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낭만과 열정으로 색칠한 서울대 음악동아리의 과거와 현재

“대학에 들어오면 무슨 동아리 하고 싶어요?”라는 질문의 답변에 단연 빠지지 않는 음악동아리. 대학 음악동아리는 언제부터 대학생의 낭만이 됐을까? 또한, 그들은 어떤 청춘과 낭만을 노래해 왔을까? 한 시절을 풍미했던 선배들의 이야기부터 지금의 음악동아리 활동까지, 서울대 음악동아리에 담긴 그 열정에 주목해 보자.

 

대학생, 노래 운동을 펼치다

1970년대는 군사정권과 유신체제 등을 겪으며 정치적으로 억압받던 시대였지만, 록·포크·블루스 등 새로운 장르가 등장해 음악적으로는 다양해지기 시작한 시대였다. 이와 같은 음악적 흐름은 ‘샌드페블즈’, ‘활주로’, ‘메아리’ 등의 대학 음악동아리를 빼놓고서는 말할 수 없는데, 그 시절 대학생들은 음악동아리 활동을 통해 기성세대의 음악을 거부하고 청바지, 통기타, 맥주가 연상되는 대항적인 성격의 음악을 받아들였다. 대중음악 웹진 〈izm〉의 창립자인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대학생들에게 음악동아리는 억압적인 시대 상황 속에서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음악적 욕구를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라고 설명했다.

1970년대의 대학생 음악동아리는 크게 두 갈래로 나아갔다. 앞서 말한 포크·록 음악 등의 문화적 자유를 추구하는 밴드와 민주화·노동권 등의 정치적 자유를 추구하는 ‘노래패’가 그것이다. 과거 노래모임 ‘새벽’,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 등에서 활발히 노래 운동을 펼치고, 최근까지 노래 에세이 「내 노래가 그대에게」를 집필하며 노래에 대한 열정을 이어가고 있는 이창학 씨(원자핵공학과·81·졸)로부터 그 시절 노래패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Q. 메아리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A. 나는 정치에 관심이 전혀 없었던 서울 출신 중산층으로 큰 어려움 없이 자라왔다. 그런데 대학에 입학한 후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해 알게 됐고, 큰 충격을 받아 시대에 대해 이야기하는 진정성 있는 노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전까지 메아리는 평범한 음악동아리였으나,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겪으면서 시대저항적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메아리에서 민중가요를 작곡하고 부르면서 지배 질서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노래를 활용하는 일종의 사회운동인 노래 운동을 펼쳤다.

Q. 노래 운동을 할 때 ‘노래극’을 펼쳤다. 노래극이란 무엇인가?

A. 노래극은 노래패의 성격을 띠게 된 후 정치색이 짙어진 메아리가 선택한 방식이다. 노래극의 형식은 다양하다. 공연 중간에 대사를 삽입하거나 마임 같은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시대에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는 대중문화를 비판하거나 조롱하는 음악 퍼포먼스도 한다. 메아리는 이런 노래극 퍼포먼스를 통해 정부의 문화 정책을 비판하고 시대저항적인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하고자 했다. 

Q. 비합법 카세트를 제작·유통해 노래 운동을 진행했다고 들었다. 이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A. 당시에는 민중가요를 합법적인 음원으로 발매하기 힘들었고, 외부에서 공연할 자리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비합법 카세트로 제작해 배포했다. 이는 살 떨리는 일이었고, 실제로 가을 축제에서 나눠 줄 비합법 카세트를 업체에 맡겼다가 들켜서 잡혀간 경우도 있었다. 비합법 카세트 판매는 대부분 학교 앞 사회과학 서점에서 암암리에 이뤄졌는데, 상당히 잘 팔렸다. 비합법 카세트가 당시 서점 전체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Q. 민중가요를 작곡할 때 어떤 메시지를 담으려고 노력했나?

