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식량주권의 최후 보루, 종자 주권

전 세계적으로 극심한 기온상승, 폭우 등의 기후 변화와 공급망 붕괴가 일어나면서 식량 보급에 적신호가 켜졌다. 우리 식탁의 곡식, 과일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국의 식량 생산을 결정할 권리인 식량주권과 그 근간인 종자 주권에 주목해야 한다.

 

왜 ‘식량주권’인가?

이상 기후 현상, 도시화로 인한 농경지 감소 등으로 식량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서 한국에서는 유례없는 식량 부족이 예상됐다. 실제로 국내 식량 총생산량은 2000년에 비해 2017년 21.0% 감소했다. 그러나 일반 소비자는 이 위기를 체감하지 못했는데, 한국에서 소비하는 식량 대부분이 외국에서 수입해 충당된 것이기 때문이다. 2021년 국회 예산정책처의 「곡물 수급안정 사업·정책 분석」에 따르면 2019년을 기준으로 한국은 곡물 소비량의 77%를 수입에 의존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윤종열 연구위원은 “대부분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기 전 식량을 수입해 조치를 취하기 때문에 국민이 위기를 체감하지는 못한다”라며 “식량안보가 확보된 상태에서는 이처럼 수입을 통해 국민에게 식량을 보장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식량안보가 확보됐다고 해서 한국의 식량 위기가 근본적으로 타개된 것은 아니다. 식량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식량주권이 중요하다. 식량주권은 개별 국가가 제3국에 의존하지 않고 국민에게 안전하고 영양가 있는 식량과 식재료를 공급할 수 있도록 식량 생산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즉 식량주권이 잘 확보된 상태란 한 나라 안에서 식량이 자급 가능한 상태를 의미하며, 이는 국내 식량 소비량 중 국내 식량 생산량을 나타내는 식량자급률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식량자급률에는 쌀·보리·사료용 작물과 같은 각종 곡물의 자급률, 채소류·과일류·육류의 자급률이 포함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해외곡물시장 동향」 제12권 제2호 발췌.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해외곡물시장 동향」 제12권 제2호 발췌.
▲Economist Intelligence Unit 「Global Food Security Index 2022」 발췌.
▲Economist Intelligence Unit 「Global Food Security Index 2022」 발췌.

이 중 특히 곡물자급률을 살펴보면 한국의 식량주권이 상당히 취약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022년에 발표한 「연도별 양곡 자급률」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45.8%, 그중 곡물자급률은 20.2%에 그쳐 OECD 38개국 중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임송수 교수(고려대 응용경제학과)는 “주요 곡물자급률을 살펴보더라도 밀 0.8%, 옥수수 3.6%, 보리 38.2%, 콩 30.4% 등으로 매우 낮은 편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최근 이상 기후 현상이 심화되면서 식량 수급 변동이 심해지고 있다. 김재윤 교수(공주대 식물자원학과)는 “여름에 강하고 갑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지는 경우가 잦아져 농산물 수확에 문제가 발생했고, 수확하지 않은 이삭이 발아하는 등 곡물의 품질도 낮아졌다”라며 우려를 표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식량주권이 바로 서지 못하면 향후 국경 폐쇄나 이동 제한 조치 등과 같은 규제로 물류 이송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언제든 식량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종덕 명예석좌교수(경남대 사회학과)는 “팬데믹 당시에도 국제적 공급망의 폐쇄로 여러 국가가 식량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다”라며 “최근에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식량 생산 및 수출량이 줄어들면서 수입이 어려워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불안정성이 커지자 인도와 같은 주요 곡물 생산국도 수출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관련 작물 가격은 20~30%가량 치솟았고, 식량 불안정성도 증폭됐다. 정규화 석좌교수(전남대 융합생명공학과)는 “주요 곡물의 국제적 식량 공급 위기 상황에서 식량을 가진 나라가 수출을 권리처럼 행사하게 되면, 식량주권을 확보하지 못한 한국의 위기가 가중될 것이다”라며 식량주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식량주권, 종자가 핵심

식량주권 확보를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종자 주권이다. 종자 주권이란 종자를 국내에 보존하고 개발·사용하게 함으로써 외국에 의존하지 않고 종자 사용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를 말한다. 종자 주권을 확보하지 못하면 자국의 힘으로 식량을 생산하기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청양고추는 한국이 1983년 개발한 종자지만 IMF 당시 독일의 종묘회사 바이엘(Bayer)에 소유권을 빼앗겼다. 때문에 한국은 지금까지 청양고추를 심을 때마다 해당 회사에 허락을 받아야 하며, 막대한 로열티도 지급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고희종 교수(농림생물자원학부)는 “종자 주권이 없으면 막대한 사용료를 부담할 뿐 아니라 종자를 온전히 수입에 의존해야 하므로 식량 수급이 불안정해진다”라고 설명했다. 임송수 교수도 “물 및 농지와 더불어 종자는 농업자원의 핵심이다”라고 덧붙였다.

