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의 삶을 어떻게 해석할지에 대한 논쟁은 종종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다. 그중에는 한국인과는 또 다른 위치에 있던 외국인 독립운동가도 있다. 이들의 삶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고민하며 행촌동에 있는 빨간 벽돌집 ‘딜쿠샤’를 찾았다. 광산업자로 한국에 온 앨버트 테일러는 이곳을 보금자리로 삼았다. 사업가인 동시에 미국연합통신 통신원으로 활약하게 된 테일러는 우연히 독립선언문을 발견했고, 비밀리에 문서를 전하는 데 성공해 먼 미국에까지 3·1운동을 알렸다. 그는 제암리학살사건, 고종의 장례식, 독립운동가에 대한 재판을 취재한 후 해외로 타전했다.

그가 강제 추방된 이후, 딜쿠샤는 한동안 방치되며 도시 빈민들의 삶의 터전이 됐고 딜쿠샤의 본래 모습은 희미해졌다. 복원가들은 남겨진 사진과 문서에 의존해 공간을 재구성해야 했는데, 독립운동가를 기억한다는 의미가 퇴색되지 않게 하면서도 당시의 모습을 되찾기 위한 고민을 거듭했다. 독립운동가의 집에 있는 일본 인형이 일부 관람객을 분노하게 만들었지만, 그들은 특정 물건만 빼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사슴 가죽은 현대의 윤리적인 시각에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복원에서 제외됐다. 2년의 노력 끝에 딜쿠샤는 그림, 사진, 물건을 통해 선조들이 살아온 모습을 현대인에게 전하고, 테일러 가족의 행적과 삶의 흔적을 간직한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서울역사박물관 심남희 해설사는 “그를 단순한 사업가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독립운동의 역사에 함께한 외국인으로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과거를 기억하고 보존하는 과정에서 현대인의 해석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복원의 정도와 범위를 정할 때 우리의 시각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당시의 눈으로 시대상을 한 번 더 되짚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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