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온 기자(사회문화부)
오정온 기자(사회문화부)

자크 르 고프는 『연옥의 탄생』에서 연옥이 12세기에 처음 만들어진 서양 봉건 사회의 산물이라고 단언한다. 가톨릭 교리에서 연옥은 시간적으로는 개인적 죽음과 최후 심판 사이에, 공간적으로는 천국과 지옥 사이에 위치하는 제3의 공간이다. 4세기에도 연옥의 태동은 이미 조금씩 눈에 띄었으나, 중세 이전까지 종말과 그에 따른 최후의 심판이 임박했다고 굳게 믿고 있던 인류에게 현세란 내세를 위한 관문에 불과했다. 12세기에 이르러서야 인류는 최초의 증산을 경험하며 현세를 그 자체로 긍정할 수 있었고, 자연스레 세상의 종말은 심성적으로 유예됐다. 개인적 죽음과 세상의 종말에 도래할 최후 심판 사이 공백을 숙고하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연옥의 흥미로운 지점은 산 자가 사후 세계를 통제하는 방식에 있다. 죽은 자는 산 자의 기도를 통해 연옥의 시련을 완화할 수 있었다. 때문에 죽은 자를 위한 산 자의 기도는 죽은 자와 산 자가 유대하는 매개이자 교회의 지배를 확장하는 도구가 됐다. 사후 세계가 신의 영역이 아닌 인간이 관여할 수 있는 영역이 됨에 따라, 교회는 기도를 연계한다는 명목으로 영적인 권력과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당시 민중에게 죽음은 삶과 연결되는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여졌다. 

현세의 긍정과 심성적 종말의 유예는 오늘날에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인류가 삶을 향한 집착과 긍정을 키워갈수록 죽음은 극복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자연스레 물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죽음은 유예되고 있다. 그런데 12세기와 달리 21세기에는 유예된 죽음과 삶 사이의 연옥이 만들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연옥의 부재로 생애 말기에 죽지도 살지도 않은 상태의 공백이 존재하게 됐는데도 말이다. 

엉성하게 지어진 연옥이 존재하기는 한다. 살아있는 자는 국민 국가라는 시민 종교에 장기요양보험이라는 기도를 올려왔다. 그런데 지난 15년간 올렸던 기도가 노인을 생애 말기 돌봄이라는 연옥에 머무르게 하기는커녕, 지옥을 닮은 요양시설로 추방해 왔음을 떠올리면 기도의 효과는 의문이다. 국민 국가가 노후와 삶의 관계를 조율하지 못할 때, 이것이 당위적으로 지녀야 할 종교적 입지도 추락할 수밖에 없다. 헌금도 걷지 않는 민간 요양시설에게 영적인 권력을 뺏기는 것은 여러모로 곤란하다. 

이번 취재는 죽음 이전에 취약한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국민국가의 이분법적 세계관이 낡아버린 지 오래임을 취재원들의 입을 통해 듣는 과정이었다. 이제는 취약한 삶을 치료의 대상으로 여기는 산업주의식 사고를 뛰어넘어, 생애 말기의 비루한 일상이 뜻하는 바를 삶으로 승화시킬 때다. 산 자와 산 자의 연대를 통해 생애 말기 돌봄이 탄생할 날을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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