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과학에 대해 잘 모릅니다. 하지만 역사를 발전시켜 온 한 축이 과학자라는 사실은 잘 압니다. 과학의 핵심은 연구고, 그 연구의 동력은 무한한 지원과 격려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감축에 반대합니다. 

저는 정치에 대해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정치(政治)는 곧 정치(正治)라 믿어서, 정치의 본질은 국가를 올바르게(正) 다스리는(治)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올바르게 다스리는 것이란 잘 듣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R&D 예산 감축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사회와 학교가 연대해 항의해도 부족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학교는 침묵을 택했고 학생사회는 둘로 쪼개지고 말았습니다. 참담한 현실입니다. 내부의 책임을 가리기도, 외부의 책임을 묻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우리가 ‘비빌 수 있는’ 언덕은 학교뿐입니다. 

그렇다면 학교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가장 시급한 것은 학생들과 소통하는 일이겠습니다. 꽤 오래전부터 학생들은 학생회를 통해, 그리고 대자보를 통해 목소리를 높여 왔습니다. 이제 중요한 일은 학교가 그것을 듣고 권한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R&D 예산 논의의 주체에 정치도, 관료도 아닌 학생을 세우는 일입니다. 경제의 논리가 아닌 과학의 논리를 앞세우는 일입니다.

덩어리와 뭉치의 시대입니다. 내 편과 네 편을 갈라 싸우고 당신은 누구의 편이냐 묻는 세상입니다. 그 누구의 편도 아닌 사실과 진실의 편이라고 항변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과학자들은 그 현실의 최전선에 서 있는 사람들 아닐까요. 덩어리를 쪼개 조각으로 만드는 사람들. 보편에서 개별을 찾는 사람들, 개별에서 보편을 찾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우리 시대 최후의 보루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들에게 필요한 건 공포와 배제가 아닌 환대와 관심 아닐까요. 요컨대 R&D 예산 감축은 ‘과학 없는 정치’의 전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정치 없는 과학’이겠습니다.

저는 과학에 대해 잘 모릅니다. 정치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대학에 대해서는 조금이나마 압니다. 어떤 순간에도 대학은 학생과 학문의 든든한 후원자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오늘날 대학의 존재 이유이자 가치라고 믿습니다. 더 늦기 전에, 서울대가 그 이유와 가치를 증명하기를 바랍니다. 그 무엇도 아닌 학생과 학문을 지키기를 바랍니다.

 

황준서

아시아언어문명학부·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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