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영 케어러’를 조명하다

최근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 월드비전을 통해 공개된 한 소년의 사례가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교통사고로 지적장애를 얻게 된 아버지, 그리고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할아버지를 홀로 모시는 열여섯 살 용일이의 이야기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고등학교 진학까지 포기하고 식당, 자동차 선팅점, 야간 경비와 택배 배달일을 전전하는 그는 소위 ‘영 케어러’(Young Carer)다.

 

영 케어러, 그들은 누구인가

영 케어러는 질병이나 장애, 사고 등으로 스스로 일상생활을 수행하는 데 제약이 있는 가족원에게 돌봄을 제공하는 아동, 청소년, 청년 등을 뜻한다. 가족 내 여러 명이 분담해 불편한 가족원을 함께 돌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한 명의 영 케어러가 주돌봄자가 돼 돌봄을 가장 많이 책임져야 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이들을 가족돌봄아동, 가족돌봄청소년, 가족돌봄청년 등으로 부르며 사회적 관심의 영역 안쪽으로 들여오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 논의는 걸음마 단계다.

이들은 상당한 시간을 돌봄에 사용해야 하기에 우울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2년 가족돌봄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주돌봄자의 주당 평균 돌봄 시간은 32.8시간으로, 그들은 하루 평균 4~5시간 정도를 돌봄에 쏟고 있다. 주돌봄자인 영 케어러의 우울감 유병률은 약 70.9%로 일반 청년의 유병률 8.5%에 비해 8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영 케어러가 어린 나이에 가족을 돌보며 생긴 내면의 공백은 이후의 삶에도 연쇄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회가 그들을 조기에 구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함선유 부연구위원은 “아동·청소년은 사회성 발달, 학업 성취, 진로 탐색과 같이 특정 시기에 이행해야 하는 과업이 있다”라며 “영 케어러가 이 시기 과도한 돌봄으로 인해 제대로 과업을 이루지 못하면 이후 생애 주기에 영향을 받는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권지성 교수(한국침례신학대 사회복지학과)는 “영 케어러는 가족과 사회의 돌봄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지 거꾸로 가족을 돌봐야 하는 존재가 돼서는 안 된다”라며 “가족과 사회는 그들을 보호하고 돌봐야 하는 의무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케어 받지 못하는 영 케어러

이런 위기에 처한 영 케어러를 도울 수 있는 복지 서비스가 전무한 것은 아니다. 현행 복지 체계는 위기 청소년을 대상으로 기초 생계비를 지원하거나 상담을 지원하는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영 케어러가 돌보는 가족원 역시 가사·간병 방문 지원사업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영 케어러는 왜 아직까지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고 있는 걸까?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이 우리나라 복지 체계가 근간으로 삼고 있는 신청주의의 허점 탓이라고 분석한다. 복지 제도가 마련돼 있더라도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신청하지 못한다면 제 역할을 하기 어려운데, 특히 사회 경험이 적은 아동과 청소년의 경우 복지 서비스의 존재를 잘 알지 못해 신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월드비전 박은진 대리는 “우리의 청소년기를 되돌아보면 그 당시에는 기본적 복지 서비스인 주거급여, 의료급여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라며 “영 케어러 역시 그들 스스로가 복지 대상자가 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해 서비스를 신청하지 못한다”라고 덧붙였다.

다른 계층에 비해 복지 서비스에 접근하기 더 어려운 영 케어러의 특성상 사회가 이들을 체계적으로 발굴해야 하지만, 이들에게 적용되는 복지 서비스의 근거법이 제각각인 탓에 체계적인 발굴 및 지원이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은 “현재 아동, 청소년, 청년을 지원하는 법률이 아동복지법, 청소년복지법, 청년기본법 등으로 산재돼 있고, 소관 부처도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등으로 나뉘어 있어 효과적인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라고 전했다.

영 케어러가 가까스로 복지망 안에 들게 돼도 이들은 곧 복지 서비스의 열악한 지원 수준에 맞닥뜨리게 된다. 예를 들어 보건복지부에서 제공하는 가사·간병 방문 지원사업의 기본 지원 시간은 월 24시간 혹은 27시간이다. 주말을 제외한 20일을 한 달로 가정한다면 이들이 간병 지원을 받는 시간은 일평균 1~2시간꼴인 것이다. 결국 돌봄이 필요한 나머지 시간은 여전히 영 케어러의 몫이다. 박은진 대리는 “지금의 지원은 영 케어러가 남들과 비슷하게 자신을 가꾸고 미래를 준비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라고 지적했다.

 

그들이 짊어진 돌봄의 무게를 덜어내려면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영 케어러를 제대로 보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실태조사부터 진행해 영 케어러의 현황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라고 제언한다. 2022년 보건복지부에 의해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실태조사가 처음으로 이뤄졌으나 일부 영 케어러의 어려움을 파악하는 데 그쳐 전국 단위로 존재하는 이들의 규모와 현황을 파악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또한 조사대상을 만 13세 이상 34세 이하로 한정해, 13세 미만인 영 케어러의 현황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한다는 문제도 지적됐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복지사업본부 측은 “청년을 중심으로 영 케어러 이슈가 확산되다 보니, 아동인 영 케어러는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곳곳에 숨어있는 영 케어러를 발굴하기 위해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권지성 교수는 “사회복지전담 공무원이 지역사회로 나가서 사례를 발굴하고 있지만, 과도한 업무부담 때문에 한계가 있는 상황”이라며 “사회복지 전문 인력을 대폭 보완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지역사회 차원의 적극적 홍보와 교육을 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함선유 부연구위원은 “단전·단수와 같은 행정상 위기 지표를 통해 영 케어러를 발굴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라며 “병원, 약국, 학교 등 지역사회에서의 촘촘한 관계망을 통해 복지 정보를 전파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런 방책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 별도의 법률을 제정하려는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지난 3월 ‘가족돌봄아동·청소년·청년 지원법안’을 대표 발의한 서영석 의원은 “가족돌봄아동·청소년·청년을 명확하게 지원 대상자로 ‘명명’하고, 국가가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체계를 마련하도록 하기 위해 법률안을 발의했다”라며 그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법안심사소위원회가 제대로 열리지 않고 있어, 아직 구체적인 논의는 첫발도 떼지 못한 채 법안이 계류돼 있는 상황”이라며 “법안의 신속한 통과를 위해서는 사회적 관심과 동력이 필요하다”라고 전했다.

 

2021년 뇌졸중을 앓는 아버지를 홀로 돌보다 지쳐 방치한 20대 청년이 존속살인죄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대구 간병살인 사건’을 계기로 영 케어러는 반짝 주목을 받는 듯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2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이들을 위한 논의는 더디기만 하다.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지연되는 사이, 영 케어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고통받고 있을지 모른다. 이들이 하루라도 빨리 돌봄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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