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이도훈 교수(사회학과) 기고

이도훈 교수(사회학과)
이도훈 교수(사회학과)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중

평균은 사회 현상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강력하고 광범위하게 이용되는 개념이자 도구다. 우리는 어떤 개인이나 집단의 ‘평균적’인 속성을 포착해 그 개인이나 집단의 전체를 파악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나아가 개인 혹은 집단을 비교하고자 할 때, 평균적인 차이를 인식하는 것은 비교의 핵심을 이룬다. 이렇게 평균을 중심에 두는 시각이 사회적 다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정당하며 지배적인 관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많은 사회 현상이 평균적인 속성을 통해 그 특성을 드러내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다른 측정치들과는 달리 평균은 주목하고자 하는 사회 현상을 구성하는 단위들을 모두 고려해야만 얻을 수 있는 측정치기도 하다. 100명으로 구성된 집단의 평균 소득을 구하는 데 이들 중 90명의 소득에 대한 정보만을 이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직관적인 간결성과 포괄성에 비춰 볼 때, 평균적 차이를 통한 사회적 비교가 가지는 보편성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개인이나 집단의 행위 및 태도를 이해하고자 할 때(얘네들은 도대체 왜 저래?), 사회·경제·문화적인 변동의 방향성을 파악하고자 할 때(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사회경제적인 자원을 분배하고자 할 때(이 예산은 누구에게 더 쓰여야 효율적이지?), 평균 중심 관점은 정보를 획득하고 처리하는 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오해나 무지를 방지하는 효과적인 이해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균 중심 관점은 터드 로즈가 『평균의 종언』에서 갈파했듯이 본질적인 한계와 치명적인 경향성을 내재하고 있다. 우선 평균 중심적 사고는 사회적 다름에 대한 이해를 정상성과 전형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끈다. 근대 통계학의 창시자 중 하나인 아돌프 케틀레가 꿈꿨던 ‘평균적인 인간’의 이상은 평균에서 벗어나는 개인이나 집단을 일탈적인 존재로 간주하면서 차별을 일반화하는 기제로 작동하는 편향을 보인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의 평균적 특성과 비교해서 타인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에 따라 그 타인에 관한 자신의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정당화하는 오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반면 차별의 또 다른 형태인 ‘통계적 차별’은 특정 집단의 평균적 속성을 그 집단에 속한 개인의 일반적 속성으로 간주할 때 발생한다. 고용과 같이, 누군가를 평가하는 상황에서 자주 관찰되는 이런 행태에는 불확실성 축소 및 위험 회피와 비용 절감 사이에서 균형을 맞춘다는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 평균적 속성 자체가 통계적으로 진실인 경우도 많다. 하지만 개인이 지닌 개별성을 편의적으로 무화시킴으로써 차별을 지속시키는 결과를 낳는 것도 사실이다.

다음으로 평균 중심 관점은 서열화를 당연시하게끔 만든다. 실증적 접근의 대가인 프란시스 걸튼은 재능에 있어서 우둔한 이들과 특출난 이들을 일관성 있게 식별할 수 있는 체계를 고안하는 데 골몰했다. 그가 제안한 해결책은 평균적인 이들을 평범한 이들로 규정하고 양적인 수치에 있어서 이들보다 위에 있거나 아래에 있는 이들을 질적으로 다른 집단으로 파악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접근은 성취의 차원을 인지적 측면으로 축소하면서 IQ 테스트와 같이 표준화된 각종 척도의 개발과 광범위한 활용을 가져왔다. 이제 평균은 소위 재능이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과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구분하는 준거점으로 기능하게 된 것이다. 평균 중심 관점의 사회적 영향은 심대했는데, 대표적인 예로 능력주의를 들 수 있겠다. 계급이나 가족 배경에 따른 계층화와 달리 능력이나 역량에 따른 계층화는 공정할 수 있다는 인식은 평균 중심적 사고에 근거한 서열화를 인정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경향은 역설적으로 평균 중심 관점의 부상이라는 역사적 우연이 계층화를 고착시키는 운명적 필연으로 전환되는 과정과도 같다.

평균 중심적 사고의 확산과 관련해서 또 하나 고려해 볼 문제는 사회적 관계에 대한 대칭적, 선형적, 가역적 가정의 일반화다. 예를 들어, 부모의 소득과 자녀의 교육 수준 간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수많은 연구들이 부모의 소득이 X만큼 증가하면 자녀의 교육 수준은 평균적으로 Y만큼 높아진다는 식으로 이 둘 간의 관계를 해석해 왔다. 그렇다면 그 해석은 부모의 소득이 X만큼 감소하면 자녀의 교육 수준 또한 평균적으로 Y만큼 낮아진다는 뜻이기도 한 것인가? 평균 중심적 사고를 따른다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이다. 개별적인 관계의 양상은 물론 제각각일 수 있겠지만 평균적으로 보면 대칭적이고 선형적이며 가역적인 관계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Making It Count』에서 사회학자 스탠리 리버슨은 이와 같이 지극히 상식적인 이해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한다. 만약 부모의 소득이 동일한 X의 크기만큼 변화했다고 하더라도 그 변화의 이유가 이직을 통한 증가거나 회사의 이윤손실로 인한 임금 삭감이라면, 이렇게 상이한 성격의 소득 변동이 자녀의 교육 수준을 Y라는 동일한 크기로 높이거나 낮출 것이라는 예측은 과연 얼마나 상식적인가? 

