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대(정치외교학부·21)
최용대(정치외교학부·21)

“그래서, 무슨 학회 한다고?”

범죄학회에서 2학기째 활동하면서 필자가 답하기 곤란했던 질문이다. ‘범죄학’이라고 하면 생전 처음 듣는다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형법학회 한다고 애써 둘러대고는 했다. 듣도 보도 못한 이름보다는, ‘형법’이라는 근사한(?) 이름으로 둘러대는 것이 더 실용적이고 전문적으로 보이지 않는가?

학회 이름과 관련된 사소한 에피소드는 범죄학이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빈약한 위치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그럼에도 범죄학은 구성원의 안전과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 필수 불가결한 역할을 하는 실용 학문이기에, 범죄학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우선 형사사법과의 비교를 통해 범죄학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형사사법은 범죄학이 제시하는 해결책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의학이 신체에 처방을 하는 것처럼, 범죄학은 사회적 병리 현상인 범죄의 원인을 찾아낸다는 점에서 진단의 성격을 가진다. 범죄의 원인을 찾는 ‘진찰’이 끝나면 문제해결을 위한 ‘처방’을 하게 된다. 범죄학적 관점에서의 ‘처방’은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원인을 제거하는 사전 예방과 범죄가 발생한 후 범죄자를 형벌로써 다스리는 사후 처벌로 나뉜다. 두 처방 모두가 균형 있게 이뤄져야 범죄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다. 비교 대상이 됐던 형사사법은 사후 처벌에만 집중한다. 범죄 현상의 극복이라는 관점에서 형사사법은 동전의 앞면에만 천착하는 것으로, 문제의 본질을 온전하게 조명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범죄 현상을 바라볼 때 지나치게 형사사법에만 집중한다. 범죄 현상을 다루는 행위자의 절대다수는 소위 ‘법조인’ 출신이다. 법조인에 의해 이뤄지는 형사 재판은 논외로 하더라도, 범죄 억제의 최고책임기관인 법무부는 물론, 국회 소관 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마저도 법조인 출신이 절대다수다. 인적 구성이 편향되다 보니, 우리 사회의 범죄 대응은 처벌 중심의 엄벌주의에만 매몰돼 버린다. 범죄자를 교화해 사회로 복귀시키는 교정시설은 유명무실하고, 범죄의 동인 자체를 사전에 없애 버리는 심리치료나 교육 등 사전예방책 또한 법무 행정에서 소외되고는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재범률은 갈수록 높아지고, 최근 흉기 난동 사태가 잇따르고, 온라인에 살인 예고가 난무하는 등 크고 작은 범죄가 준동하고 있다. 형사사법에만 매몰돼서는 진정한 문제 해결을 도모할 수 없다.

이에 반해 범죄학은 ‘문제 해결’을 목표로 총체적인 접근을 도모하는 ‘종합 예술’이다. 범죄학은 범행 동기와 원인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범행 유발 요인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자 하고, 이 과정에서 여러 학문적 수단을 동원한다. 자연과학적 방법론, 지리학적 접근, 심리학적 조명, 경제학적 행위자 분석 등 다각도에서 범죄 현상을 바라보기에, 더 넓은 시각에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그래서 범죄학회에서도 범죄 현상에 대해 간학문적인 접근을 하려고 노력해 왔다. 지난 학기에는 마약류 범죄에 대한 수사 기법의 하나로써 강제채뇨를 다뤘다. 생물학 자료와 의학적 지식까지 탐구하며 실증적 토론을 준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번 학기에 다루는 환경 범죄와 디지털 범죄에 대해서도 과학·기술적 측면에서 조명하는 등 ‘종합 예술’이라는 범죄학의 정체성을 살리고자 한다. 

범죄학과 범죄는 마치 창과 방패의 싸움, 헤겔의 정반합과도 같은 불가분의 관계다. 범죄는 갈수록 고도화되며, 시민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범죄학에 대한 사회적 투자와 관심이 확대돼야 할 것이다. 형사사법기관들은 물론 법조인들 또한 범죄학적 사고방식과 소양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그 변화의 시작은 결국 학문공동체에 있다. 대학에서 범죄학을 학문으로 다뤄 연구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범죄학을 공부한 졸업생들이 관련 분야에서 변화를 주도해 나가야 한다. 모든 변화가 으레 그렇듯 혁신의 맹아는 후속세대의 교육에 있다. 더 많은 학생이 범죄학을 공부하고, 범죄학적 사고를 하기를 바라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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