 크기는 거대했다. 고등교사 B씨에게 참여 소감을 묻자 “말을 시작하자면 참아왔던 슬픔이 북받쳐 오른다”라며 울먹였고 “반드시 실질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라고 결연한 뜻을 내보였다. 

집회는 마무리됐지만 계속해서 행동할 의지를 보인 이들도 많았다. 사회교육과에 재학 중인 참가자 C씨는 “꿈꿔왔던 교육계의 모습과 현실이 너무 다르다는 사실에 두려웠고, 그렇기에 변화를 위해 거리에 나왔으며 앞으로도 시위에 참여하겠다”라며 “서울대 사범대 내에서도 관련된 논의가 계속 이뤄지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이강민 씨(영어교육과·23)는 “교권을 위협받은 선생님들의 경험을 직접 들으며 이전과는 다른 울림을 느꼈다”라며 “SNS 공유부터 청원과 시위 참여까지, 교사분들께 힘을 보탤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나서겠다”라고 의지를 보였다. 정현정 씨(초등교사·40) 역시 “앞으로도 계속해서 행동하겠다”라며 “지금까지 망설였던 분들도 이제는 용기를 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집회의 운영진이었던 초등교사 D씨는 “교권 회복을 위한 본격적인 법안 의결과 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단체의 힘이 필요하다”라며 “노조들과 교원단체가 전면에 나서 정부 및 국회와 교섭하며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라고 단체 차원의 적극적 연대를 요청했다.

교사들은 ‘공교육 정상화’가 모든 교육 주체를 위해 필요한 것임을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교권의 추락을 권리의 대립으로 보고 교권 회복을 위해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는 등 다른 주체의 권리를 제한해야 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었으나, 현장의 목소리는 달랐다. 발언대에 선 초등학교 교사의 “학생 인권은 지금보다 더욱 신장돼야 한다”라는 발언은 현장에서 큰 호응을 받았고, D씨 역시 “학생 인권과 교사 인권은 함께 보장받아야 한다”라고 전했다. 발언대에 선 학부모는 “아이가 공교육을 통해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교사가 정상적인 교육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교권 침해의 현실을 성토하는 공립 유치원 교사.
▲교권 침해의 현실을 성토하는 공립 유치원 교사.

스스로를 검은 점이라 칭한 참가자들은 검은 물결을 이뤘고, 다시는 어떤 교사도 홀로 죽음을 택하지 않도록 공교육을 지키고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비상식이 상식이 되게 해 달라는 절박한 외침을, 모든 교육 주체가 함께 행복한 공교육이 되게 해 달라는 그 말을 경청해야 한다. 공교육 정상화의 순간까지 슬픔과 분노로 계속 싸워나갈 그들을 응원한다.

 

사진: 박선영 기자

leena1208@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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