 

지금까지 고찰한 평균 중심 관점의 한계를 넘어서거나 최소한 보완할 수 있는 시각으로 사회 현상의 분포에 주목하는 관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기존의 평균 중심적 시각과 달리 분포 중심 관점은 사회 현상을 구성하는 단위들이 평균으로부터 얼마나 산포돼 있는지, 분포의 모양이 얼마나 대칭적이거나 비대칭적인지, 분포의 양극단에 속해 있는 단위들의 비중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에 관심을 기울인다. 한편으로 두 집단의 평균이 다를 때, 평균 중심 관점은 그 다름을 실체화하는 경향을 보이는 반면 분포 중심 관점은 그 두 집단의 구성원들이 어느 정도로 중첩됐는지를 묻는다. 사실 평균적 차이는 각 집단에 속한 구성원들이 각 집단의 평균 주위에 충분히 무리 지어있을 때만 그 실질적 의미를 가진다. 다른 한편으로 두 집단의 평균이 같다면, 평균 중심 관점은 그 두 집단의 동일성에 초점을 맞추지만 분포 중심 관점은 집단 각각의 분포가 보이는 모양 또한 유사한지를 묻는다. 만약 분포의 (비)대칭성을 측정하는 왜도를 통해 한 집단의 분포는 왼편에 치우친 모양을 보이는 반면 다른 집단의 분포는 오른편에 치우친 모양을 보이고 있음을 확인한다면, 평균의 동일성은 그 두 집단 간의 이질성을 가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평균은 분포를 특징짓는 여러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평균 중심 관점이 단위들의 총합을 통해 사회 현상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려 한다면, 분포 중심 관점은 단위들의 총합을 분해해 그 사회 현상의 특성을 포착하려 한다. 따라서 분포 중심적 시각은 근본적으로 획일성보다는 다양성에 강조점을 둔다고 할 수 있겠다.

 

분포 중심 관점은 평균 중심 관점의 대안으로서 사회 현상에 관한 보다 심도 깊은 이해를 돕는다.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개인이나 가구가 어떤 소비 패턴을 보이는지를 탐색하고자 할 때, 항상소득 가설에 따르면 이들은 자신들의 항상소득을 기반으로 임시소득을 균등화하는 방식으로 나름의 소비 패턴을 형성해 간다. 이 가설을 경험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통상적으로 다년간의 소득 평균치를 항상소득으로, 개별 연도에 측정된 소득을 임시소득으로 간주해 분석을 진행한다. 임시소득은 항상소득의 편차로서 총합할 경우 0에 수렴하게 될 것이므로, 이 가설에서 임시소득은 부차적이고 우연적인 지위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분포 중심적 시각에서 보자면 임시소득은 개인이나 가구 수준에서 소득의 궤적이 어느 정도의 파동을 그리는지를 포착하는 핵심적인 요소라는 측면에서 그 나름의 중요성을 가진다. 이는 소득 효과를 추정하는 데 있어서 소득 수준에 따른 차이뿐만 아니라 소득의 변동성과 불안정성 또한 핵심적인 차원으로 고려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이다.

둘째, 또래집단이 청소년의 우울 증세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한 연구에서 필자는 앞서 언급한 리버슨의 통찰을 분석에 적용해 봤다. 이 주제를 다룬 대부분의 연구는 또래집단의 평균적인 우울 정도가 높을수록 청소년의 우울 증세가 증가한다고 보고해 왔다. 여기에서 암묵적으로 가정하고 있는 것은 또래집단의 평균적인 우울 정도가 낮을수록 청소년의 우울 증세 또한 감소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필자의 연구에서는 또래집단 내 우울 증세의 분포에 주목하면서, 우울 증세가 심한 또래들과 우울 증세를 보이지 않는 또래들이 청소년의 우울 증세와 연관되는 과정이 비대칭적일 수 있는지를 검토하고자 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의 우울 증세는 또래집단에서 우울 증세가 심한 또래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수록 증가하는 반면, 우울 증세를 보이지 않는 또래들이 또래집단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증가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컨대 분포 중심 관점을 적용한 이 연구는 또래집단의 평균적 속성에 의존할 경우 또래집단의 효과가 가지는 비대칭성과 불가역성을 간과할 수 있음을 경험적으로 확인하고자 한 시도라고 할 수 있겠다.

사회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개념이자 도구로서 평균은 매우 유용할 뿐만 아니라 편리하고 간결하다. 어찌 보면 평균을 통해 사회적 다름을 파악하려는 성향은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에 뿌리 깊게 각인돼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균 중심 관점은 정상성의 신화를 재강화하고 서열화를 정당화하며 사회에 대한 선형적 이해를 고착한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에 비해 분포 중심 관점은 사회적 다름을 고정된 것으로 파악하는 대신 그 다름을 맥락화해 조절 가능성과 적응 가능성을 가늠하고자 한다는 측면에서 하나의 대안적인 시각을 제공해 준다. 불평등과 양극화를 대면하고 있는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게 추상적이거나 지나치게 구체적이기보다는 조금은 복잡하고 조금은 여백을 두는 접근이 아닐까?

 

삽화: 박재아 기자

0204jae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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