우리 땅과 기후에 적절한 종자를 개발하기 위해서도 종자 주권은 중요하다. 윤종열 연구위원은 “병충해나 가뭄 등의 이상 기후에 잘 적응하는 종자를 개발해야 국내에 안정적 식량 수급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김재윤 교수는 유전자원 확보의 관점에서 종자를 확보해야 함을 주장했다. 김 교수는 “종자 주권이 없다면 다양한 유전자원 확보도, 땅과 기후에 적응할 양질의 종자 개발도 불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종자 산업이 앞으로 걸어야 할 길

현재 한국의 종자 업계는 대부분 영세한 수준이며, 상당 부분의 종자를 외국에서 수입해 충당하고 있다. 국립종자원이 2021년에 발표한 「종자 산업 현황 조사」에 따르면 2020년을 기준으로 국내 종자 업체 중 89.4%가 종자 판매액이 5억 원 미만인 소규모 업체고, 농림축산식품부가 2023년에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국내 종자 시장 규모 또한 세계 종자 시장의 약 1.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농작물 및 과일의 종자 자급률도 매우 낮은 수준이다. 대표적인 과일류인 감귤, 포도, 배, 사과의 종자 자급률은 각각 2.5%, 4.1%, 14.2%, 20.2%로 나타났고 대표적인 채소 작물인 양파 또한 29.1%의 낮은 종자 자급률을 기록했다. 이렇듯 많은 종자를 해외에 의존한 나머지, 2006년부터 2015년까지 한국이 종자를 사들이면서 다른 나라에 지급한 로열티는 약 1,457억 원인 반면 수입으로 벌어들인 로열티는 약 9억에 불과했다.

우리나라 종자 산업이 다양한 문제를 가지게 된 원인 중 핵심은 투자 부족이다. 국내 종자 시장이 작고 투자가 활발하지 않아 우리나라 기업은 우수한 자본력을 갖춘 다국적 기업 사이에서 허덕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고희종 교수는 “적극적인 투자로 국내 종자 시장을 키워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2017년 국립종자원이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2016년을 기준으로 한국 전체의 종자산업 투자금은 746억 원으로, 타국의 단일 종자회사가 매년 1조 원 이상을 투자하는 것에 비해 현저히 적은 수준이다. 정규화 교수는 “한국의 연간 투자 금액이 세계 최대 종자 회사의 연간 투자 금액의 절반도 안 된다”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종자 업계에 투자를 꺼리는 것일까? 바로 자본 순환이 느리기 때문이다. 고희종 교수는 “종자 하나를 개발하는 데 최소 5년 이상이 소요된다”라며 “안 그래도 종자 산업의 규모가 작은 한국인데 투자로 이익을 얻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리니 더욱 투자를 꺼리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선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종자 개발 주기부터 단축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윤종열 연구위원은 디지털 육종 기술*의 개발과 적용을 언급했다. 윤 연구위원은 “현재 7~8년인 생산 주기를 적어도 3~4년으로 단축해야 한다”라며 “좋은 형질을 가진 부모 세대 유전자의 조합을 빠르게 분석해서 F1 종자*를 생산하는 생명공학 기술이 도입되기 시작했다”라고 첨단 육종 기술을 활용한 분석과 교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래를 위한 양질의 종자 개발도 중요하다. 김재윤 교수는 “종자는 작물의 핵심적인 유전정보를 가졌다”라며 “종자 종의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육종 기술 연구 능력을 강화해 최종적으로는 이상 기후를 이겨낼 수 있는 종으로까지 개량해야 한다”라고 종자 개발의 비전을 제시했다. 윤종열 연구위원 또한 “고온에 적응하는 종자, 병충해에 강한 종자 등 종자의 특성을 살린 개발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이후 그는 “개발한 양질의 종자 생산을 유지할 수 있는 과학적 생산 구조도 점점 갖춰나가야 한다”라고 종자 산업의 방향성을 제언했다. 

뿐만 아니라 특정 분야의 종자에만 기술력과 자본을 투자하기보다는 다양한 종자를 확보하려고 노력할 때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식량주권을 갖출 수 있다. 고희종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는 고추·배추·마늘·양파 등과 같은 채소 종자 위주로 개발하고 있다”라며 “채소 종자는 세계 종자 시장의 13%에 불과할 만큼 작은 수준”이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어 고 교수는 “종자 수입에 의존하는 대신 정부에서 사료 종자 등 다양한 식량 작물 종자를 적극 확보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재윤 교수 또한 “결국 다양한 종자 종 확보를 통한 식량 생산이 한국의 종자 주권 자립의 핵심이다”라며 신뢰할 수 있는 다양한 종자 제공 시스템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F1 종자: 순수한 계통인 품종의 교배로 얻어진 잡종 제1세대 종자.

*육종 기술:기존의 품종을 개량하여 실용 가치가 더 높은 종으로 개발하는 농업 기술.

 

우리는 식량 없이 살 수 없다. 그럼에도 소비자인 우리는 식량이 공급되지 않는 상황을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기후변화, 전쟁, 불확실해진 식량 공급망 등 다양한 요소들이 여전히 우리의 식량 주권을 옥죄고 있다. 만약 지금과 같이 경각심을 가지지 않는 경향이 지속된다면 식량 위기가 닥쳤을 때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우리 식량을 우리의 뜻대로 행사할 권리를 찾고 위기에 대처할 때다.

 

삽화·인포그래픽: 박재아 기자 

0204jae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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