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취재 | 일본의 커뮤니티 케어로 본 한국의 생애 말기 돌봄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본 적 있는가? 요양시설의 좁은 침대 위로 내몰려 생애 말기를 보내는 자신의 모습을 원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한국의 노인은 돌봄의 시설화와 가족화라는 굴레 속에 갇혀있기에 거동이 불편하든 하지 않든, 원하든 원치 않든, 대부분 요양병원 혹은 요양시설에서 생을 마감한다. 한국의 생애 말기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해 정부는 2018년 돌봄이 필요한 이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커뮤니티 케어 시범사업 도입으로 응답했으나, 겨우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대학신문』은 한국보다 앞서 커뮤니티 케어를 도입했으며 국내 정책 시행의 모델이 된 일본의 커뮤니티 케어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봤다. 

 

한국의 노인 돌봄, 어디까지 왔나

◇시설로 향하는 생애 말기 돌봄=요양시설은 ‘사람’을 돌보는 게 아니라 ‘시간표’를 돌본다는 자조적인 표현이 있다. 기자가 직접 방문해 봉사활동한 서울의 한 요양원도 꼭 그랬다. 일반 건물을 개조해 만든 그곳에서는 치매 노인과 치매가 없는 노인이 한데 뒤섞인 채로 침대에 누워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3명의 60대 요양보호사와 1명의 간호사는 한 시간 단위로 쪼개진 일정에 맞춰 24명가량의 노인을 대상으로 식사와 투약 관리를 이어갔다. 식사 보조에 앞서, 기자는 1시간 안에 5명의 인원이 노인 24명의 식사를 돕기 위해서는 빠른 손놀림으로 죽과 반찬을 한데 모아 먹여야 한다고 교육받았다. 『각자도사 사회』의 저자인 송병기 의료인류학자는 요양원에서의 연구 경험을 비춰보며 “이런 식의 돌봄 구조로는 삶의 존엄을 지키기 어렵다”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보건복지부, 국민건강보험 「노인장기요양보험 급여비용 안내」 발췌.
▲보건복지부, 국민건강보험 「노인장기요양보험 급여비용 안내」 발췌.

노인 돌봄이 민간의 시설 돌봄에 내맡겨진 원인은 본래 공공 노인 돌봄을 위해 도입됐던 장기요양보험제도에서 찾을 수 있다. 장기요양보험은 크게 시설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시설 급여와 재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재가 급여로 구분된다. 그러나 등급과 무관하게 재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이 4시간 이하로 매우 적어, 경증 환자까지도 시설로 향해야 하는 상황이다. 사회보장위원회 커뮤니티케어 전문위원회에서 위원장을 역임했던 이건세 교수(건국대 의학과)는 “물론 재택에서 생활하기 어려운 노인에게는 시설 돌봄이 필요하지만, 현재는 시설이 필요 없는 인원까지 시설로 향하는 사회적 입원이 많기 때문에 문제”라고 지적했다. 

노인이 부족한 시간이나마 재가 서비스를 이용하려고 해도, 1천 개 가까이 되는 사회 서비스가 쪼개져 있고 제도별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구조라 여의치 않다. 김보영 교수(영남대 휴먼서비스학과)는 이런 현상이 “최소한의 재가 서비스만을 먼저 제공한 뒤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서비스를 덧붙이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세세히 나뉜 재가 서비스에 대한 설계를 제공해주지도 않으므로, 이용자는 무엇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다.

▲국민건강보험 「2008 노인장기요양보험통계연보」, 「2022 노인장기요양보험통계연보」, 「2022 상반기 건강 장기요양보험 주요통계」 발췌.
▲국민건강보험 「2008 노인장기요양보험통계연보」, 「2022 노인장기요양보험통계연보」, 「2022 상반기 건강 장기요양보험 주요통계」 발췌.

