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현 기자(취재부)
이다현 기자(취재부)

길거리를 나서면 이어폰을 끼지 않은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로 이어폰은 우리에게 뗄 수 없는 존재다. 나 역시도 외출할 때 휴대폰과 지갑을 챙긴 후 자연스럽게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라디오와 노래 듣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는 집 밖을 나서면서 무엇을 들을지 고민하는 것마저 소소한 재미다. 바쁜 일상 속, 이어폰을 통해 오로지 나만의 세상을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 작지만 확실한 즐거움이 된다.

도서관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늘 그랬듯 이어폰을 끼려는데, 갑자기 이어폰을 끼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반복적으로 듣던 노래가 조금 지겹기도 했고, 선선하게 바람이 부는 날씨를 온전히 만끽하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귀를 열고 집으로 가는 길은 두고두고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됐다. 어린이들이 부모님과 손잡고 걸으며 재잘거리는 소리,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신나게 대화를 나누는 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는 모두 평범하면서도 일상적인 소리지만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다니던 내게는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그 생동감 넘치는 세상의 소리를 들으며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고 사소한 소리에서 일상의 소중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찾던 이어폰 속의 자극적이고 인위적인 소리가 나를 세상으로부터 단절시킨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됐다.

성과와 효율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은 타인과의 소통과 연결보다는 개인적인 시간과 공간을 중시하는 듯하다. “이어폰을 끼고 일해야 능률이 올라가는 편입니다”라는 말이 유행한 것은 이런 현대 사회의 모습에 많은 사람이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혹자는 이어폰을 끼고 일하는 것이 업무에 방해가 되지 않고 오히려 일의 능률을 높인다면 이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두가 서로에게 무관심한 채 이어폰을 끼고 일만 하는 사회는 너무 삭막하지 않을까. 성과와 효율만으로 치환할 수 없는, 소통이 주는 가치는 분명하지만 이어폰은 우리의 청각을 빈틈없이 채우면서 타인과 세상의 소리에는 곁을 내주지 않는다.

‘여백’은 종이 따위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린 후에 남은 빈자리를 의미한다. ‘여백의 미’가 존재하는 이유는 빈자리가 주는 평온함과 아름다움, 혹은 새로운 무언가로 채워질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청각의 빈자리는 시각의 빈자리 못지않게 나름의 아름다움을 가진다. 인위적인 자극 없이 일상 속의 소리를 음미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평온하게 하며, 세상의 새로운 자극들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끼는 이어폰이 새로운 자극을 차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소통의 가능성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자. 이어폰을 빼고 생긴 청각의 빈자리를 세상이 자연스럽게 채울 수 있도록 하면, 더 풍부한 경험을 통해 소중한 순간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듣고 있던 노래를 잠시 멈추고, 귀를 열어 외부 자극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세상과 교감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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