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 장애인 평생교육의 현장, 노들야학

지난달 3일, 국회의사당 역에서 피켓을 든 장애인들이 ‘장애인 평생교육법’ 제정을 간절하게 외쳤다. 장애인 평생교육이 무엇이기에 그들은 그토록 목소리를 높였을까. 기자는 장애인 야간학교인 노들장애인야간학교(노들야학)를 찾아 장애인,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꺼지지 않는 노들야학의 불

지난 14일(목) 오후 8시, 혜화역 앞에 위치한 노들야학을 찾았다. 거리의 사람들에게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이었지만 노들야학의 장애인 학생에게는 배움의 즐거움이 한창인 시간이었다. 한 교실에서는 ‘음악과 함께’ 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학생들의 노랫소리로 노들야학의 따듯한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시설에서 나와 15년째 노들야학을 다니고 있다는 장애경 총학생회장은 휠체어를 탄 몸으로 문 앞에서 기자를 맞이했다. 그는 “정식 학교 교육을 받으려 하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쫓겨나서 제대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라며 “노들야학에서 공부할 수 있어 좋다”라고 지난날을 곱씹었다. 

노들야학은 장애인들을 제도권 밖에서 교육하기 위해 1993년 민간에서 설립한 장애인 야간학교로, 한국 장애인 인권 운동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노들야학에서는 35명의 교사와 84명의 장애인 학생들이 함께 배우고 교류한다. 노들야학 천성호 공동교장은 “노들야학 설립 당시 장애인의 초등학교 졸업률이 40% 언저리에 그쳤다”라며 “학령기에 제도권에서 교육받지 못한 장애인들이 성인이 돼서도 교육받을 공간이 없어 이들을 교육하고자 노들야학이 설립됐다”라고 전했다. 

노들야학에서는 문해 교육, 검정고시 대비 교육, 연극·음악·미술 등의 문화 교양 교육, 장애학·권익옹호 수업 등의 특화 교육이 이뤄진다. 이 중 장애경 총학생회장이 가장 좋아하는 수업은 글쓰기 수업이다. 그는 “글쓰기를 통해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뿌듯하다”라며 자신이 쓴 글을 엮은 책을 자랑하기도 했다. 노들야학 이수미 총학생회 총무는 장애학 수업에 대해 “전에는 내가 차별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라며 “장애학 수업을 통해 차별과 배제의 역사를 알고 장애 인권 개선과 사회적 변화를 위해 투쟁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권익옹호 수업이다. 이는 ‘서울형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서울시는 해당 사업을 통해 2020년부터 중증장애인이 장애인 편의시설 모니터링 등의 권익옹호 활동과 공연 및 전시 등의 문화예술 활동, 장애 교육 등의 인식 개선 활동으로 인권 보호 활동을 할 경우 그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 노들야학에서 권익옹호 수업을 맡고 있는 이창현 교사는 “권익옹호 수업을 통해 장애인들이 자립심을 기른다”라며 “시설에서 나오기를 거부하셨던 분이 수업을 통해 임금을 받으면서 자립심을 길러 탈시설한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세상을 향한 첫걸음, 장애인 평생교육

노들야학에서 장애인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교육은 장애인 평생교육의 일환이다. 국가장애인평생교육진흥센터에서 펴낸 「2022 장애인 평생교육 현황조사 발전방안 연구」에 따르면 장애인 평생교육은 △학력 보완 교육 △성인 문자 해득 교육 △직업 능력 향상 교육 △인문 교양 교육 △문화 예술 교육 △시민 참여 교육 등을 포함하는 학령기 이후의 교육이다. 교육은 장애인 평생교육 시설뿐만 아니라 일반 평생교육기관, 장애인 복지 시설, 장애인 직업 시설 등에서도 이뤄진다. 2021년에는 전국 282개 기관에서 약 2,700개의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평생교육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를 대상으로 하나, 그 기능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비장애인의 평생교육은 주로 정규 교육과정 이후 재취업이나 문화생활을 목적으로 이뤄지지만 장애인의 평생교육은 정규 교육과정의 대안으로서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장애인의 45.7%가 중졸 이하의 학력으로 나타나, 노들야학이 처음 설립됐을 당시와 비교해도 학력 수준에 큰 개선이 없는 실정이다. 이수미 총무는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제도권 교육을 받지 못했다”라며 “이후 야학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학위를 따고 대학에도 진학할 수 있었다”라고 장애인에게 있어 평생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장애인 평생교육은 장애인의 심리적인 안정에도 크게 기여한다. 김기룡 교수(중부대 중등특수교육과)는 “장애인 평생교육은 장애인이 시설을 벗어나 지역 사회에서도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자립하는 능력을 길러준다”라고 말했다. 국가장애인평생교육진흥센터 김태준 센터장은 “장애인의 평생교육은 자존감과도 직결되는 문제”라며 “장애인들이 집에만 머물지 않고 무엇인가를 배우러 나간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자존감이 높아질 수 있다”라고 평생교육의 효과를 밝혔다.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은 멀어