결국 국내의 요양시설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노인 돌봄도 민간의 시설 돌봄으로 향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18년 65세 이상 사망자 중 시도별 요양병원·요양원 평균 재원기간 현황」에 따르면 2018년도 전국에서 사망한 65세 이상 노인은 사망하기 전 평균 707일을 요양병원과 요양원에서 지냈다. 요양병원과 요양원 또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시장 논리에 의해 구축돼 대형화된 민간 장기요양기관은 서비스 질을 담보하지 못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체 장기요양기관의 약 99%는 민간 기관이었다.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 사업자에게 장기요양이 맡겨지면 가장 먼저 돌봄을 담당하는 사람의 처우와 질이 낮아질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의 「2019 장기요양 실태조사」에 따르면 평균 연령이 58.7세인 장기요양요원의 월 평균 임금은 115.4만 원인데다 계약직 비율이 61.9%에 달했다. 건강보험연구원 유애정 통합돌봄연구센터장은 이에 대해 “민간 시설이 난립하며 서비스 질이 낙후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커뮤니티 케어가 도입되기는 했지만=노인 돌봄의 시설화가 촉발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일, 일본, 영국 등 다양한 나라는 커뮤니티 케어를 대안으로 제시해 왔다. 커뮤니티 케어는 ‘지역사회에서 늙어가기’(Aging in Place)를 추구하는 정책으로, 지역사회 내 여러 자원을 구축해 노인이 친숙한 장소에서 노후를 보내며 사회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돌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국가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하는 길이기도 하다. 황명진 교수(고려대 공공사회통일외교학부)는 “경증장애인 노인 돌봄 수요가 훨씬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중증장애인 노인에 적합한 시설 중심의 돌봄 체계는 재정에 부담이 된다”라고 말했다.

한국도 2018년부터 ‘지역사회 통합돌봄’이라는 이름으로 커뮤니티 케어 도입에 관해 논의하는 중이다. 2018년 11월, 문재인 정부가 지역사회 통합돌봄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2026년까지의 로드맵과 4대 중점과제를 제시하고 2019년부터 지역 자율형 통합돌봄 모형을 만들기 위한 선도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2019년부터 2022년까지 △광주 서구 △경기 부천 △충남 천안 △부산 북구 등에서 순차적으로 선도사업을 실시해, 지역 자율형 커뮤니티 케어 모델을 개발하고 서비스 대상자 유형을 선정했다. 

그러나 이것이 성공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방에 복지의 행정적·재정적 자율성이 보장되는 것이 커뮤니티 케어 성공의 핵심 요건 중 하나인데, 한국은 재정 권한은 정부가, 행정 권한은 정부와 지자체가 나눠 가졌다. 유애정 센터장은 “지역이 책임성을 가지려면 현재 분리된 재정과 행정에서의 권한을 통합해야 한다”라며 “그러나 한국은 보건복지부가 보험을 전부 관장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통합돌봄 서비스를 관리하는 주체 역시 건강보험공단과 지자체로 분리돼 있어 지역 내 노인 돌봄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어려웠다. 김보영 교수는 “결과적으로 지역사회 통합돌봄은 중앙집권적 제도를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지역사회 통합돌봄이라는 새로운 사업을 덧붙인 격이었다”라고 비판했다. 

지역사회 내 의료와 복지의 통합적 연계가 부족한 것도 문제였다. 커뮤니티 케어의 핵심은 시설을 넘어 사회에서도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국대 인구와사회협동연구소 이태헌 연구원은 “선도사업 지역에 가서 조사한 결과 커뮤니티 케어 내 재가 의료 서비스가 부재했다”라고 평했다. 이건세 교수 또한 지역사회 내에서 의사의 방문 진료 및 간호사의 간단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도의 지원도 부족해 시설로 가는 상황”이라며 재차 커뮤니티 케어 시행을 위한 의료 인프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가 시행했던 앞선 시범사업을 발판 삼아, 윤석열 정부에서도 커뮤니티 케어 고도화를 위한 새로운 시범사업을 시작한다. 시범사업은 지난 7월부터 12개 기초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시행됐으며, 2025년 12월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유애정 센터장은 “현재 보건복지부가 추진 중인 사업은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 등 전문직으로 구성된 팀을 통한 통합 케어가 핵심”이라며, “이런 한국의 커뮤니티 케어 정책은 일본의 영향을 받은 측면이 있다”라고 밝혔다. 새로운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커뮤니티 케어가 성공적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기자단은 법적·문화적 환경이 한국과 닮아있으면서, 2005년부터 커뮤니티 케어 실천을 시작한 일본을 방문했다.

