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주희(환경설계학과 석사과정)
송주희(환경설계학과 석사과정)

매년 더워지는 여름과 잦아지는 자연재해는 기후 위기가 현재 진행형임을 실감하게 한다. 탄소배출을 줄이고 지구 온도 상승을 막아야 한다는 전 세계적 합의 이후,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에너지 분야에서 대대적인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그 변화의 축은 ‘2050 탄소중립(Net-zero)’인데, 이는 화석연료와 원자력을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을 핵심 과제로 삼는다.

국내 환경단체에서 근무했었던 필자는 에너지 기후 활동가로서 국내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과 관련된 일을 담당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약 7%로, 타 국가에 비해 상당히 낮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는 태양광과 풍력 중심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빠르게 늘려야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태양광 확대는 주로 농촌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땅값이 싸고 개발행위허가를 통한 농지, 산지 등의 입지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생에너지가 자리 잡는 과정에서 마을 주민의 동의나 참여 없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우리가 제안하는 주된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의 내용 또한 주민 참여 재생에너지 확대와 주민 이익공유 확대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마주치는 가장 큰 문제는 재생에너지, 특히 태양광 입지를 둘러싼 주민들의 반대였다. 그중에서도 마을 주민이 태양광에 반대하는 주된 이유는 ‘경관 훼손’이었다. 농촌 경관과 주민 생활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설치돼 미관을 해친다고 본 것이다. 그 당시 ‘경관을 해친다’라는 말은 내게 단순히 ‘보기 싫다’ 정도의 의미로 다가왔다. 내가 봐도 농촌의 주변 경관과 어우러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찾아내기는 어려웠다. 미관으로서의 경관은 주관적 인식의 영역이기 때문에 조금은 막연했다. 하지만 환경설계학과에서 경관과 ‘농촌다움’에 관해 공부하며 그들에게 경관이란 무엇인지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경관은 기본적으로 다의적인 개념이다. 경관은 토지, 자연, 경치, 풍경, 생태, 환경 등 다양한 의미가 있으며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다. 이런 다의성을 바탕으로 자연경관, 생태 경관, 문화경관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중에서도 문화경관은 문화에 의해 형성된 경관을 의미한다. 문화에는 한 사회의 가치관이 담겨있으므로 문화경관 또한 가치관에 의해 형성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농촌 마을의 경관은 농촌의 문화가 담겨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마을 주민들에게 경관이란 단순히 눈에 보이는 농촌 경관을 넘어 그들이 스스로 일궈온 삶의 터전과 생활, 문화 등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인 것이다. 이런 그들의 경관에, 외부인들이 돈을 벌고 도시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인식되는 태양광이 침범한다면 당연히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그동안 태양광의 용량과 생산 가능한 전력량, 주민이 공유할 수 있는 이익 등 수치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주민 참여를 이해했던 나에게 경관적 접근은 새롭고도 깊이 있는 시각이었다. 경관에 문화적 맥락이 반영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나니 경관을 해친다는 말에 담길 수 있는 여러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물론, 에너지 전환의 속도와 경관의 사회적 합의 사이에서 원만한 해결 방안을 찾는 일은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그러나 농촌 공간의 정량적인 경관 평가 기준을 마련하고, 세세한 경관 심의를 거치며 충분한 시간 동안 주민의 참여를 보장할 수 있는 절차적 장치를 마련한다면 에너지 전환이 더 나은 방향으로 마을과 공존할 수 있지 않을까. 한 가지 희망적인 사실은, 문화경관은 가치관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것이므로 가치관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각적인 측면에서 에너지 전환과 경관이 공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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