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협동과정 기술경영경제정책전공 박사과정)
이태준(협동과정 기술경영경제정책전공 박사과정)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갈대에 불과하지만,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다.’ 이 문장은 블레즈 파스칼이 인간을 비유해 사상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팡세』의 서두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또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도출한 르네 데카르트가 이성을 절대적인 진리 추구의 기준으로 중요하게 여긴 것과 달리, 파스칼의 문장은 이성의 중요성과 한계를 동시에 인식하고 정신의 양대 축으로 이성과 심성을 모두 고려한 데 그 의의가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데카르트와 파스칼의 사상적 갈등 속에서도 이 둘을 관통하는 중심점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생각’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런데 우리는 생각을 지나칠 정도로 많이 하고 있지는 않은가? 때로는 이런 많은 생각들이 작고 사소한 문제에도 크고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만큼 몸집을 키워 인생의 수많은 걱정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는 것 아닌가?

실제로 미국국립과학재단(NSF)에서 2005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인간은 하루 평균 12,000~60,000건의 생각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정말 놀랍게도 수면시간을 제외하고 약 1초에 한 번꼴로 생각을 끊임없이 지속한다는 것인데, 한편으로 안타까운 점은 이 중 부정적 생각이 80%, 긍정적 생각이 20%를 차지하며, 전체 생각의 95%는 이미 과거에 수행한 생각의 되풀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소중한 사람들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기도 아까운 시간에 부정적인 생각으로 마음의 대부분을 채우고, 엄청난 비효율을 수반하며 머릿속에 같은 생각만을 되뇌는 데 귀한 시간을 태우고 스스로를 고갈시키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최적의 상태를 갖춘 완전한 사회인 ‘유토피아’를 상상했다. 그러나 유토피아(ούτόπος)는 실제로 토머스 모어가 라틴어로 쓴 소설의 제목에서 그리스어의 ού(없다)와 τόπος(장소)를 조합한 합성어로, 용어 그 자체에서 직관적으로 알 수 있듯이 현실 세계에서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을 의도하는 지명으로 쓴 것에서 유래한다. 즉 이상적인 세상을 꿈꿨으나 그저 상상의 공간일 뿐, 실재하지 않고 현실 세계에는 반영되지 않는 동떨어진 개념이다. 그렇다면 인간과 인공지능(AI)이 공존하며 더욱 긴밀히 협응하는 미래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이에 필자는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IFS)과 한국고등교육재단(KFAS)에서 주최한 미래세대토론회에 패널로 참여해 AI가 보편화된 미래 사회의 예측과 전략 방향을 설정하는 새로운 개념으로 ‘유퀘스트’(OύQuest)라는 키워드를 제시했다. 이는 Oύ(없다)와 Quest(장기간에 걸친 고된 반복적 임무 수행의 과정)를 조합한 합성어로 인간과 AI가 공존하며 우리가 지향하는 미래 사회에 대한 고찰을 담은 것이며, 향후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반복적이고 소모적인 고민을 AI가 대신하는 세상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즉, AI와 인간이 공존하는 미래 사회의 중심에서 인간은 최초의 질문(Question)을 통해 창의적인 스파크를 일으키고, 인공지능은 반복적 탐구(Quest)를 통해 지속적인 연료를 제공함으로써, 이와 같은 촉발과 반복이 이뤄지는 선순환 구조를 확립해 나갈 것을 예상했다. 세상을 바꾸는 혁신은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최초의 질문과 그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과정의 연속에서 시간과 노력이 축적된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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