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를 만나다 |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저자 임지현 교수 인터뷰

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 폭탄 개발 과정을 담은 영화 〈오펜하이머〉는 지난 8월 15일 국내 개봉해 큰 인기를 끌었지만, 원폭 피해국인 일본에서는 개봉하지 못했다. 일본에서는 해당 영화가 2차 세계대전의 ‘피해자’로서 일본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불매 운동이 일기도 했다. 이처럼 저마다 자기 민족이 희생자라고 주장하는 시대다. 역사적 사실이 명쾌히 밝혀진다면 이런 역사 논쟁도 막을 내릴까? 『기억전쟁』,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의 저자 임지현 교수(서강대 사학과)는 우리가 마주하는 역사 논쟁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각 민족이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과 관련됐기에, 이를 바꾸지 않고서는 어떤 변화도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그를 만나 민족의 기억을 만들어 내는 여과지로서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에 대해 들어봤다. 

 

희생 기억의 정치적 이용,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임지현 교수는 초국가적 관점에서 기억의 역사를 비추는 기억 연구자이자 기억 문화를 바꾸기 위해 활발히 활동하는 기억 활동가다. 그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라는 개념을 떠올리게 된 계기로 폴란드와 한국에서의 경험을 회상하며 말문을 열었다. 임 교수에게 얀 그로스의 『이웃들』을 둘러싼 논쟁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는 “폴란드인의 유대인 학살을 묘사한 『이웃들』의 출간은 자기 민족이 제2차 세계대전의 절대적인 피해자라는 폴란드인의 믿음을 뒤흔들었다”라며 이를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평했다. 몇 년 후, 그는 한국의 모든 일간지에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한국에서 일본으로 힘겹게 귀환하는 일본인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요코 왓킨스의 자전적 소설 『요코 이야기』가 미국 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됐다는 보도를 접했다. 국내 언론은 일제히 거친 어조로 이 책이 ‘식민주의의 피해자인 한국인을 가해자로 묘사했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두 나라 모두 자기 민족이 절대적 희생자라는 믿음이 도전받을 때 당혹감을 넘어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을 보며 희생자의식이 민족주의의 중요한 요소임을 깨달았다”라고 전했다.

임 교수가 창안한 개념인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희생자의식을 세습해 현재 자신들의 민족 관념에 정치적·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민족주의다. 임 교수는 “현재 세대가 자신이 직접 겪지 않은 과거 세대의 희생에 대해 자신도 희생자이며 우리의 민족주의가 정당하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나아가 기억의 역사를 구성하는 틀이 된다. 공식적인 사료로 검증되는 역사적인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개인의 일상적 기억과 구별되는 민족의 문화적 기억은 그 민족의 의도에 따라 제각각이다. 이렇게 굳어진 기억의 틀은 한 집단의 무의식 속에서 그들이 과거와 현재를 인식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임 교수는 이런 문화적 기억의 틀에 관한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중요한 것은 누가 정확하게 기억하는지가 아니라 왜 똑같은 일을 겪었는데도 서로 다른 기억을 갖게 됐는지 밝혀내는 일”이라며, “결국 역사를 인식하는 기억의 틀이 변할 때 행동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는가에 따라 미래를 향한 실천방식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서사적 총합으로서 기억구성체도 물질적 힘을 갖는다. 더구나 기억은 사람의 마음과 감성을 움직이는 정동적 차원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어떤 이론이나 담론보다 실천적 효과가 더 크고 그만큼 파괴력도 더 크다. 

‒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중 

 

이런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탈냉전과 인권 감수성의 향상이라는 21세기 지구화 조건에 맞춰 새롭게 등장했다. 냉전 체제 아래 미국이 이끄는 반공주의 대중문화는 공산주의에 대항한다는 명목으로 독일의 홀로코스트 가해 기억, 일본의 원자 폭탄 피해 기억, 서구 국가들의 식민주의 기억을 지워왔다. 그러나 탈냉전 시기에 이르면서 저마다의 희생의 기억이 진영 논리를 넘어 터져 나왔다. 이처럼 기억이 국경을 넘어 지구화되자, 본래 민족의 위대한 영웅을 강조하던 영웅적 민족주의는 힘을 잃었다. 그는 “민족 영웅은 지구화된 기억 속에서 가해자로 취급되기 일쑤지만, 인권 감수성이 확대된 환경에서 희생자는 지구적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라고 말했다. 결국 기억의 해방은 자기 민족이 가장 큰 희생자라고 주장하며 민족 간 희생을 줄 세우는 민족주의적 경쟁을 촉발했다.

 

지구화가 촉발한 기억 전쟁

식민주의의 가해자 민족은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통해 자신들을 희생자로 재구성했다. 임지현 교수는 오늘날 일본과 독일의 문화적 기억은 역사적 사실을 벗어나 가해의 역사를 삭제하고 희생의 기억만 일방적으로 부각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피해를 아우슈비츠와 비견하며 자국의 제국주의의 역사를 은폐하고자 시도했다. 임 교수는 이런 시도에 대해 “세계 대전 이후 일본이 원자 폭탄의 희생자인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이를 폭탄이 투하되기 전부터 자행된 아시아 국가에 대한 일본의 폭력을 지우기 위한 가림막으로 활용하는 것은 탈역사화다”라고 짚었다.