A. 정치적인 의미나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생각으로만 작곡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암울했던 그 시대의 안타까운 일들을 애도하고자 민중가요를 작곡하게 됐다.

처음으로 작곡한 민중가요는 〈벗이여 해방이 온다〉다. 미안하고 슬픈 감정을 표출하고 싶은 마음에 이 곡을 쓰기 시작했다. 그 시절에는 교련 학점 취득을 위한 전방입소라는 것이 있었는데, 학생들은 이를 군사정권의 병영화 정책으로 보고 반대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때 시위에 참여했던 후배 두 명이 신림사거리의 건물 옥상에 올라가 분신한 사건이 있었다. 나는 이 사건을 전해 들으면서 견딜 수 없이 힘들었다. 내가 작곡한 민중가요는 모두 슬퍼서 만든 노래다.

Q. 대학 시절의 메아리 활동은 어떤 의미로 남아있는가?

A. 인생을 바꿨다. 당시 함께했던 사람들 모두 메아리가 인생을 바꿨다고 얘기한다. 메아리 회원끼리는 누군가 끌려갔을 때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 같이 사진을 찍지 않았고, 너무 중요한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일반적인 동아리 활동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시대적 상황에 저항하고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것은 절대 후회되지 않는 일이다. 

 

대학생, ‘나’를 노래하다

민중가요를 주축으로 활동했던 대학생 노래패들은 민주화 이후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만 했다. 서울대의 음악동아리도 기존의 노래패에서 한발 나아가 대학 음악동아리 문화를 이어가기 위해 다양한 방향을 고민했다. 이런 고민은 인디 밴드의 등장이라는 흐름을 만들어냈다. ‘브로콜리너마저’, ‘눈뜨고코베인’ 등 독특한 매력으로 사랑받는 인디 밴드는 모두 서울대 음악동아리 출신들이 모여 결성됐다. 그들은 음악적인 도전을 감행하고 청년의 낭만을 노래하는 등 밴드의 색깔을 칠해나갔다. 그중 메아리 출신의 인디 밴드 ‘브로콜리너마저’ 보컬 윤덕원 씨(언론정보학과·01·졸)를 만나 대학 음악동아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제공: 윤덕원 씨
사진 제공: 윤덕원 씨

Q. 메아리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활동했는가?

A. 1980년대 이후 민주화가 되면서 메아리가 전달하고자 했던 기존의 메시지가 흐려졌고, 대중음악이 발전하면서 민중가요와 대학생 음악은 주변부로 밀려났다. 활동 방향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기에 어떤 음악을 해야 하나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 결과 어떤 주제나 의식을 전하는 것보다는 ‘내가 직접 만드는 나만의 노래’에 집중했던 것 같다. 또래 기수들은 기존의 것을 답습하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다. 이런 공감대를 형성한 친구들끼리 메아리 활동을 이어가다 인디 밴드를 결성했다.

Q. 노래를 어떻게 창작했나?

A. 주로 가사를 먼저 쓰고, 가사에 멜로디를 맞추면서 작곡을 한다. 가사에 꼭 쓰고 싶은 표현이 있으면 그 표현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멜로디를 작곡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대학생 시절에는 학교 강의에서 음악적 영감을 받기도 했다. 가령 <커뮤니케이션의 이해>는 당시 언론정보학과 전공과목이었던 ‘커뮤니케이션 개론’의 강의명을 약간 비틀어 탄생했다. 그런데 강의 이름이 ‘커뮤니케이션의 이해’로 바뀌면서 내가 강의 이름을 예측한 것이 돼 버렸다. ‘자신만의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만들어라’라는 강의 내용이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고 내 나름대로 생각하고 고민했던 것들을 노래에 담았다.

Q.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 중 대학생에게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노래가 있다면?

