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유림(협동과정 미술교육전공 석사과정)
손유림(협동과정 미술교육전공 석사과정)

예술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바꿀 수 없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정치지 예술이 아니다. 예술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일 것이다. 그렇게 바뀐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

1930년 10월, 프랑스에서 태어난 니키 드 생팔은 11살에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그날의 기억은 흐려지지 않고 그가 아이를 낳고 어른이 될 때까지 괴롭혔다. 급기야 가위와 칼을 가방에 넣고 다니지 않으면 외출이 힘들 정도로 신경쇠약에 시달렸고, 그는 치료를 위해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정신병원에서 그는 미술치료를 받으며 해방감을 느끼고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생팔은 일명 ‘사격 회화’(Shooting Painting)로 예술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는데, 이는 물감 주머니에 석고를 발라 캔버스에 걸어두고 무작위로 총을 쏴 물감을 터뜨리는 방식을 뜻한다. ‘총을 쏘는 행위’는 자신에게 고통을 줬던 남성을 향한 분노며, ‘물감을 흘리며 아파하는 캔버스’는 상처받은 생팔의 내면을 상징한다. 그는 자신을 억압했던 전통적 성 역할과 가부장제에 총구를 겨눴고, 피 흘리는 캔버스를 먼 거리에서 객관적으로 관찰함으로써 자신의 아픔을 치유했다. 이후 생팔은 작은 얼굴과 날씬한 몸을 가져야만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적 억압을 거부하며, 검은 피부와 과장된 가슴, 부푼 엉덩이를 가진 여인상을 제작했다. 화려한 색과 친숙한 몸매로 사랑받는 이 〈나나〉 시리즈는 다양한 형태로 제작돼 세계 여러 나라에 전시됐고, 수동성을 거부하고 주체적인 여성성을 알리고자 했던 그녀의 생각은 여성해방운동의 시작을 알렸다. 

총을 쏘고 있는 니키 드 생팔
총을 쏘고 있는 니키 드 생팔
「검은 나나」, 1995, 금속지지대에 폴리에스터 레진와 유리섬유, 287x213x113㎝, 개인 소장
「검은 나나」, 1995, 금속지지대에 폴리에스터 레진와 유리섬유, 287x213x113㎝, 개인 소장

스피노자는 말했다.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추상적인 감정과 에너지는 미술 재료의 힘을 빌려 구체적인 형상으로 표현되고, 창작자는 그 과정에서 치유된다. 미술의 이런 치유적 효과는 창작자를 넘어 작품을 감상하는 다수의 타인에게까지 전달되기도 한다.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나를 바꾸라고 했던가. 니키 드 생팔은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창조의 싹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구원함으로써 세상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왔다.

초등학교 때 누구나 일기를 쓴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글을 쓰는 행위는 추상적인 내 생각을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정교한 작업이었다. 지금 내게 벌어지고 있는 일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능력, 복잡한 생각을 정리해 나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은 쉽게 상처받지 않는 감정의 근력을 키운다. 내게 찾아온 기쁨과 슬픔의 감정을 공평하게 느끼고 표현하다 보면 나 자신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고, 타인을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비평받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고, 비평하는 것에 능숙해져 서로의 감정을 건강한 방식으로 교환할 수 있는 개인을 기르는 것이 예술 교육의 본질이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생업을 벗어 던지고 예술 학교에 등록하라는 말이 아니다. 나 자신을 성찰하고 표현하는 것은 어디에서나, 어떤 형태로든 가능하다. 답답한 마음을 두서없이 적어볼 수도 있고, 지금 자연을 보고 느껴지는 감동을 구체적인 말로 표현해 보거나, 그림일기를 시작해 볼 수 있다. 내면의 외침에 귀 기울이고, 가장 적절한 방법을 찾아 분출시키는 것이 나를 돌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창조의 마법이 나 자신에서 매끄럽게 시작됐다면 그 영역은 곧이어 나의 가족, 나의 일, 그리고 어쩌면 세계로도 뻗어나갈 것이다. 생각하고, 표현하고, 소통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라. 모든 시작이 거기에 있다. 

“창조성에는 전염성이 있다. 퍼뜨려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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