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서울고법 춘천재판부는 청소년성보호법상 성 착취물 제작·배포 등 혐의로 기소된 A씨(25)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아동과 청소년 출입이 잦은 건물 여자 화장실에서의 불법 촬영 범죄가 ‘성 착취물 제작’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1심과 2심의 판단이 엇갈린 것이다. A씨는 지난해 8~9월 상가의 여자 화장실에 초소형 카메라를 설치해 47회에 걸쳐 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을 맡은 춘천지법 강릉지원은 △범행을 위해 여자 화장실에 침입한 혐의 △초소형 카메라 설치를 위해 천장을 뚫은 혐의 △성 착취물 800개를 소지한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여자 화장실에 침입한 혐의(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위반)와 천장을 뚫은 혐의(재물손괴)에 대해서는 유죄로 판단했지만, 성 착취물 제작 범행 부분은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아동·청소년이 화장실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신체 부위를 노출한 것은 성적 행위가 없고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음란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재판부의 판결은 국민의 법감정과 사회적 성인지 감수성에 뒤떨어지는 지나치게 형식적인 판결이다. 2021년에 아동 및 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에 대해 대다수의 국민이 공감함에 따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개정됐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를 강화하고자 했던 입법자의 의지에 대한 재판부의 제한적 인식 수준을 보여준다. 아울러 이번 판결은 불법 촬영물의 유포 및 소비 양상이나 노출된 신체 부위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으며, 특히 피해자가 아니라 일반인의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기준으로 성 착취물 여부를 판단했다는 점에서 피해자의 권익을 소홀히 다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는 성 착취물 제작과 유포의 현실 및 이에 대한 피해자와 국민의 우려를 고려하는 데 실패한 판결이다.

대법원(대법원 2003도6514, 대법원 2019도14056)과 서울고법(2022노408) 등은 성 착취물 혐의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다른 죄로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에 법적 공백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영상이 한번 유포되면 걷잡을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한다. 그렇기에 화장실 등 취약 공간에서의 불법 촬영에 대한 법적 판단기준을 두고 공적인 논의와 숙고가 절실히 필요해 보인다. 법원은 판례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신중히 고려해 무딘 현실감각을 벼려야 하고,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판결을 내려야 할 것이다.

실제로 시대적 흐름에 따라 법리가 변화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달 21일에는 대법원에서 40년 만에 강제추행죄에서 폭행·협박에 대해 ‘피해자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일 것을 요구하는 해석을 폐기해, 강제추행 피해자에게 ‘정조를 수호하는 태도’를 요구하는 구시대적 관념에 제동을 걸었다. 시대의 변화와 국민의 법감정을 고려해 스스로 혁신해 가는 법원의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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