동시에 한국, 폴란드, 이스라엘 등 식민주의의 피해자 민족은 희생자 민족의 일원이라는 이유로 개별적 가해 행위에 면죄부를 줘왔다. 가령 조선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조선인 모두가 식민주의의 희생자라고 판단하기 쉽지만, 어떤 조선인은 제국주의에 협력해 출세의 기회를 노리기도 했다. 임 교수는 “그들은 가해자의 편에 섰으면서도 일본으로부터 민족적 차별도 겪은 복잡한 역사적 맥락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피해자 민족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피해자 민족 내의 복잡한 역사적 맥락을 모두 지워버려, 피해자 민족 안에 존재하는 피해자와 가해자 개개인을 모두 보지 못하게 한다. 일본의 한국 식민 지배 역사를 지우고 일본인 소녀의 고통만을 강조한 『요코 이야기』 역시 역사적 맥락을 호도했지만, 임 교수는 “그럼에도 요코의 기억을 역사 왜곡이라 단정 짓는 태도는 위험하다”라고 말한다. 민족의 구도에서 한국 민족이 일본 식민주의의 피해자는 맞지만, 개인 차원에서는 식민지 조선에서도 수많은 가해자 조선인이, 제국 일본에서도 수많은 피해자 일본인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민족의 희생을 절대화하는 태도는 잠재적인 식민주의적 욕망에 대한 비판 의식을 둔화시킬 위험이 있다. 홀로코스트라는 끔찍한 비극을 겪은 이스라엘의 군인이 팔레스타인 민족에게 무자비한 행태를 보이는 현상 이면에는 이스라엘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작동하고 있다. 임지현 교수는 “우리가 과거 희생의 아픔을 겪은 민족이라는 이유로 우리 민족이 지금 저지르고 있는 가해를 정당화하는 것은 다시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논리로 빠질 수 있어 위험하다”라며 “식민주의 등 근대 문명의 폭력적인 문법 자체를 바꾸려는 게 아니라 승자가 될 수 있다면 식민주의의 규칙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식”이라고 경고했다.

 

기억의 연대를 향해 나아갈 때

따라서 임지현 교수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희생시켜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자기 민족의 희생 기억을 절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맥락 속에서 온전히 ‘복원’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희생 기억의 역사적 맥락을 복원해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희생될 때만 그 안에 가려져 있던 개별적 희생자들이 우리 기억의 중심으로 떠오를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민족 간 희생을 줄 세우는 일을 멈추고, 희생 기억 간의 상호 참조와 연대로 나아가야 한다. 그는 “가령 무타 가즈에의 단편 영화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미투 운동의 선구자로 그려냈다”라며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라는 장벽을 해소했기 때문에 일본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이 일본군 위안부의 기억을 일본 국내 미투 운동의 동력으로 삼는 기억의 연대가 가능했다”라고 설명한다. 이런 기억의 연대를 위해서는 비판적 상대화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일본이 원자 폭탄 희생의 기억을 홀로코스트 기억에 비유하며 여타의 가해 행위까지 면죄부를 받으려고 하는 현상에는 홀로코스트라는 ‘절대 악’에 가까울수록 더 큰 희생이라고 생각하는, 희생 기억을 줄 세우려는 심리가 깔려 있다. 이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며 기억 간의 관계를 제대로 되짚을 때 비로소 희생 기억의 경쟁 구도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희생의 기억을 탈영토화하여 ‘제로섬게임’적 경쟁체제에서 벗어날 때, 자기 민족의 희생을 절대화하고 타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 뒤에 줄 세우는 기억의 재영토화에서 벗어날 때, 그래서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희생시킬 때, 기억의 연대를 막고 있는 장벽이 터지면서 지구적 기억구성체는 삐걱거리면서도 다양한 기억이 합류하여 흐르는 연대의 실험장이 될 것이다. 

‒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중

 

그러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때로 피해자 민족의 모든 희생을 부정한다는 오해도 받았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피해자 민족이 완전무결한 희생자가 아니라는 점을 꼬집기 때문에, 가해자 민족이 피해자 민족을 공격하는 정치적 도구로 이용된 것이다. 이에 대해 임 교수는 “개별 단위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는 민족을 넘나들지만, 가해자 민족과 피해자 민족은 여전히 존재한다”라며 “희생자를 다시 희생시키는 것과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희생시키는 것은 분명히 구별돼야 한다”라고 짚었다. 

피해자 민족의 희생이 부정되고 용서가 강요되는 시점에서,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진정으로 희생시키기 위해서는 적절한 용서와 화해의 담론이 필요하다. 그는 “민족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개별 희생자를 이용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예컨대 일본군 위안부의 사례처럼 국가가 정치적인 의도로 피해자 개개인에게 용서를 강요하거나, 가해자 민족이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핑계로 피해자 민족에게 용서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용서는 피해자가 받아들일 때까지 해야 하는 것”이라며 “가해자는 피해자가 용서할 때까지 용서를 구해야 하고, 다른 누군가가 가해자의 용서를 대신할 수도 없다”라고 지적했다.

 

임지현 교수는 앞으로도 민족의 경계를 넘어 기억의 역사를 연구하며 그간 민족주의가 억압해 온 희생의 기억이 지구적으로 연대할 가능성을 모색하고 싶다고 밝혔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희생의 기억을 국가나 민족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이용돼 왔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넘어, 그의 바람처럼 희생 기억 간에 연대가 온전히 이뤄질 날을 소망해 본다.

 

사진: 박선영 기자

leena1208@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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