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민지 부편집장
구민지 부편집장

나는 마음이 빨리 식는 편이다. 한 아이돌을 3주 넘게 좋아해 본 적이 없고, 취미나 음식도 평생 좋아할 듯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이 정리되는 편이다. 물론 나에게도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이 소중하고,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영원할 것 같던 마음도 어느 순간에는 변해있는 것을 반복해서 발견하다 보니, 사람의 마음은 간사해 나도 모르는 새 변하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틀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를 깨닫고 나니, 무언가 하나를 진득하게 좋아하는 일이 더욱 힘들었다. 

짧은 시간이라도 열심히 좋아하자는 생각에 그 마음을 빠르게 소진해버려서인지, 좋아했던 마음은 수월히 정리되고는 했다. 그리고 내가 무언가를 진정 좋아하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회의감에 스스로를 의심하게 됐다. 이는 내가 꿈꿨던 진로에 대한 의심이나 인간관계에 대한 불확신으로도 이어졌고, 나는 싫어하는 것도 열렬히 좋아하는 것도 딱히 없는 사람이 돼 있었다.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알고 확실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 신기했다. 어렸을 적 본 야구 만화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향해 달려 나가는 주인공의 확신이 부러웠고, 서로에게 의심 없이 애정을 표현하는 연인들의 용기가 부러웠다.

사람과의 관계도 언젠가 끝날 관계라는 것을 생각하면 무력해졌던 듯하다. 특히 연애의 경우 지속 기간이 짧고 대부분은 헤어짐으로 끝나기에, 나와 상대의 마음에 굳이 확신을 가질 노력도 하지 않았고 그만큼 관계에 진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런 나와 정반대에 있는 그를 만나게 됐을 때는 신기하다는 생각이 가장 크게 들었다. 누군가를 저렇게 순수하게 좋아하는 모습에 마음이 흔들린 탓일까. 언젠가는 마음이 달라지고 이 시간이 떠올리기도 불편한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커져, 이런 생각을 가지고 받은 만큼 돌려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해졌다. 그러나 사랑이 본래 끊임없이 불안한 것이며 확인이 필요한 과정임을 알게 된 순간, 와닿지 않던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것도 같았다. 그리고 어느 시점부터는 현재의 내 마음을 의심하기보다 받아들여 보기로 했다. 후회로 남을까 불안해하고, 진심이 되지 않으려 애매하게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단 애인뿐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도 애정을 한껏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에는 예측할 수 없는 이별도, 그래서 더 크게 느껴지는 아픔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일상에 익숙해진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표현하기를 낯간지러워하고, 습관적인 태도로 시간을 흘려보내고는 한다. 오히려 나는 오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었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은 현재를 더 가치 있고 풍요롭게 만들어 줄 때 그 가치를 지닌다고 믿는다. 지금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 됐든 스스로를 좀 더 믿어주고 나아갈 수 있기를, 그래서 이 글을 읽은 이들에게 현재의 모든 순간이 충실하고 온전한 시간으로 남기를 바란다.

 

성숙하지 못한 나를 보듬은 건 결국 / 당신의 기나긴 보통의 날들

너르지 못한 내 마음 쪼가리를 견뎌준 / 당신의 날들은 결코 고요하지 않았을 텐데

스스로의 답답함이 극에 이를 때 / 감정을 토하는 것이 전부였던 내가

미안함과 고마움을 한데 묶어 / 당신에게 고이 건넨다

‒「고마운 당신에게」(이원영,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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