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현 차장(사회문화부)
전상현 차장(사회문화부)

지옥은 어디에 있을까. 연상호 작가의 웹툰 〈지옥〉의 세계관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천사’로 불리는 미지의 신적인 존재가 나타나 몇몇 사람들에게 특정 시각에 지옥에 갈 것이라고 ‘고지’한다. 고지된 시각이 되면 ‘사자’라 불리는 거대한 존재가 고지받은 사람을 불태워 죽인다. 웹툰 속 신흥종교 단체 ‘새진리회’는 고지받은 자들의 죽음을 신의 시연이라 말하며 이들은 죄를 지어 지옥에 간 것이라 주장한다. 새진리회의 광신도 집단 ‘화살촉’은 정의를 실현한다는 명분 아래 고지받은 이들과 그 가족의 신상을 공개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집단 린치를 가할 뿐만 아니라 폭행을 막으려는 사람들을 향한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도 화살촉을 막지 않는다. 오히려 일부는 화살촉이 폭력적인 모습을 보일수록 열광한다. 몇 년 전에 본 웹툰이지만 화살촉의 광기 서린 인디언 분장과 이에 환호하는 대중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오묘한 찝찝함은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다.

최근 이른바 ‘갑질 학부모’를 향한 분노가 표출되는 방식이 웹툰 속 화살촉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부분이 있어 불쾌하다. 이들의 신상을 알고 싶어 하는 대중들과 누리꾼의 정보력은 수요와 공급의 일치를 이룬다. 이내 그들 자녀의 신상까지도 낱낱이 공개된다. 일부 사람들은 신상 털기에 그치지 않고 해당 학부모들의 영업장을 찾아 욕설 적은 메모를 붙이고 케첩을 뿌리기도 한다. 심지어는 자녀에 대한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 신상을 공개한 누리꾼은 ‘각시탈’, ‘다크나이트’에 비유돼 칭송받는다.

교권을 침해한 학부모들을 향한 분노 자체를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알려진 가해자 학부모의 행동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교사들의 인격을 무참히 짓밟은 것이다. 이는 지탄받아 마땅한 행동이고 필요하다면 법적 제재도 있어야 한다. 타인의 고통을 모른 체 하지 않는 모습은 바람직한 공동체 일원의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개인의 신상 공개와 물리적·언어적 폭력의 행사에 열광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가 본질적으로 지녔다고 생각해 온 이성의 모습에 의문을 품게 한다. 사적 제재와 이를 부추기는 행태는 그저 시각적 호기심의 표출과 해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가해 학부모와 자녀들의 신상 공개, 사적 제재의 현장은 어떠한 효용도 없이 오직 말초적 자극만을 위해 만들어진 포르노와 다를 바 없다. 이런 사적 제재는 피해자의 아픔을 위로하지도,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한다. 혹자는 공적 영역에서 행하지 못하는 정의를 사적 제재가 세우는 것이라고, 가해자도 똑같이 인격이 짓밟혀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부 누리꾼들의 이야기만 듣고 사실 관계에 대한 검증 없이 행해지는 사적 제재는 무고한 피해자를 낳고 사회를 오히려 불안정하게 만든다. 그들이 말하는 정의감은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자신은 가해 학부모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알량한 강박일 뿐이다. 정말로 정의를 원했다면 가해 학부모의 신상을 궁금해할 것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피해 교사와 그 가족을 위로하는 것에 분노와 정의감을 투여했어야 한다.

웹툰 〈지옥〉 속 진짜 지옥은 정제되지 않은 분노와 그들만의 정의가 결합해 만들어 낸 비뚤어진 열광이 가득한 현실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화살촉의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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