A. 〈바른 생활〉이라는 노래를 추천하고 싶다. 이 노래는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대학생들이 요즘 여러 사회적 압박이나 스트레스 요소로 인해 힘든 시기를 겪는데, 이 노래를 한 번쯤 들어보면 좋겠다. 후렴에 ‘밥을 잘 먹고 잠을 잘 자자’, ‘생각을 하지 말고 생활을 하자’ 등의 가사가 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고 불안해하기보다는 아름다운 풍경이 또다시 나타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살았으면 좋겠다.

 

대학생, 색다른 음악에 도전하다

선배들이 일궈낸 자유와 슬픔, 낭만의 토대 위에 서울대 음악동아리는 현재까지도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며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중이다. 특히 오늘날에는 색다른 음악에 도전하는 이색 동아리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중앙흑인음악동아리 ‘바운스팩토리’의 박재영 씨(철학과·22), 중앙 작곡동아리 ‘사운드림’의 김주원 씨(물리천문학부·21), 그리고 보컬과 힙합을 선보이는 사회대 소속 ‘트리플에이치’의 김태훈 씨(영어교육과·23)와 전하윤 씨(독어교육과·23)까지. 개성과 열정이 담긴 무대를 보여주는 이들을 만나봤다.

사진 제공: 바운스팩토리, 사운드림, 트리플에이치
사진 제공: 바운스팩토리, 사운드림, 트리플에이치

Q. 동아리만의 개성이 있다면?

바운스팩토리: 바운스팩토리는 자유로운 음악 제작과 풍부한 공연 기회 제공을 목표로 한다. 흑인 음악, 그중에서도 힙합 음악은 다른 음악에 비해 작곡이 어렵지 않아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만든 곡들이 많다.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의 힘으로 유쾌하게 전달하는 힙합 음악을 작곡한다는 것이 우리 동아리만이 가진 특징이다.

사운드림: 우리 동아리는 대중음악이 아닌, 일렉트로닉과 같이 알려지지 않은 음악을 지향한다. 또한 직접 소리를 선별해 습득하고 조작해 생산하는 ‘사운드 디자인’을 한다. 음악동아리 활동을 통해 내면을 표출하는 기회를 얻으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고 있다.

트리플에이치: 보컬&힙합 동아리다보니 장르의 다양성이 아주 돋보인다는 장점이 있다. 트리플에이치 정기 공연에서는 발라드, 포크, 알앤비, 트랩, 클럽뱅어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인다. 우리는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하며 우수한 퀄리티의 작업물과 공연을 만들어내고 있고, 나아가 우리가 음악으로 느끼는 즐거움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Q. 노래를 창작할 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바운스팩토리: 각자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음악이 가장 멋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경험을 바탕으로 곡을 쓰고 가사에 진심을 담으려 한다. ‘뭐든 자신 있게 도전하자’, ‘나를 사랑하자’라는 메시지도 항상 전하고자 한다.

사운드림: 피아노 건반 앞에 앉아 건반을 두세 시간 두드리다 음악적 영감을 얻어 작곡하는 경우가 많다. 또는 직접 겪은 특정 사건을 계기로 작곡을 하는 경우도 있다. 가사가 없는 노래를 작곡하는 우리 동아리 특성상,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기보다 코드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트리플에이치: 힙합의 경우 비트 분위기나 곡의 구성에 맞는 훅을 짜는 과정에서 특정 소재가 툭 떠오를 때가 많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곡에 따라 달라진다. 이번 가을 축제 공연 곡인 <my way>에서는 곡의 웅장한 드럼 소리가 ‘나의 길을 가겠다’라는 메시지를 떠올리게 해 ‘I’m on my way, 남들의 시선 따위 필요 없잖아’와 같은 가사를 곡에 담았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대학생 음악동아리들이 음악을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변화해 왔지만, 음악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앞으로도 음악은 계속해서 대학생들의 곁에서 위로와 희망을 건넬 것이다. 과거, 그리고 현재에도 여전히 대학 생활의 꽃이자 낭만인 음악동아리, 미래에는 어떻게 변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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