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공연계 배리어프리의 현주소를 알아보다

누군가에게는 설렘과 열기의 온도를 함빡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거나 어려운 냉혹한 공간이다. 공연장에서는 누구나 환대받아 마땅한데, 장애인에게는 반가움의 미소와 손길이 여전히 간절하다. 휠체어를 타든 목발을 짚든, 보청기를 끼든 흰 지팡이를 들든 상관없이, 그들의 발걸음을 공연장으로 사뿐히 옮기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배리어프리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배리어프리 회차 안내: 음성해설, 한국 수어통역, 한글 자막기기, 무대 모형 터치 투어 서비스가 제공됩니다. 

※접근성 안내: 장애인 전용 주차장, 휠체어 경사로, 휠체어석, 장애인 화장실, 피난 안내 촉지도, 수동 휠체어, 계단 이송용 보조도구, 음성증폭기

이것은 국립극단에서 공연하는 〈이 불안한 집〉의 안내 사항과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의 접근성 페이지에 적힌 내용이다. 전자는 장애인의 내용 이해를 도와 정보적 접근성을 높이는 ‘배리어프리 공연’을 위한 노력이고, 후자는 장애인의 물리적 접근성을 높이는 ‘배리어프리 공연장’을 위한 노력이다. 

공연계에 장애인도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노력의 바람이 불어온다. 공연장까지의 물리적 접근성뿐 아니라 공연 내용이나 관련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요소도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콘텐츠접근성연구센터 서수연 대표작가는 “신체의 불편함이나 감각의 소실로 다양한 정보를 습득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서비스와 기기들이 도입되고 있다”라며 “음성해설, 수어 통역, 자막 해설이 주로 사용되고, 무대나 소품을 미리 만져보는 터치 투어나 안경에 자막이 보이는 스마트글라스, 음악을 진동으로 느낄 수 있는 웨어러블 조끼 등도 등장했다”라고 전했다. 

▲가방을 멘 그림자 수어 통역사들이 배우와 같은 동작을 취하며 연습하고 있다. (사진제공: 국립극장)
▲가방을 멘 그림자 수어 통역사들이 배우와 같은 동작을 취하며 연습하고 있다. (사진제공: 국립극장)

오는 14일(목) 국립극장에서 재연되는 〈합★체〉는 이런 배리어프리 공연을 위한 새로운 시도의 결정체다. 이들은 모든 회차에서 한국 수어 통역, 한글 자막, 음성해설 등을 사용해 접근성을 높이는 동시에 ‘그림자 수어 통역’이라는 색다른 시도를 기획했다. 국립극장 공연기획팀 이승일 PD는 “일반적인 수어 통역과 달리 배우와 가까이 수어 통역사를 배치하면서 언어뿐 아니라 배우의 감정도 함께 공유할 수 있게 했다”라며, “농인의 시선이 분산되지 않아 몰입감을 높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합★체〉는 라디오 DJ 역할의 ‘지니’라는 인물을 통해 실시간으로 극에 관한 음성해설을 전달하고, 배우의 연기와 노래에 수어 통역이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했다. 이 PD는 “개방적 배리어프리 요소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풍성한 문화를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전했다.

▲관객이 촉각 카드를 만지며 무용 공연을 즐기고 있다. (사진제공: 아크로·대학로예술극장)
▲관객이 촉각 카드를 만지며 무용 공연을 즐기고 있다. (사진제공: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에서 올린 무용공연 〈빨래방: 쌉소리〉에서도 장애인의 공연 이해를 도우려는 독특한 시도가 돋보인다. 〈빨래방: 쌉소리〉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해설과 더불어 촉각 카드와 체험형 전시를 진행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극장운영부 이유진 PD는 “시각장애 어린이가 읽는 아동 촉각 도서에 착안해 촉각 카드를 제작했다”라며 “촉각 카드는 무용수의 움직임과 표현을 촉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든 점자 스크립트”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실은 가뭄

