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진 강사(철학과)
임성진 강사(철학과)

연휴 때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하는 상황에서 친구가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고 해보자. “〈범죄도시3〉을 보면 좋을 것 같아. 천만 관객 돌파 영화거든.” 〈범죄도시3〉을 보라는 친구의 조언을 따라야 할까? 천만 명 이상이 본 영화라면 남들 따라 나도 봐야 할 것 같다. 사실 천만 관객 돌파 영화는 작품이 좋아서 보러 가는 경우도 있고, 주위에서 보니까 분위기에 휩쓸려 보러 가는 경우도 있다. 한 번 더 생각해 보자. 〈범죄도시3〉이 천만 관객 돌파 영화이기 때문에 친구의 조언을 따라 〈범죄도시3〉을 봐야 할까?

친구의 조언은 일종의 ‘논증’이다. 논증은 ‘주장’(결론)과 ‘근거’(전제)로 이뤄지는데, 친구의 주장은 ‘〈범죄도시3〉을 보라는 것’이고, 그 근거는 ‘〈범죄도시3〉이 천만 관객 돌파 영화라는 것’이다. 근거가 주장을 제대로 뒷받침하면 친구의 조언은 올바른 논증이 되는데, 안타깝게도 친구의 조언은 잘못된 논증인 ‘오류’가 된다. 왜냐하면 주장과 그 근거가 논리적으로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대기 손님이 많은 가게의 음식이 반드시 추천 음식은 아니듯, 관람객이 많은 영화가 반드시 추천 영화는 아니다. 〈범죄도시3〉이 전작인 〈범죄도시1〉과 〈범죄도시2〉만큼 매우 재미가 있음을 근거로 제시했더라면, 친구는 오류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친구가 범한 오류는 ‘군중에 호소하는 오류’인데, 이 오류는 주장자가 대다수 사람과 같은 부류에 속하기를 원하는 군중 심리에 호소해서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이도록 할 때 생긴다.

친구가 범한 오류를 파악하지 못해 〈범죄도시3〉을 보게 되면, 시간과 비용을 썼을지라도 아마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때때로 오류를 파악하지 못해서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전셋집을 구하려고 부동산에 방문했을 때, 부동산 중개업자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 해보자. “이 집의 전세가는 주변 시세보다 저렴합니다.” 그런데 이 집이 곧 경매로 넘어간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그의 주장은 ‘이 집을 전셋집으로 구하라는 것’이고, 그 근거는 ‘이 집의 전세가가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다는 것’이다. 이 근거만이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면, 그의 주장대로 이 집을 전셋집으로 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집이 곧 경매로 넘어간다는 사실도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면, 이 집을 전셋집으로 구해서는 안 된다. 나중에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기기 때문이다. 부동산 중개업자는 전세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자신의 주장에 불리한 근거를 일부러 은폐했다. 이 집에 금전 문제나 법적인 문제가 있는지를 확인하지 않은 채 부동산 중개업자의 말만 믿고 전세 계약을 하게 되면 나중에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등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처럼 타인이 범한 오류를 파악하지 못하면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또한 여기서 부동산 중개업자가 범한 오류는 ‘은폐된 증거의 오류’인데, 이 오류는 주장의 참이나 거짓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근거를 무시할 때 생긴다.

타인이 범한 오류를 파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오류에 빠졌음을 모른 채 살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류가 뭔지 잘 모르더라도 오류 파악을 위해 대략 다음 두 가지에 신경 쓰면 좋겠다. 타인의 말이 논증이라는 전제하에, 첫째로는 그의 주장이 무엇이고 그 근거가 무엇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고, 둘째로는 근거가 주장을 잘 뒷받침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근거가 주장과 논리적으로 관련이 있는지, 누락되거나 은폐된 근거가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루에 5분이라도 시간을 내서 이 두 가지에 신경 쓰는 습관을 들이면 어떨까?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