 

일본에서 보는 커뮤니티 케어

◇일본의 커뮤니티 케어,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일본의 커뮤니티 케어는 ‘지역포괄케어시스템’으로, 지역 책임성을 기반으로 통합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기본적인 제도 체계는 중앙에서 관장하지만 지역포괄케어시스템 내의 구체적인 사업 내용은 지역에 따라 상이하다. 김보영 교수는 “일본도 우리나라와 똑같이 사회보험 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건강보험공단이라는 중앙집권적 조직이 보험 운영을 책임지는 반면 일본은 시정촌으로 불리는 각 지자체가 책임지고 자율적으로 정책을 구상해나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은 ‘지역사회에서 늙어가기’라는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계를 살펴보면 일본은 2005년 이후 병원에서 사망하는 사람의 비율은 줄고, 자택에서 사망하는 사람의 비율은 점차 늘고 있다. 송병기 의료인류학자는 “지역포괄케어를 시행한 2005년에는 일본의 전체 사망자 중 79.8%가 병원에서 사망하고 12.2%가 자택에서 사망했지만, 2021년에는 65.9%가 병원에서 사망하고 17.2%가 자택에서 사망했다.”라고 설명했다. 

일본에서 보건복지부 역할을 하는 후생노동성(후생성)에 따르면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의 핵심적 구성요소는 의료·개호(돌봄)·주거로, 케어 매니지먼트를 토대로 이런 요소들이 총체적으로 제공될 수 있도록 지역사회 내 여러 자원을 연계해 놨다. 삼육대 장애인·노인 자립지원종합연구소 방진아 연구원은 “일본의 지역포괄케어는 주거, 돌봄, 의료, 생활 지원 등을 연계해 자신이 살던 지역사회 안에서 노인이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은 의료와 돌봄이 연계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주민에게 상담을 제공하는 지역포괄센터를 중추로, 다양한 돌봄 서비스와 의료 서비스를 운영한다. 구체적으로는 돌봄을 받는 노인이 낮 동안 치료를 받는 데이케어 서비스 스튜디오나, 일본형 요양원인 특별요양노인홈, 방문 간호 스테이션 등이 일본 개호법에 명시돼 각 지역마다 여러 개 존재한다.

 

◇노인 친화적인 돌봄 서비스=일본 전역에 위치한 지역포괄케어센터 중 기자들이 방문한 아마가사키시 지역포괄케어센터는 여러 복지 시설이 모인 모쿠엔 빌라 1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북적이던 사무실에서 나와 기자단을 맞이한 아마가사키시 지역포괄지원센터 요리스에 타쿠야 개호사는 “센터에 상주하는 케어 매니저에게 가장 중요한 업무는 개개인이 보험 점수에 따라 어떤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 상담을 제공하고 본인과 가족의 요구에 따라 케어 플랜을 짜주는 것”이라며 “돌봄 서비스가 제대로 적용됐는지도 함께 확인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데이케어 서비스 스튜디오의 재활 시설을 체험하는 기자.
▲데이케어 서비스 스튜디오의 재활 시설을 체험하는 기자.
▲데이케어 서비스 스튜디오의 배리어프리 입욕 시설.
▲데이케어 서비스 스튜디오의 배리어프리 입욕 시설.

모쿠엔 빌라의 다른 입구로 들어서자, 한 노인이 데이케어 서비스 스튜디오에서 재활을 마친 후 부축을 받아 승합차에 올라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데이케어 서비스 스튜디오는 개호사·재활요양사·간호사 등 다양한 인력이 근무하는 복지 센터로, 집에 거주하는 노인이 하루 중 일정 시간 동안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해당 센터에는 재활 기구, 배리어프리 입욕 시설 등 다양한 최신식 기구가 있어 노인의 재활을 도울 뿐 아니라 지역 주민이 모여 교류하는 기능도 함께 수행할 수 있다. 아마가사키시에만 이런 시설이 50개 이상 있다. 요리스에 타쿠야 개호사는 “시니어 맨션에 사시는 분, 집에 거주하시는 분 등 다양한 분들이 자주 이곳을 방문해 배리어프리 입욕 시설 등을 이용한다”라고 말했다.

▲특별요양노인홈의 개인실.
▲특별요양노인홈의 개인실.
▲특별요양노인홈 식당의 모습.
▲특별요양노인홈 식당의 모습.

스튜디오의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자 아늑한 일본풍의 개인실이 늘어선 특별요양노인홈이 있었다. 특별요양노인홈은 자립 생활을 위한 조건이 갖춰진 요양 주택으로, 데이케어 서비스 스튜디오를 비롯해 사회복지법인이 추진하는 다양한 서비스와 연계돼 있다. 모쿠엔 빌라 후쿠다 노자미 시설장은 “기본적으로는 상황에 맞춘 개호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가능한 재택 생활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돕지만, 재택 생활이 불가한 경우 특별요양노인홈으로 연계한다”라고 말했다. 20명이 머무는 특별요양노인홈의 개별 방의 면적은 40㎡이상으로, 재택과 비슷한 배치의 개인실로 이뤄져 있다. 뿐만 아니라 배리어프리한 변기, 통로 등 고령자의 생활을 배려한 설비를 완벽히 갖췄다. 

