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 소설가 한경혜를 만나다

스타 작사가였던 한경혜 작가는 원하는 이야기를 소설에 담고 싶다는 신념 하나로 소설가로의 전향을 택했다. 여성, 언어생활과 같이 흔히 찾을 수 있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주제를 다룬 한 작가는 특유의 비판적인 시각으로 많은 독자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 최근에는 『켈리키친』, 『표현의 감각』에서 과감하게 사회 문제를 다루며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난 14일(목) 한경혜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더 넓은 세상을 이야기하기 위해 소설가의 길로

한경혜 작가는 소설가이기 전에 작사가였다. 그만의 애절하면서도 담담한 가사는 후에 많은 청춘의 가슴을 울렸고 김건모, 김종서, 박효신 등 많은 가수와 작업하며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영원할 것만 같던 영광을 뒤로한 채, 한경혜 작가는 작사가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소설가로의 전향을 결심했다. 가장 큰 이유는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작사가로서 쓸 수 있는 이야기가 달랐다는 점이었다. 한 작가는 “어느 순간 상업성을 위해 가치관에 맞지 않는 작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 압박감을 느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회에 관해 전하고픈 메시지가 많았다”라며 “세상에는 수많은 아픔과 문제가 숨겨져 있는데, 그것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라고 전했다. 후손이 살아갈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다는, 단순해 보이지만 속 깊은 그 신념을 위해 한 작가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했다.

 

사회를 향한 끊임없는 관심

사회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조명받지 못하는 개개인의 사연을 담아내고 싶다던 한경혜 작가의 의지는 등단작 『비행』에서 잘 드러난다. 치매를 앓던 시할머니와 시할머니를 모시던 손주며느리 사이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한 『비행』은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홀로 관리하는 딸의 상황을 극적으로 서술한다. 소설에는 마을에 치매 노인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전전긍긍하는 딸과 이를 덮으려고 더 큰 루머를 만드는 남편이 등장해 긴장감을 더하는데, 결국 엄마의 치매 사실이 알려지며 가정과 마을 모두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휩싸인다. 한경혜 작가는 “소설 출간 당시인 2000년대 초에는 치매와 같은 노인 돌봄을 오롯이 가정 내의 문제로 상정했다”라며“노인에 관한 모든 관리를 도맡은 아들딸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라고 전했다. 이어 한 작가는 “치매가 일상을 어떻게 뒤바꾸는지 생생히 담아내고 싶었다”라며 “지금과 같은 상황을 방치하면 안 된다는 경각심을 전하려는 것이 그 의도”라고 밝혔다. 

사회의 작은 목소리를 소설에 담으려는 한 작가는 자연스레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분야인 여성과 가정에 초점을 맞추게 됐다. 특히 그가 주목한 인물은 ‘어머니’였다. 사회는 어머니를 과도하게 숭고한 존재로 규정하지만, 어머니 또한 한 명의 인간이자 여자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렇게 탄생한 소설이 바로 『엄마에겐 남자가 필요해』다. 이 소설은 이혼 후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엄마와 아들이 함께 살며 일어나는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며 설레하는 엄마의 모습은 그녀 또한 한 명의 여자임을 말하며 사회가 규정하는 ‘어머니’의 역할에 물음을 던진다. 이때 두근거리는 감정이 담긴 어머니의 일기와, 그런 어머니를 지지하면서도 혼란스러움을 감출 수 없는 아들의 일기가 교차되며 각자의 속마음이 솔직하게 드러난다. 한경혜 작가는 “어머니의 돌봄과 헌신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라며 “이는 모두 그의 삶을 일정 부분 포기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8년 출판된 『켈리키친』은 월경이라는 소재로 사회가 규정한 여성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경혜 작가는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인데, 월경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회가 여성을 다르게 바라보는 것 같았다”라며 “이런 의문을 모두와 나누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켈리키친』에서 열다섯 살인 ‘나’와 언니, 이모, 엄마 넷이 사는 일상적인 집에서 발생하는 에피소드를 그렸다. 특히 초경이 늦는 나, 임신해서 잠깐 월경하지 않는 언니, 아직까지 월경하는 엄마, 이제는 월경하지 않는 이모의 이야기는 사회가 월경을 두고 규정하는 여성성의 개념에 의문을 던진다. 한경혜 작가는 “월경으로 여자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통념을 깨고 싶었다”라며 “살아가면서 겪는 자연스러운 변화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신념을 드러냈다.

