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호
경영대 교수ㆍ경영학과

세계적인 금융전문가 자격인 CFA (Chartered Financial Analyst)를 위한 윤리규범은 금융인의 행위지침을 매우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제시하고 있으며, 이를 철저히 준수할 것과 위반할 경우 자격 박탈을 포함한 강력한 징계 조치가 따를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이 규정의 취지는 윤리의식이 전문성을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생명윤리에 관한 글을 쓰겠다며 금융인의 윤리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투자ㆍ금융분야의 전공자로서 내가 아는 직업윤리의 중요성과 취지가 요즈음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생명윤리 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에서 법규나 윤리규정이 추구하는 바는 시장의 효율성과 공정성을 증진시켜 사회적 효용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여기서 효율성은 경제적 이득이 극대화되도록 자원을 배분하는 것과 금융자산의 가격이 모든 중요한 정보를 신속하게 반영함으로써 시장이 제대로 작동되게 하는 것 등을 의미한다. 공정성은 투자자가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는 것을 의미한다.

효율성과 공정성의 두 목표는 상호보완적이지만, 상충관계인 경우도 많다. 즉 효율성을 추구하는 노력이 공정성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부자 거래는 시장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지만 공정성 측면에서 보면 ‘정보를 동등하게 얻을 투자자의 권리’를 침해한다. 따라서 감독기관의 핵심 역할은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되 최적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하는 일이다.

공정성의 추구는 경제적 이득과 별 관계가 없는 것으로 들릴 수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공정성이 무너지면 효율성 또한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정성을 무시하는 것은 스포츠 경기에서 게임의 룰을 지키지 않는 것과 같다. 선수들이 게임의 룰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 경기는 곧 중단될 것이며, 게임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박탈당할 수밖에 없다.

며칠 전 일간지에서 생명윤리의 기본은 ‘인간존중’, ‘이득’, ‘정의’의 세 가지 원칙의 균형과 조화라는 내용의 글을 읽었다. 이 중 ‘이득’의 원칙은 생명연구의 결과가 가져다 줄 경제적 효과에 관한 것으로 앞에서 말한 효율성 추구에 비유된다. ‘정의’의 원칙은 인간의 기본권 보호를 위한 것으로 공정성 추구에 비유된다.  ‘인간존중’의 원칙은 ‘정의’의 원칙에 포함될 수 있지만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분리해 낸 원칙이라 짐작된다.

최근 생명윤리에 관한 과열된 논란은 ‘이득’과 ‘정의’의 어느 한 부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입장들이 팽팽하게 대립했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이 문제는 대립상황에서 풀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두 원칙은 많은 경우 상충관계를 가진다는 사실과 이 상충관계는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생명윤리 논쟁의 핵심은 두 원칙의 상대적 중요성을 정확히 판단하는 일이 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상대적 중요성을 따지는 데 있어 우리의 문화적 특수성보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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