 

◇자택에서도 가능한 의료 서비스=지역포괄케어시스템에서 방문진료나 방문간호 등의 재가 의료 서비스는 노인의 재가 생활을 돕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기자는 아사다 의원에서 막 방문진료를 마치고 병원으로 돌아오는 아사다 신지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지역에서 아버지를 뒤이어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아사다 신지 의사는 “아버지 때는 건강하게 온 환자들이 나이가 들어 집에 계시니 방문진료를 하게 됐다”라며 “오후 내내 방문진료를 한 이후, 오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병원에서 추가 진료를 본다”라고 설명했다. 아사다 신지 의사는 현재 20명의 환자를 정기적으로 방문해 진료하고 있다. 일본은 방문진료에 대한 보수가 높아, 방문진료만으로 병원의 경영이 성립되는 구조다. 아사다 신지 의사는 “방문진료가 일반 진료보다 수가가 7배 높다”라고 말했다.

한편 방문간호 스테이션은 헬퍼, 재활 치료사 등 다직종 간 연계를 통해 방문 순회 간호를 지원한다. 아마가사키 방문간호 스테이션 나오코 나비카 간호사는 “방문간호 스테이션은 건강보험이나 개호보험 둘 다 적용할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방문간호 스테이션이 의료와 돌봄을 잇는 중간적 위치를 담당하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위해 방문한 사무실의 벽면에는 오늘의 방문간호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아마가사키 방문간호 스테이션 아즈마네 소장은 “병원은 환자를 퇴원시키기 위한 치료가 목적이지만 고령의 당뇨환자 등 만성질환 환자는 장기적인 보살핌이 동반된 치료 자체가 목적인 경우가 많다”라며 “방문간호 스테이션은 그런 분들이 가정 내에서 꾸준히 치료받으면서 본인 의사에 따라 사는 곳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다”라고 말했다. 

 

◇아마가사키시, 의료와 돌봄을 잇다=방문간호 스테이션과 아사다 의원은 지역포괄센터를 중심으로 지역 내 의료, 돌봄 기관과 연계돼 있다. 나오코 나비카 간호사는 “케어 매니저로부터 환자를 연계받고, 더 많은 의료 지원이 필요하면 의사에게 연락한다”라며 “지역포괄케어시스템 내 모든 기관들이 연결돼 있어 집에서 지내고 싶은 사람이 집에서 지낼 수 있도록 돕는다”라고 강조했다. 아사다 신지 의사 역시 “지역포괄센터에서 환자를 연계받고, 의료와 개호가 동시에 필요한 경우 방문간호 스테이션으로 연계한다”라고 말했다. 환자의 단순 연계를 넘어 개호와 의료 담당자 간 인적 커뮤니티도 두텁게 형성돼 있다. 아즈마네 소장은 “후생성에서 서비스 담당자 회의를 열어야 하는 입원이나 퇴원 등 네 가지 상황을 법적으로 정하고 있어 케어 매니저, 의사, 간호사 등 환자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모여 회의를 진행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아마가사키시는 아마쓰나기 의료개호연계지원센터를 운영해 의료와 돌봄 분야 전문가를 대상으로 상담을 진행하고 직종 간 연계를 돕는다. 고바야시 유코 코디네이터는 “시민의 돌봄 서비스 관련 상담은 지역포괄케어센터가 담당한다면, 우리는 케어 매니저나 의사 등 관련 전문가의 상담을 담당하고 시내에서 재택의료를 지원하는 병원, 방문간호 스테이션 등을 조사해 관계자들 간 제휴를 지원한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아마가사키시는 아마쓰나기 의료개호연계지원센터에서 케어 매니저 협회 등 의료·개호와 관련된 17개 단체가 매달 의료와 개호를 어떻게 연계시킬 것인지에 대한 정례 협의회를 개최한다. 아마쓰나기 센터는 이 회의에 참여해 이곳에서 연계 관련 과제를 설정하고 지원을 돕는다. 협의회의 역할에 대해 유코 코디네이터는 “한번은 케어 매니저가 환자의 의료 정보를 받을 때 돈을 내야 하는 상황이 있었는데, 의사회와 케어 매니저 협회가 원활히 무료로 정보를 제공받게 됐다”라고 예를 들었다. 협의회 개최를 돕는 아마가사키시 복지국 고령개호과 타나카 요시로 계장은 “환자 한 명에 대해 협의회를 개최하는 곳은 많지만, 관련 직군 협회들이 모두 모여 매달 회의를 하는 곳은 아마가사키시뿐”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고베시, 지역이 주도하는 다채로운 정책=고베시는 인구 백만의 대도시로, 개호보험 아래 지역의 노인을 대상으로 다양한 복지 정책을 펼치고 있다. 고베시가 이처럼 다채로운 지역포괄케어 정책을 추진하는 이유는 지역의 보험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일본은 중앙정부가 아닌 지자체가 개호보험 재정을 관리하고 책임지는 구조이기에, 노인이 건강하게 지역사회에서 생활하면 해당 지역의 재정 부담도 덜게 된다. 고베시 개호보험과 미타니 가즈히토 계장은 “고베시의 노인들이 늙어갈수록 보험 재정에 부담이 커진다”라며 “재원 부담이라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라도 노인이 더 건강하게 오래 살면서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남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니어 건강 포인트 관련 활동 중인 노인들. (사진제공: 고베 시청)
▲시니어 건강 포인트 관련 활동 중인 노인들. (사진제공: 고베 시청)

