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소비자 기만하는 ‘다크패턴’, 바로잡기 위해서는

“일주일 무료 체험하세요!” 서울대에 재학 중인 A씨는 유혹적인 문구에 끌려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의 구독 서비스에 가입했다. 그러자 일주일 뒤 그에게 돌아온 것은 환불도 불가한, 10만 원 상당의 연간 구독료 결제 내역이었다. A씨에게 남은 선택지는 사전 해지였으나 기업은 구독을 취소하려면 2만 4천 원의 수수료를 내라고 강제했다. A씨는 상담원에게 경제적 사정이 어려움을 호소해 간신히 수수료를 면했다. 이런 경험은 비단 A씨만 겪는 일이 아니다. 달콤하게 다가와 은밀하게 손해를 입히는 ‘다크패턴’에 우리 사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다크패턴은 무엇인가=영국의 독립 디자이너 해리 브링널은 사람을 속이기 위해 고안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다크패턴이라고 정의했다. 사업자는 소비자가 상대적으로 정보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이용해 의도적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식으로 이들을 속인다. 결국 소비자는 원치 않는 서비스에 가입하거나 예상치 못한 지출을 경험하게 된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다크패턴을 크게 △편취형 △오도형 △방해형 △압박형 상술 4가지 범주와 그에 따르는 19개의 세부 유형으로 구분한다. 가령 편취형에는 소비자에게 사전 공지 없이 무료 서비스를 유료로 전환하거나 월 구독료를 인상한 뒤 자동으로 결제하는 ‘숨은갱신’ 유형이 있다. 오도형 중 ‘잘못된 계층 구조’ 유형은 굳이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필수 조건처럼 꾸며내 반드시 선택해야만 하는 것처럼 오인하게 만드는 행위를 포함한다.

더불어민주당 정필모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다크패턴 관련 소비자 상담 건수’는 180건으로 98건을 기록한 2021년 대비 약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직전 4년의 평균인 105건과 비교해도 급격히 증가한 수준이다. 공정위 한기정 위원장은 “국내 100개 전자상거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중 97%에서 최소 1개 이상의 다크패턴이 발견됐다”라며 디지털 환경에서 다크패턴이 만연하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의 한계와 피해 방지를 위한 노력=그러나 현행 제도만으로 다크패턴을 완벽히 규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법무법인 세종 최헌영 변호사는 “현행법 중에는 전자상거래법이나 표시광고법, 전기통신사업법 등에 다크패턴과 관련된 일부 규정들이 있으나, 다양한 다크패턴 유형을 포괄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법령은 마련돼 있지 않다”라며 기존 제도의 한계를 밝혔다. 한기정 위원장도 “특정 옵션 사진 선택, 순차 공개 가격 책정, 반복 간섭 등을 포함한 6가지 유형의 경우 현행법으로 규율할 수 없다”라며 소비자가 취약한 상황에 노출됐다고 설명했다. 심각성을 느낀 공정위는 지난 7월 소비자 피해 유발 우려가 큰 다크패턴 사례 및 피해 방지를 위한 유의점 등을 담은 ‘온라인 다크패턴 자율관리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가이드라인 역시 자율적 관리를 권고하는 정도에 그쳤다. 

이에 최근에는 국내에서 나타나는 다크패턴 규제를 위해 법안 제정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지난 8월 정필모 의원은 디지털 서비스 이용자의 권리를 체계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디지털 서비스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는 앞서 지난 8월부터 유럽연합(EU)이 디지털서비스법(DSA법)을 시행해 다크패턴 규제를 명시한 것에서 영향을 받아 ‘한국판 DSA법’이라고도 불리며,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해당 법률안은 디지털 서비스 제공자가 이용자를 기만하거나 이용자의 선택을 왜곡하는 방식으로 디지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위 등을 다크패턴으로 명문화해 금지했고, 위반 시에 부과되는 과징금 관련 규정을 구체적으로 설정했다. 그뿐만 아니라 ‘디지털이용자보호원’을 설립해 정책 연구, 홍보·교육, 신고접수·조사 등을 수행하겠다는 계획도 담겼다.

 

◇올바른 규제를 위해서는=하지만 다크패턴 규제에 대한 신중론도 있다. 정당한 마케팅과 다크패턴을 명확히 구분해 내기 어려운 와중, 섣부른 규제는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헌영 변호사는 “정당한 마케팅과 다크패턴의 구분에 절대적인 선이 있는 것은 아니라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렵다”라며, “다크패턴 규제는 기업의 자유를 어느 선까지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와 연관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다크패턴 규제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게 설정되면 기업 마케팅 방식에 제약이 생겨 창의적이고 기발한 마케팅 기법이 빛을 발하지 못할 수 있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에 규제 범위를 현실적으로 조금씩 넓혀감으로써 기업의 위축을 최소화하자는 논의도 나온다. 김광수 교수(서강대 법학부)는 “기존 법에서 규제가 가능한 부분을 엄격히 설정하되, 인터페이스의 투명성 확보 등 다크패턴 규제의 가장 기본적인 단계부터 차례로 기준을 정립해 나가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이런 유연한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려면 규제 마련 이전에 사회적인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나종연 교수(소비자학과)는 “지금의 디지털 환경은 모두가 처음 경험하는 새로운 환경이기 때문에, 잘못을 강력히 벌하는 규제 이외에도 사회가 지향하는 비전을 활발히 공유할 필요가 있다”라며 사회적 합의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또한 나 교수는 “각 이해관계자의 역할 및 책임을 제시하고, 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온라인 플랫폼의 활성화로 인해 새로운 유형의 다크패턴은 점점 고도화될 전망이다. 사회적 합의로 광고와 허위·과장 광고를 구분하는 기준을 마련한 것처럼, 다크패턴을 적절히 규율하기 위한 균형감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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