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서울시 마을공동체미디어의 의미와 역할

지난 4월, 서울시가 ‘마을공동체미디어 지원사업’을 폐지했다. 마을공동체미디어는 지역 주민이 직접 정보를 생산하고 소통하는 미디어로 그간 지역 공동체 발전에 기여해 왔다. 지원이 끊긴 상황 속에서도 마을공동체미디어들은 공동체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저마다 고군분투 중이다.

 

한순간에 사라진 지원사업

마을공동체미디어는 지역 주민이 모여 직접 본인의 관심사를 담은 비영리 콘텐츠를 제작하는 미디어로, 공동체 특성에 따라 인쇄물부터 라디오, 영상매체, SNS까지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한다. 마을공동체미디어에 참여하는 주민들은 마을의 지역 자치를 활성화하고, 소외되는 사람 없는 공동체를 만들고자 한다.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김주현 전 기획운영팀장은 “마을공동체미디어는 주류 매체가 잘 비추지 않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고 지역의 정보를 전달하는 사회적 기능뿐 아니라, 미디어 제작에 참여하는 이들의 정체성 형성도 돕는다”라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이런 마을미디어의 공공적 가치를 인정해 마을공동체미디어를 향한 지원사업을 펼쳐 왔다. 서울시의 마을공동체미디어 지원사업은 2012년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에 의해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후 2019년 ‘서울특별시 마을공동체 활성화 지원 조례’가 제정되며 본격화됐고, 2020년부터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가 지원사업을 위탁받아 운영했다.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는 크게 △활동 지원 △홍보 및 성과 관리 △정책 연구 및 미디어 생태계 조성 분야에서 사업을 진행해 지원사업에 등록한 287개의 마을공동체미디어를 뒷받침했다. 이와 같은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의 총괄 아래 서울시 마을공동체미디어는 지난 12년간 콘텐츠 수가 약 27배 증가하는 등 비약적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작년 12월 22일 순탄할 것만 같던 서울시 마을공동체미디어 지원사업에 서울시의회가 제동을 걸었다. 본회의에서 합리적인 공개평가 없이 관련 조례를 폐지하며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와 계약을 중단한 것이다. 결국 올해 4월부터 마을공동체미디어 지원사업은 중단됐다. 김주현 전 기획운영팀장은 “10년 동안 서울시에서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힘을 쏟은 사업인데 명백한 예산 집행 중단 사유를 밝히거나 평가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사업이 중단돼 매우 황망하다”라고 밝혔다.

지원사업이 전면 폐지됨에 따라 서울시 내 마을공동체미디어는 큰 타격을 입었다. 마포 FM 송덕호 대표는 “지원사업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서울시에서 100여 개가 넘는 마을공동체미디어가 활동했다고 조사됐는데, 지원사업 폐지 이후에는 20여 개만 활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노원마을미디어지원센터 윤정록 센터장 역시 “노원구에서도 6개 정도의 단체가 지원을 못 받게 됐다”라며 “자치구 단위에서 운영하는 마을미디어지원센터가 없는 지역은 미디어를 제작할 예산이나 공간이 부족해 운영 자체가 힘든 상황일 것”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지원사업은 종료됐지만 

그러나 활동이 위축되는 상황에서도 나름의 방식으로 활로를 모색하려는 마을공동체미디어들이 있다. 마을의 문제를 발굴해 주민자치를 실현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마포 FM은 밤섬이 람사르 습지임을 알리는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해 환경 보전 활동을 유도한다. 송덕호 대표는 “활동을 축소하면서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면서도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밤섬에 관한 환경 활동이 이어지고 있어 뿌듯하다”라고 말했다. 용산 FM 또한 이태원 참사 이후 주민들을 인터뷰해 기록하는 ‘이태원 기록단’ 활동을 진행 중이다. 용산 FM 장초영 활동가는 “기성언론이 비추지 않은 참사 이후 주민의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라며 “앞으로 안전한 용산구를 만들어 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그뿐만 아니라 마을공동체미디어는 공통의 이해를 기반으로 새로운 공동체를 발굴하고 유대의 경험을 제공한다. ‘아픈 사람과 같이 사는 사람’을 의미하는 아같사 TV는 용산구에서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이 모여 제작하는 미디어로, 치매 환자 가족을 위한 의료 및 생활 정보를 보급한다. 아같사 TV 홍명신 활동가는 “새로운 치매 가족은 우리가 겪었던 후회를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활동을 시작했다”라며 “교육 지원이 끊겨 영상을 제작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치매 가족을 대상으로 돌봄 교육을 진행 중이고 치매 인식 캠페인도 준비 중이다”라고 전했다. 

마을공동체미디어는 그간 미디어 접근이 요원했던 사회적 소수자가 목소리를 낼 기회를 제공해 포용적인 공동체를 만드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동작 FM은 올해부터 지역사회 장애인들을 위한 배리어프리 지역 정보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동작 FM 양승렬 방송국장은 “지원사업이 폐지되면서 활동이 위축됐다”라며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동작구청의 지원을 받아 동작구 소식지를 시각장애인을 위한 오디오 콘텐츠로 만들어 공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 여의도 마을공동체미디어 ‘너나들이’는 특수학급이 많은 여의도의 지역 특성에 맞춰 작년부터 노인과 발달장애 청소년이 함께 그린 그림을 전시하는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너나들이 고은실 활동가는 “지원사업이 중단되면서 인력과 장비가 부족해져 예전만큼 콘텐츠를 제작하기는 어렵지만, 발달장애 청소년에게 사람들과 교류하는 활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최소한의 활동이라도 이어가려고 한다”라고 전했다. 

 

마을공동체미디어가 계속되려면

기로에 놓인 마을공동체미디어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우선 수입 확보를 위한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양승렬 방송국장은 “9년째 이어지고 있는 자생적 연대기구 ‘서울마을미디어네트워크’에서는 지원사업 폐지 이후, 활동 현황을 공유하고 공동 콘텐츠를 제작하는 등 지속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홍명신 활동가는 “굿즈를 제작하고 판매하는 방식으로 재원을 마련하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라고 자생적인 재원 마련 방법을 소개했다. 

그러나 마을공동체미디어가 비영리단체임을 고려하면 이들의 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한 경제적, 제도적 지원도 계속돼야 한다. 송덕호 대표는 “지속 가능한 활동을 위해 제작 지원 사업, 마을미디어 간 교류 활성화 사업 등이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김예란 교수(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는 “단시간에 쌓은 실적을 심사하고 승인하는 실적주의는 시민의 일상적 소통 행위인 마을공동체미디어의 활동 평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라며 “시민의 문화적 활동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마을공동체미디어가 자생하기 위해서는 지역 주민의 관심이 중요하다. 김예란 교수는 “마을공동체미디어의 활동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으로 시작됐지만, 참여자의 커뮤니티 활동이 주요한 동인이다”라며 시민의 자생적 추진력을 강조했다. 홍명신 활동가는 “마을공동체미디어의 혜택은 훗날 모두에게 돌아간다”라며 “많은 주민의 지지가 필요하다”라고 호소했다.


양승렬 방송국장은 “마을공동체미디어의 가치는 고립과 경쟁을 겪고 있는 현대인에게 연결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 가까이에서 계속 나아가고 있는 마을공동체미디어의 발걸음을 주목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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