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책 | 『자유주의의 잃어버린 역사』에서 되찾는 공동체적 의미

자유주의의 잃어버린 역사

헬레나 로젠블랫

김승진 옮김

488쪽

니케북스

2023년 4월 20일

 

 

우리나라에서 ‘자유주의’는 주로 경제적 맥락에서 사유재산권의 적극적인 보호와 국가 개입의 최소화를 주장하는 데 주로 인용된다. 이 때문에 자유주의는 흔히 공공선에 대한 고려를 도외시하거나, 개인주의적 사고관과 이기심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책의 저자 헬레나 로젠블랫은 이런 통념을 반박하며, 자유주의는 전통적으로 도덕적인 지향과 시민의 의무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자유주의는 왜 개인의 권리와 이익만을 강조하는 사상으로 해석되고 있는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가 지녀왔던 전통적 의미의 변천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자유주의의 잃어버린 어원을 찾아서

이 책의 저자 로젠블랫은 먼저 학계가 자유주의의 의미를 정의해 온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그에 따르면 학자들은 자유주의가 모호하고 불명확한 개념인 탓에 쉽게 정의하기 어렵다는 점에 동의하면서도, 자기 나름의 정의를 내려놓고 그에 맞춰 적당한 근거를 짜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유주의가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런 문제적 방식에서 벗어나 이 단어가 사용돼 온 역사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주의적인’을 뜻하는 단어 ‘리버럴’(liberal)은 자유주의(liberalism)가 하나의 사상으로 자리잡기 전까지는 별도의 독자적인 의미를 지녔다. ‘리버럴’이 지녔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고대 로마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로마의 저술가였던 키케로의 글에 비춰보면 ‘리버럴하다’라는 것은 노예가 아닌 자유로운 시민으로서 동료 시민에게 고귀하고 너그러운 방식으로 행동하고 사고하는 것을 의미했다. 즉‘리버럴한’ 시민이 된다는 것은 공공선에 기여할 수 있는 교양과 덕목을 갖춘다는 의미였다.

 

'리버럴함'의 변천사

자유로움, 고귀함, 너그러움 등의 복합적 의미를 지닌 ‘리버럴함’은 정치 체제에 관한 논의와 맞물려 그 의미가 확장됐다. 중세 이래로 왕과 황제는 개별 도시, 혹은 개인에게 상당한 자치나 조세권을 허용하는 특허장을 하사하고는 했다. 이런 특허장은 정치적·경제적 권리를 너그러이 양보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리버럴하다고 여겨졌다. 

미국의 독립선언문 채택은 리버럴함의 의미를 한층 넓혔다. 천부 인권 정신을 밝힌 미국 헌법은 왕이 신민에게 너그러이 자유를 허용하는 것을 넘어, 입법을 통해 스스로를 통치하는 국민에게 자유롭고 너그러운 권리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리버럴하다고 평가됐다. 이로써 리버럴함은 절대왕정을 벗어나 입헌군주정, 공화정으로의 지향을 담은 정치적 의미로도 쓰이게 됐다.

경제 체제에 관한 논의에서 리버럴함은 자유로움과 동시에 공공선을 추구하는 의미로 사용됐다. 고전적 자유주의의 창시자로 알려진 애덤 스미스가 1776년 『국부론』을 출판하며 시장에 대한 무분별한 국가의 개입에 반대한 이유도, 자유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복잡하고 부패한 관세, 특전, 독점과 같은 법적 장치들이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들었다는 문제의식에 있었다. 애덤 스미스는 자유로운 수출입에 기초한 리버럴한 시장경제 시스템이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후생을 증대시키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 작동해 결국 공공선을 증진할 수 있다고 봤다.

이렇듯 다양한 분야에서 제기된 리버럴한 주장의 집합이 처음 ‘자유주의’라 명명된 것은 19세기 이들을 탄압했던 왕정과 가톨릭교회에 의해서였다. 19세기로 접어들 무렵 스페인의 리버럴 진영은 조제프 왕정을 상대로 법 앞의 평등, 입헌 정부, 대의제 정부, 투표권의 확대를 요구했다. 그러나 국왕과 가톨릭교회가 이들의 요구를 수용할 리 만무했다. 그 당시에는 이단을 비방하기 위해 ‘루터이즘’, ‘칼뱅이즘’처럼 끝에 ‘ism’을 붙인 용어를 사용하곤 했는데, 자유주의도 같은 맥락에서 ‘Liberalism’으로 불리게 됐다.

 

자유주의는 어떻게 공동체 윤리적 의미를 잃었나

고대 로마 시기부터 이어져 온 자유주의의 공동체적 의미는 세계대전과 냉전 시기를 거치며 위기에 처했다. 19세기 후반 산업화의 부작용으로 심각한 문제를 겪게 된 독일의 자유주의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정부가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느리지만 확실하게 주변 국가의 자유주의 사상가에게도 전파됐다. 그런데 이 주장의 본고장이던 독일에 전체주의가 태동하고 이것이 양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데 주된 원인을 제공하자, 결국 자유주의자는 전쟁 후 냉전 시기 정치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됐다. 특히 종교적 자유와 정교분리를 주장하는 자유주의에 반감이 있었던 가톨릭교회는 “자유주의가 신을 거부했기 때문에 전체주의로 흘러갔다”라며 강한 선전을 펼쳤다.

수세에 몰린 자유주의자들은 이런 공격에 해명하는 과정에서 공공선과 공동체적 윤리에 기반한 주장을 뒤로 감춰야만 했다. 선전에서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들이 주장하는 자유주의가 전체주의와는 다르다는 점을 부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강조한 주장만을 선별적으로 드러냈다. 그 과정에서 자유주의가 2000년간 지켜왔던 도덕적, 공동체적 의미는 상당 부분 잊히고 말았다.

 

로젠블랫은 축소된 자유주의의 공동체적 가치를 복원시키고, 자유주의에 대한 폭넓은 관점을 회복해야 한다며 책을 마무리한다. 『자유주의의 잃어버린 역사』에서 다뤄진 자유주의의 서양사적 흐름은 한국 자유주의의 짧은 역사와도 일견 닮아있다. 반공 독재 체제의 역사를 거치며, 자유주의에서 공공선을 강조하던 진보적 담론이 제거됐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로젠블랫이 건네는 메시지가 우리에게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온갖 ‘자유 담론’이 난무하는 지금, 한국은 자유주의가 전통적으로 추구해 온 공동체적 의미를 충분히 고려하고 있는지 성찰해봐야 한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