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과정을 둘러싼 외압 의혹이 점입가경이다. 지난 1일(금) 수사 결과 이첩 보류 지시에 항명한 혐의로 전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에게 청구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구속영장 청구는 이첩 보류 지시에 윤석열 대통령의 직접적 개입이 있었다는 박정훈 대령의 진술이 공개된 직후 이뤄진 것이었다. 언론에 공개된 박정훈 대령의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국방부 장관이 수사 보고서에 혐의자를 특정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김계환 사령관의 진술이 담겨있었다. 한편 채 상병 순직 당시 안전 조치 없이 무리한 수중 수색을 지시한 임성근 1사단장은 처음 수사에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적시됐으나 수사 이첩 보류 지시 이후 재수사에서는 혐의가 삭제됐다. 상부의 수사 개입이 강력히 의심되는 상황이다.

대통령실과 국방부는 수사 개입 의혹에 모르쇠로 일관하지만 윤 대통령이 수사에 개입한 정황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당초 국방부 장관은 임성근 사단장을 포함한 8명의 혐의가 적시된 수사 보고서를 결재했다. 하지만 국방부 장관은 20시간 만에 수사 결과 이첩을 보류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후 다시 국방부 조사본부가 작성한 수사 보고서에서 6명의 혐의는 지워졌다. 국방부 장관은 하급 간부의 고충을 고려한 것이라 주장했지만 사건 당시 지휘 책임이 있었고 직접 입수지시까지 내린 임성근 사단장을 비롯, 고위 간부의 혐의도 갑작스레 지워졌다는 점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심지어 국회 질의를 통해 사건 수사 브리핑 자료가 국가안보실장에게까지 전달됐음이 확인됐다. 대통령의 수사 개입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다. 국방부 장관의 지시가 수사 결과를 보고받은 대통령의 ‘격노’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음을 합리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에 개입해 특정 인물의 혐의를 지우려 했다면 이는 명백한 월권 행위다. 군사경찰의 직무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수사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군사경찰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해병대 사령관은 물론 국방부 장관도 개입할 수 없는 수사에 대통령이 개입한 셈이다. 굳이 군법까지 가지 않아도 상식적으로 대통령이 수사에 개입하는 것은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채 상병 사건은 군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인재인 만큼, 대통령과 정부가 진정 해야할 일은 책임자를 문책하고 사건을 명확히 파악해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한 지 두 달이 다 돼가는 현 시점에서 아무런 사고 대비책도 마련되지 않았다. 심지어는 책임자를 감싸고 수사 외압 의혹에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습에서 윤 대통령과 군 당국이 재발을 방지할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들 따름이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임성근 소장 구하기’가 조직적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수사 외압 논란이 불거지는 가운데, 수사 외압으로 채 상병의 희생이 더욱 허무해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수사 외압 의혹으로 책임자들에 대한 징계도,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도, 채 상병에 대한 애도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다. 윤석열 대통령이 채 상병 사건 및 수사 외압에 대한 진상규명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제기되고 있는 수사 개입 의혹을 떨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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