▲국가장애인평생교육진흥센터 「2022 장애인 평생교육 현황조사 발전방안 연구」 발췌.
▲국가장애인평생교육진흥센터 「2022 장애인 평생교육 현황조사 발전방안 연구」 발췌.

하지만 노들야학에 다니는 이들처럼 평생교육을 받는 장애인은 극소수로, 한국의 장애인 평생교육 참여율은 매우 저조하다.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의 평생학습 참여율은 2020년을 기준으로 0.35%에 불과하다. 같은 시기 전체 국민의 평생학습 참여율이 40.0%였던 점을 고려하면 매우 낮은 수치다. 그 추이를 보더라도 비장애인의 평생 교육 참여율은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장애인의 평생교육 참여율은 1%에도 미치지 못한 채 수년간 답보하고 있는 상태다.

전문가들은 장애인이 쉽사리 평생교육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섬세하지 못한 인프라와 제도 설계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장애인은 먼저 교육 시설에 접근하는 것에서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천성호 공동교장은 “장애인에게는 평생교육 시설에 가는 것도 큰 난관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장애인 평생교육 시설 116개 중 단 34곳만이 통학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겨우 교육장에 도착한 장애인은 대체로 배려 없는 시설을 맞닥뜨린다. 천성호 공동교장은 “장애인이 평생교육을 받으려면 높낮이 조절 책상, 배리어프리 화장실, 넓은 복도 등 추가적으로 갖춰야 할 시설이 늘어나는데 이런 것을 갖춘 시설이 많지 않다”라고 전했다. 

장애인의 개별 특성을 고려한 프로그램도 미비하다. 김태준 센터장은 평생교육기관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에 대해 “중증장애인은 개별화된 교육 프로그램과 교구가 필요한데 이런 부분이 부족하다”라며 “개별화되지 못한 교육을 받는 몇몇 장애인은 수업 진행에 어려움을 겪으며 스스로 수업에 방해가 된다고 느끼고, 타인의 시선에 위축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김기룡 교수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해 “결국 부족한 예산과 인력이 문제”라고 짚었다. 

지금까지 법적 정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현장에서는 법이 여전히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007년 특수교육법에 장애인 평생교육에 대한 내용이 추가된 이후 2016년에는 관련 내용이 평생교육법으로 이관됐다. 하지만 김기룡 교수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커져서 지원이 늘어나기를 기대했지만 법이 이관되기 전과 후의 차이가 전혀 체감되지 않는다”라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김태준 센터장도 “개정된 평생교육법에 따라 국가장애인평생교육진흥센터가 설치되기는 했지만, 직원도 10명일뿐더러 53억의 예산으로는 226개 기초지자체의 장애인 평생교육 사업을 모두 지원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라며 “언 발에 오줌 누기 같다”라고 한계를 지적했다.

관계자들은 장애인의 평생교육 활성화를 위해서는 보다 실질적인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때 한 가지 방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장애인 평생교육법이다. 작년 4월 국민의힘 조해진 의원이 대표발의한 장애인 평생교육법은 △장애인의 평생교육 참여 권리 △장애인 평생교육에 대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의무 △국가장애인평생교육진흥위원회 설치 등을 명시해 장애인 평생교육 지원 이행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현재 교육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천성호 공동교장은 “장애인 평생교육법 제정을 통해 장애인 평생교육 전달체계를 구축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장애인 평생교육 보장 의무를 강화해야 한다”라고 성토했다. 김기룡 교수 또한 “법적 근거에 따른 예산 확보를 통해 장애인 평생교육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궁극적으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생교육의 영역에서 통합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인포그래픽: 박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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