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조선 왕실 여성 혼례복인 활옷과의 만남

지난 15일(금)부터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활옷 만개滿開, 조선왕실 여성 혼례복〉 특별전이 진행 중이다. 지난해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김남준)이 기부한 1억 원으로 로스앤젤레스카운티 미술관(라크마 미술관)에 소장된 활옷 한 점이 보존처리될 수 있었던 사실이 화제를 불러온 바 있는데, 특별전에는 이 활옷을 포함해 총 9점의 활옷이 전시됐다. 국내와 국외에 있던 활옷이 한자리에 모여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현장에 기자가 직접 방문해 봤다.

 

활옷을 입힌 마네킹이 전시돼 있다.
활옷을 입힌 마네킹이 전시돼 있다.

 

아름다움이 땀땀이 수놓인 활옷

“옷이 이렇게나 아름답고 화려하다니, 그 당시 혼례를 위해 활옷을 입었던 사람들은 얼마나 좋았을까요.” 전시장에 찾은 미국인 레베카 씨(교사·33)가 전한 감상이다. 지난 17일, 국립고궁박물관은 활옷을 향한 기대로 가득 찬 관객들로 북적북적했다. 그중 활옷을 보며 옛 추억에 빠진 이도 있었다. 임정희 씨(무직·85)는 “나도 결혼할 때 활옷을 빌려 입었다”라며 “활옷 한 점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수많은 사람의 정성과 노력을 잘 보여준 전시”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렇게 관람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활옷이란 과연 무엇일까.

활옷은 조선의 공주와 옹주가 혼례에 갖춰 입었던 혼례복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국립고궁박물관 조지현 학예연구사는 “활옷은 붉은 비단에 각종 무늬가 가득 수놓아져 있는 여성 혼례복을 말한다”라고 설명했다. 왕실에서는 활옷을 ‘홍장삼’(紅長衫)이라고 기록했는데, 이에 대해 권혜진 겸임교수(이화여대 의류산업학과)는 “왕실에서는 한자로 붉고 긴 옷이라는 의미의 홍장삼을 사용했고, 민간에서는 순우리말로 큰옷이라는 의미의 ‘할옷’이 활옷으로 변해 사용된 것”이라고 짚었다.

현란한 자수로 장식된 활옷은 단언컨대 조선에서 가장 화려한 의례복이다. 활옷의 자수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모란과 연꽃인데, 여기에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부부에게 전하는 축하와 당부가 담겨있다. 권혜진 겸임교수는 “탐스럽고 호화스러운 부귀화인 모란은 음양의 조화와 애정을 상징해 혼례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모란과 함께 활옷을 장식하는 연꽃은 생명력을 상징한다”라며 “특히 활옷의 앞면 양쪽 어깨에 동자가 연꽃을 들고 있는 모습은 어린 신부에게 연달아 아들을 낳으라는 책임을 지게 한다”라고 문양의 의미를 설명했다.

오래 살고 복을 누리라는 ‘수여하해’(壽如河海)자수.
오래 살고 복을 누리라는 ‘수여하해’(壽如河海)자수.

활옷이 띠는 진한 홍색인 대홍(大紅)은 왕실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귀한 색이었다. 권혜진 겸임교수는 “왕실에서 쓰는 대홍은 비싼 염료를 마음껏 사용해 만들어 냈던 기품 있고 진한 홍색으로, 왕실의 위엄을 보여준다”라고 강조했다. 조지현 학예사는 “활옷의 겉감은 홍색으로, 안감은 청색으로 만들어졌는데 각각은 여자와 남자를 뜻해 음양의 조화를 표현했다”라며 색에 담긴 부부의 합에 관한 나름의 의미를 설명했다.

 

나비, 연꽃, 봉황 등 다양한 문양으로 수놓아진 활옷.
나비, 연꽃, 봉황 등 다양한 문양으로 수놓아진 활옷.

 

보존처리, 활옷에 활력을 불어넣다

전시에는 미국 라크마 미술관에서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활옷도 있었다. 이 활옷은 약 4개월 동안의 보존처리 과정을 통해 대중 앞에 아리따운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보존처리 과정을 총괄한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 채정민 학예연구사는 “보존처리는 유물이 가지고 있는 원래의 것들을 지키면서 앞으로도 오래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활옷에는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소매 한삼과 깃 부분에 한지가 덧대어 있는데, 그 한지들이 분리돼 있어서 원래대로 붙여주는 작업을 했다”라며 “그 과정에서 향후 손상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오염 물질을 제거하는 작업에 가장 심혈을 기울였다”라고 작업 과정을 밝혔다. 채 학예사는 “라크마 미술관의 담당자도 미국에서 할 수 없던 보존처리 과정을 한국에서 완성할 수 있어 고마움을 표했다”라며 뿌듯함을 드러냈다.

보존처리 과정을 진행하면서 활옷이 거쳐 온 역사의 흔적도 알 수 있었다. 채정민 학예사는 “조사 과정에서 여러 사람이 돌려 입었기 때문에 덧대진 옷이 변색된 단계가 달랐다”라며 본래 유물에서 개형이 이뤄진 과정을 새롭게 파악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문화와 역사가 깃든 활옷의 가치

활옷에는 왕실부터 민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야기가 바래지 않고 담겨있다. 조지현 학예사는 “공주가 활옷을 입고 왕실을 떠나 사가로 시집을 가게 되면, 왕실의 의복 문화가 민간에도 퍼지게 된다”라고 전했다. 그러자 백성도 혼례 때는 예외적으로 활옷을 입는 관습이 퍼지면서, 활옷은 왕실과 민간을 잇는 문화적 연결고리가 됐다. 이민정 강사(의류학과)는 “신분 질서가 철저하던 조선에서 활옷은 모두가 함께 공유하고 누릴 수 있었던 문화였다”라며 “왕실을 넘어 민간에서도 널리 착용했기에 활옷이 근대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혼례복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라고 그 가치를 설명했다.

또한 활옷은 당시 여성들이 성리학의 억압 속에서 유일하게 화려함을 맘껏 표출할 수 있었던 옷이었다. 이민정 강사는 “검소함과 소박함을 숭상한 유교문화가 지배적이던 조선에서는 여성의 복식이 사치스러운 것을 엄격히 금했다”라며 “일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싶은 순간인 혼례식에서 화려한 자수로 장식된 붉은 활옷을 입고 억압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표출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활옷에는 당대 여성들의 놀라운 사랑과 헌신, 예술혼이 담겨 더욱 뜻깊다. 권혜진 겸임교수는 “조선에서 의복은 여성이 담당하던 일이었고 궁에서는 수많은 상궁이, 민간에서는 어머니가 담당하던 일”이라며 “조선의 활옷은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일일이 손으로 작업했기에 자신의 모든 예술적 감각과 기술, 정성을 담아 만들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축복의 의미와 정성의 손길로 한땀 한땀 빚어져 활옷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은 더욱 빛이 난다. 이번 전시는 12월 13일까지 이어진다. 휴일에는 전시에 찾아가, 활옷을 입고 혼례를 치르던 당시의 설렘과 긴장의 날을 상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사진: 박선영 기자

leena1208@snu.ac.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