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지 기자(사진부)
최수지 기자(사진부)

넷플릭스에서 한국 드라마를 볼 때 자막 기능을 켜두는 것을 좋아한다. 중요한 대사를 놓치고 싶지 않기도 하고, ‘웅장한 배경음악’, ‘화난 목소리로’와 같은 작품 속 디테일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한국어 자막 설정 옆에 ‘청각장애인용’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는 것을 보고, 음성언어 기반의 자막이 수어 통역과 동일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 교양 수업에서 수어를 공부하며 수어 사용자에게 청각장애인용 자막은 수어 통역을 완벽히 대신할 수 없다는 점을 알게 됐다. 이번 기회를 통해 내가 지금까지 갖고 있었던,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갖고 있을 수어에 대한 오해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한국어로 된 문장에서 단어만 수어로 바꾸면 수어 문장이 완성될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한국 수어와 한국 음성언어는 사실상 별개의 언어로, 서로 완전히 다른 언어학적 특징을 지닌다. 이는 영어를 번역할 때 단순히 영단어만 한국어로 대체한다고 해서 완벽한 한국어 문장이 되지 않는 상황과 비슷하다. ‘I love fall’을 ‘나 사랑한다 가을’로 직역하면 어색한 것처럼 말이다.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수어 사용자가 자막을 켜두고 한국 영화를 시청하는 것은 청인이 영어 자막을 켜두고 미드를 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한글을 안다면 자막을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수어만큼 편할 수는 없다. 수어와 음성언어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아 수어 통역 없이 자막 기능만 제공되는 지금의 OTT 플랫폼 환경은 청인과 같은 조건의 콘텐츠를 수어 사용자에게 제공하지 못한다. 모든 플랫폼이 수어 통역을 제공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운 측면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이것이 근본적으로 수어에 대한 오해에 기인하는 문제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흔히들 수어를 ‘손짓’일 뿐이라고 알고 있지만 이 역시 수어에 대한 잘못된 이해다. 수어는 손뿐만 아니라 표정, 시선, 입 모양과 같은 다양한 요소로 구성된다. 가령 손의 동작, 모양, 위치 등이 같더라도 표정에 따라 단어의 뜻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가 수어에서 손짓만을 고려하다 보니 수어 사용자들은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코로나19 시국 병원에서 수어 통역을 비대면으로 지원하면서 사용자들이 소통의 어려움을 겪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들은 낮은 화질의 비대면 진료 화면 속 수어 통역사의 표정이나 입 모양을 거의 확인할 수 없어 진료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또한 뉴스 화면에 송출되는 수어 통역사의 화면 비율이 표정과 입 모양 등을 정확히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작아서 뉴스 시청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이는 모두 수어가 손을 통해서만 표현된다는 그릇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청인들이 같은 나라에서 함께 살아가는 수어 사용자들의 언어적 특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은 바람직하지 않다. 수어 사용자들의 언어가 그들이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는 것에 장벽이 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수어에 대한 오해가 단순히 ‘한 언어에 대한 무지’에 그치지 않고 사용자들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당위가 생긴다. 수어 사용자들의 입과 귀가 돼주는 수어. 이제라도 그들의 언어에 대한 크고 작은 오해가 해소되고 이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들이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을 밝히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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