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은지(정치외교학부·19)
팽은지(정치외교학부·19)

어제는 서촌에 있는 작은 재즈바에 다녀왔다. 파란 네온 불빛이 비치는 계단을 내려가니 테이블이 오밀조밀 모인 아늑한 공간이 나타났다. 오늘 아침에는 연구실에서 주말 잘 보냈냐고 묻는 박사님께 ‘제가 어제 아주 멋진 재즈바를 다녀왔는데요’라고 입을 떼려다 깨닫는다. 아, 나는 그녀와 그 재즈바에 함께 갈 수도, 심지어는 그 재즈바를 추천할 수조차 없겠구나.

그녀는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 당사자다. 그녀는 네온 불빛에 감탄하며 계단을 내려갈 수도, 비좁은 테이블 사이를 지날 수도 없다. 보건대학원 직업환경건강연구실에서 여름 내내 인턴으로 일하면서, 나는 그녀와 함께 LG전자 서비스 영역의 휠체어 장애인 접근성을 평가하기 위한 평가 항목 개발에 참여했다. 그 과정에서 이동권 전반의 제약과 그로 인한 삶의 기회 제한을 생생히 경험할 수 있었다.

휠체어 장애인의 이동권 제약으로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이동 과정 자체의 어려움이다. 저상버스가 도입된 마을버스 노선은 전무한 수준이며, 시내버스의 경우 경사로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물리적 문제나 버스 기사와 승객들의 따가운 시선 같은 심리적 문제 등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저상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하철을 타도 역에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고장이 나 원하는 역에 내리지 못한다면 목적지까지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 당사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다른 대중교통은 장애인 콜택시가 거의 유일한데, 문제는 배차 대기 시간이 매번 달라지고 길게는 2~3시간에도 육박해 이동 시간 예측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동할 권리에는 목적지에 예측 가능한 시간에 도착할 수 있는 권리까지도 포함된다. 학교도, 직장도, 인간관계조차도 시간 약속으로 구성되며 여기에 특히나 민감한 한국 사회에서 이동의 어려움은 휠체어 장애인들이 일과에 맞춰 사회생활을 하기 힘들게 만든다.

연구를 진행하며 힘들었던 일 중 하나는 평가지 근처에서 당사자와 인터뷰를 진행할 공간을 찾는 일이었다. 가끔은 카카오맵이나 네이버 지도에 휠체어 접근 가능 표시가 돼 있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직접 전화하거나 로드뷰를 확대해 가며 출입구를 확인해야만 했고, 일일이 확인하고 나면 방문할 수 있는 곳은 거의 남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사진상으로는 출입구에 문제가 없어 보여 방문했는데 문을 여니 계단이 등장해 당황한 적도 있었다. 한 당사자는 접근성 문제로 식당에서 입장을 거부당한 적이 많다며, 먹고 싶은 메뉴가 아니라 먹을 수 있는 메뉴를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이동 경로상의 어려움뿐 아니라 목적지 자체의 접근성이 보장되지 않아 생기는 어려움도 존재하는 것이다.

하루는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당사자가 음료를 거절하는 일이 있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음료를 마시면 화장실에 가고 싶어지기 때문이라는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여러 매장의 장애인 화장실을 직접 보고 나니 그 답변이 어떤 뜻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방문했던 매장 중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장애인 화장실은 전무했다. 창고로 활용되거나 손잡이나 세면대 등 내부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곳도 있었고, 심지어는 장애인 화장실이 없는 곳도 있었다. 화장실 문제는 당사자의 건강과 직결되기에 더욱 중요하다. 당뇨, 심장질환, 고혈압 등은 휠체어 장애인에게서 발병 빈도가 특히 높은 만성질환이다. 외출 시 화장실을 가지 못할까 봐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지 않는다면 해당 질환이 악화할 위험이 크다. 이에 더해 여성의 경우 화장실에 가지 못해 월경 용품을 교체하지 못하면 감염이나 피부질환 발병 위험도 커진다.

이동권과 접근성의 제약은 곧 일할 권리, 교육받을 권리, 투표할 권리, 치료받을 권리, 여가를 즐길 권리, 사랑할 권리 등이 함께 제한됨을 의미한다. 평일에는 시간 맞춰 학교에 가고, 주말에는 좋아하는 이와 재즈바에 가서 위스키를 마시고 거리낌 없이 화장실을 들르는 것과 같은 일상은, 당연하게도, 누구에게나 누릴 권리가 있다. ‘아름다운 사회는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예민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그래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을 지킬 수 없을 때 그 좌절에 함께 분노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한다’라는 김승섭 교수의 글처럼, 모두가 당연한 권리를 누리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타인의 안위와 고통에 귀 기울이고 관심을 가지는 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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