고베시 시청에 방문한 기자는 고령복지과와 개호복지과가 운영하는 노인 대상 복지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고베시는 최근 ‘시니어 건강 포인트 제도’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해당 제도 아래 고베시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노인은 개호보험이 적용되는 고령자 및 어린이 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면 카드에 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고 추후에 포인트를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개호보험과 미타니 가즈히토 계장은 시에서 제도의 대상이 되는 시설을 확대하고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7월 말 기준으로 1,942명이 등록했다”라며 “지급받는 금액이 많지는 않지만, 참가하는 노인은 사회 활동을 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을 느낀다”라고 전했다. 

고베시는 지역에 기반을 둔 기업과 협업해 노인 복지를 확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주식회사 COMPASS는 시에서 취업지원 사업을 위탁받아 온라인으로 노년층의 취업 상담을 돕고 있다. 주식회사 COMPASS의 오츠 아이 최고경영자는 “구직자가 일을 구하고자 해도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고, 기업도 노동 인구가 줄고 있어 인력이 필요하다”라며 고령 구직자와 기업 사이를 매개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은

일본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보건·의료·요양·돌봄·주거지원 등 기존의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기반을 만드는 일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아사다 신지 의사는 “일본의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은 의료와 개호의 연계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아즈마네 소장은 그 이유에 대해 “환자 한 명에 대해 의료만 할 수도 없고 개호만 할 수도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는 한국의 커뮤니티 케어가 놓치고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송병기 의료인류학자는 “현재의 장기요양보험제도는 의료와 돌봄을 완전히 분리해 위계화했다”라고 비판하며 “의료는 본래 치료나 재활뿐 아니라 완화·돌봄의 개념도 포함하며, 이것이 잘 지켜질 때 환자의 존엄을 지킬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일본에만 있는 케어 매니저 및 의료‒돌봄 전문가의 연계 등 다양한 정책을 참고해, 한국 현실에 맞춘 커뮤니티 케어를 구상할 수도 있다. 특히 지자체에 재정 권한을 보장해 정책에 대한 책임성을 부과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김보영 교수는 “지자체가 주민에 대한 돌봄 책임을 회피할 수 없도록 책임을 집중시켜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건세 교수는 “일본은 지자체가 보험 운영자라 지자체 스스로가 재정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자연스럽게 커뮤니티 케어 정책 목표를 달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라며 “한국도 지자체가 재정 책임성을 가질 수 있어야 커뮤니티 케어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제언했다.

 

커뮤니티 케어는 비인간적인 시설 돌봄에 대해 새로운 돌봄 패러다임이 가능하다는 선택지를 제시한다. 이건세 교수는 “커뮤니티 케어가 올바르게 정착하기 위해서는 아파도 지역사회 내에서 살 수 있다는 인식 변화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노인 돌봄이 당면한 열악한 상황은 당장 우리가 마주할 미래다. 어떤 노후를 보낼 것인가, 그리고 현재의 복지 재정을 어떤 방식으로 쓸 것인가를 결정하는 국가의 선택에 관심을 기울일 때다. 

 

삽화‧인포그래픽: 박재아 기자

0204jaea@snu.ac.kr

김예라 기자

siksik0928@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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