 

소설가로서 언어에 대해 말하다

한경혜 작가의 시선은 눈에 띄지 않는 영역까지 향했다. 한 작가는 유난히 내성적이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 아버지의 직업을 묻는 질문에도 깊은 상처를 받았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말문을 이었다. 그는 “언어를 다루는 직업을 가지며 섬세한 언어 사용과 배려가 가지는 힘을 믿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직접 겪은 이야기를 담아 바른 언어 사용을 주제로 한 책을 집필하기로 결심했고, 오랜 고민의 시간 끝에 『표현의 감각』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궁금하다고 해서 다 물어선 안 되는 것이 질문자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이자 의무이다. … (중략) … 조심스럽게 물었다고 해서 호기심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니다. 

- 『표현의 감각』 (2022)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한경혜 작가는 말이 가지는 힘을 강조하면서 조심스러운 문장 사용을 당부했다. 함께 비빔밥 프랜차이즈 식당에 간 ‘세연’과 ‘승건’은 갈비탕과 김밥 등의 메뉴를 주문한다. 평소 승건을 마음에 두고 있던 세연은 이혼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승건의 가정사를 궁금해 한다. 승건이 “혼자서는 먹기 힘들었던 음식들을 이제는 마음껏 먹을 수 있어 좋다”라고 말문을 열자 세연은 자연스럽게 승건의 아내에 관해 묻는다. “왜요? 사모님, 아직 아프세요?” 상대의 기분과 처지는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하고픈 마음을 걱정처럼 잘 포장해 던진 질문. 한경혜 작가는 “가벼운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에게는 매우 폭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라며 이 소설 속 사례가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점을 짚었다.

 

문제 있다. 발설하고 보니 문제 있는 게 느껴졌다. … (중략) … 세연은 비로소 제 삶이 가진 문제를 들여다봤다. 삶의 주기율표에 자신을 끝없이 대입하며 비하하던 것은 언제나 자신이었다. 차이에 불과한 것들을 관점을 달리하여 차별하여 바라보고 있었던 셈이다. 

- 『표현의 감각』 (2022)

 

또 다른 에피소드에서는 언어가 때때로 마음을 가두는 틀이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세연은 서른세 살임에도 애인도 없고 비정규직인 자신을 ‘문제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내 관점을 다시 바꿔서 비정규직일지라도 좋아하는 디자인 분야의 일을 하는 자신의 처지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결국 삶에 정답은 존재하지 않으며 살아온 만큼의 결과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처럼 한경혜 작가는 책에서 ‘옳은 삶이 존재하긴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함부로 ‘문제’를 규정했던 우리의 모습을 비판한다. 그는 “틀 안에 우리를 가둔 채 함부로 다른 사람의 인생을 판단하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으면 했다”라고 전했다. 

 

한 작가의 소설가 인생이 마냥 탄탄대로였던 것은 아니다. 꿈꿔왔던 소설가라는 소원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지만 작사가 이력 때문에 등단 전부터 숱한 편견에 부딪혔고, 이에 익명으로 작품을 출품해 등단하게 되는 어려움도 겪었다. 그러나 그는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즐거움과 사명감을 방패 삼아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후회 없이 즐겁게 글을 쓴 것 같다”라며, “앞으로도 꾸준히 글을 써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이바지하고 싶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누구보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소설을 써나갈 그의 행보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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