이렇듯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지만, 여전히 수많은 장애인이 문화예술 공연을 관람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서울문화재단의 「2022 서울시민 문화향유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의 경우 오프라인 문화예술 관람 경험률이 39.6%에 불과했다. 2022년 기준 최근 1년간 공연 관람의 총횟수와 총비용 또한 비장애인 서울시민이 각각 4.6회, 10.1만 원을 기록한 데 비해 장애인은 1.3회, 1.6만 원을 기록해 큰 차이를 보여줬다. 국립정동극장 공연기획팀 김준원 과장은 “오래된 대학로 중소극장은 휠체어 리프트나 경사로가 없거나 휠체어 지정 좌석도 부족한 경우가 많다”라고 지적했다. ‘서울대학교 배리어프리 보장을 위한 공동행동’(서배공) 이다인 팀원(정치외교학부·22)은 ‘배리어프리한 공연 만들기’팀에서 활동한 경험을 떠올리며 “휠체어석은 맨 앞이나 맨 뒤에만 배치된다”라며 “맨 앞은 전체가 다 보이지 않고, 맨 뒤는 음향이 잘 안 들린다”라고 한계를 짚었다.

관계자들은 공연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인력과 재원 마련도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연극평론가 전지니 교수(한경대 브라이트칼리지)는 “정부 및 공공기관의 지원을 받지 않을 경우, 민간 극단은 빠듯한 제작비 탓에 배리어프리에 대한 의지가 있어도 이를 실행해 옮기는 것이 어렵다”라고 진단했다. 이유진 PD도 “배리어프리 공연을 만들기 위해 기획부터 제작, 공연까지 많은 사람이 필요한데, 인건비가 많이 들어 충당이 어렵다”라고 토로했다.

배리어프리 공연을 바라보는 비장애인의 편협한 시각도 여전히 존재한다. 국립극단 공연기획팀 김정연 PD는 “몇몇 비장애인 관객분들은 자막을 틀어두면 시선이 가고 대사가 미리 노출된다는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라며 어려움을 전했다. 수어민들레 해랑 수어 통역사 또한 “자막 해설과 수어 통역이 있어 공연을 관람할 때 몰입이 깨진다는 피드백을 받았었다”라고 말했다. 『장애시민 불복종』의 저자이자 지체 장애 당사자인 변재원 작가(행정학과 박사과정)는 “물리적 접근성이 갖춰지더라도, 극장에서 한 번 눈치를 보는 경험을 하고 나면 심리적 이유로 접근하기 어려워진다”라고 밝혔다.

 

앞으로의 바람이 이뤄지려면

배리어프리 공연이 계속해서 막을 올리기 위해서는 정책적·인식적 변화가 동반돼야 할 것이다. 전지니 교수는 “정부 차원에서 배리어프리 공연 지원을 더 확대해야 한다”라며 관련 정부 부처의 적극적인 예산 지원 및 인력 확충을 요구했다.

더 나아가, 공연계에서 장애인의 다양한 참여 방식을 보장하는 진정한 ‘배리어프리 공연’의 토대도 닦아가야 한다. 변재원 작가는 “장애인이 객석을 넘어서는 모습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라며 “장애인 예술교육이 활발히 이뤄지고 장애인이 무대 위에 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서배공 이우진 팀원(자유전공학부·19)도 “현장 조사 결과 배리어프리가 실현된 백스테이지나 분장실은 극히 드물었다”라며 “무대 뒤편에도 휠체어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어야 장애인이 공연자로서 무대에 올라갈 기회가 많아질 수 있다”라고 전했다. 장애인이 공연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로 거듭날 때, 비로소 완전한 배리어프리 공연이 실현될 수 있다는 의미다.

 

배리어프리 공연은 이인삼각 게임이다. 김준원 과장은 “특정한 누구의 적극적인 의지가 아니라 작품을 함께 만드는 사람들과 공연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이 사안에 대해 동일한 온도, 이해와 공감을 가지고 이인삼각을 하듯 움직여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모두가 함께 발맞춰 공연장으로 성큼 올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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