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고문헌자료실의 문화유산 보존

지난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집행이사회에서 4ㆍ19 혁명과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이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그중 동학농민혁명기록물 137점이 서울대에 있다. 서울대에서 소장하고 있는 문화유산은 이뿐만이 아니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의궤』, 『삼국유사』 등 한국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가치를 지닌 기록유산 역시 서울대에서 보관·관리 중이다. 가치를 헤아리기 어려운 문화유산을 보관하고 있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중앙도서관 고문헌자료실, 이들의 고문헌 관리법을 『대학신문』에서 취재했다.

 

국보가 어떻게 서울대에

규장각은 1776년 정조의 왕실 비서 기구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건립됐다. 그러다 일제강점기 시기 규장각이 보관하고 있던 문헌과 공문서 등이 경성제대 도서관으로 이전됐다. 고문헌자료실 김수진 학예연구관은 “해방 이후 경성제대와 기타 교육기관의 통합으로 서울대가 설립되면서, 1946년부터 서울대 부속도서관에서 해당 기관들의 책과 자료를 보관하게 됐다”라고 전했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정진숙 학예연구사는 “한국전쟁 이후 10년이 지나 1960년대가 되면서 서울대 도서관 내 고문헌 정리 사업이 시작됐고, 1975년에 현재의 중앙도서관 본관 건물이 지어지면서 규장각도서관리실이 서울대 도서관 내 고문헌 관리 전담 부서로 설립됐다”라며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전신을 밝혔다.

한편 고문헌은 1910년 이전의 전근대 고문헌, 1910년부터 1945년까지의 근대 문헌의 두 가지 종류로 나눠볼 수 있다. 고문헌자료실 김수진 학예연구관은 “1992년 현재의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건물이 세워지면서 규장각도서관리실이 중앙도서관으로부터 독립해 서울대 부속기관 규장각이 됐다”라며 “이때 중앙도서관에 있던 상당수의 전근대 고문헌을 서울대 부속기관 규장각이 관리하게 됐고, 중앙도서관은 남아 있는 근대 문헌과 서양서를 보관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이후 2006년 서울대 부속기관 규장각은 관리의 효율성과 통일성 등을 이유로 학술과 연구를 담당하던 한국문화연구소와 통합돼 규장각한국학연구원으로 발족됐다. 이후 2007년에는 해외의 한국학 연구 지원에 힘쓰기 위해 국제한국학센터를 부속 기관으로 뒀으며, 현재 연구기관으로서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은 총 269,839개의 고문헌을, 중앙도서관 고문헌자료실은 총 405,753개의 고문헌을 소장하고 있다.

 

고문헌을 등록, 관리, 복원하기까지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고문헌자료실 모두 추가적인 고문헌 수집은 하지 않는다고 밝혔으나 고문헌 기증과 관리 위탁 요청은 받고 있다. 일례로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한국은행으로부터 대한제국 시기 화폐 개혁과 구한국은행 설립을 담고 있는 기안서, 법률자료 등 귀중 자료를 기탁받은 바 있다. 중앙도서관 고문헌자료실 역시 개인으로부터 기증받은 고문헌은 별도의 개인 문고를 마련해 보관한다. 지금까지 이휘영 명예교수(불어불문학과)로부터 기증받은 도서로 조성한 서농문고를 포함해 총 14개의 문고를 고문헌자료실에서 관리하고 있다. 고문헌자료실의 김주희 담당관은 기증 이후의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먼저, 책을 입수하면 식별을 위해 바코드의 역할을 하는 일련번호를 부여한다. 책이 등록되면 서지 작업을 통해 책의 제목과 내용, 쪽수와 제작연도 등을 기록해 분류하고 한장 한장 붓으로 먼지를 털어준다. 마지막으로 앞서 확인한 서지 사항을 바탕으로 해당 자료의 고문헌자료실 관리 여부를 결정한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책을 등록하고 분류한다.

크기가 비슷한 고도서들이 한데 모여 있는 규장각 서가의 모습.
크기가 비슷한 고도서들이 한데 모여 있는 규장각 서가의 모습.

위와 같은 과정을 거친 후 관리가 결정된 자료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보관된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정진숙 학예연구사는 “일반적인 고문헌의 경우 쇠못 없이 오동나무로만 만들어진 상자에 넣어 보관된다”라고 전했다. 또한 오동나무는 온도와 습도의 변화에 예민하므로 서가배열의 잉여 공간을 확보해 보존 효과를 높인다. 고문헌자료실의 김진호 담당관은 “중성상자 또는 비단 포갑에 넣은 고문헌은 크기가 비슷한 것끼리 보관하고 실로 묶인 도서는 뉘어서 보관한다”라며 “또한 주기적으로 먼지를 제거하고 소독을 진행하며 상태를 조사하고 있다”라고 관리 방법을 설명했다.

한편 고문헌 중에는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귀중본도 있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는 다섯 개의 서고가 있는데, 이 중 하나의 서고는 귀중 서고로서 『조선왕조실록』, 『일성록』, 『비변사등록』과 같은 주요 국보를 별도로 보관하는 데 쓰인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윤성호 선임주무관은 “세계기록유산이나 보물, 문화재와 같이 그 중요성이 큰 문화재는 귀중 서고 안에 위치하는 오동나무로 만든 서재에 보관한다”라며 “이때 문헌을 오동나무로 만든 포갑을 사용해 이중, 삼중으로 감싼다”라고 귀중본의 관리 방법을 말했다. 한편 고문헌자료실에서도 중요 고문헌에는 별도의 관리 방법이 적용되고 있다. 고문헌자료실 김수진 학예연구관은 “중요 고문헌은 추가적인 항상성 유지 장치가 구축된 특별 서고에 보관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비단포갑에 감싸져 있던 고도서를 펼치고 있다.
비단포갑에 감싸져 있던 고도서를 펼치고 있다.

두 기관 모두에서 강조되는 가장 중요한 관리 원칙은 외부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60조에 따르면 공공 기록물은 섭씨 18도에서 22도의 온도, 45%에서 55%의 습도에서 반드시 항온 항습을 유지해야 한다. 추가로 두 기관은 이산화탄소 농도까지도 일정하게 하며 방충을 고려하고 있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윤성호 선임주무관은 “책벌레는 종이를 갉아 먹지 않아 그 자체로는 문제가 되지 않으나 책벌레를 포식하는 벌레에 의해 문제가 생긴다”라고 전했다. 이에 고문헌자료실과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모두 서고의 항상성 유지와 해충에 의한 피해를 미리 방지하기 위해 센서를 활용해 서고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정진숙 학예연구사는 “사람이 한 명만 들어가도 센서가 온도와 습도 변화를 감지한다”라며 “서고에 들어가는 사람을 최대 3명 이상으로 하지 않는다”라고 원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고문헌의 오염과 훼손이 발견된 경우에는 그 상태에 따라 수리 여부가 결정된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자료의 상태 등급은 A·B·C·D등급으로 나뉘는데, A·B등급의 경우 고문헌을 그대로 두지만, C·D등급의 경우 복제 혹은 복원의 작업을 추가로 거칠 것인가를 두고 회의를 진행한다. 이때 복원은 문헌을 처음 발견된 상태로 되돌리는 현상보존과 문헌이 처음 제작된 상태로 복원하는 원형복원이 있다.

(좌)규장각 학예연구사가 고문서의 결손부를 메꾸고 (우)고문서를 한 장씩 확인하고 있다.
(좌)규장각 학예연구사가 고문서의 결손부를 메꾸고 (우)고문서를 한 장씩 확인하고 있다.

자세한 복원 과정은 다음과 같다. 복원이 결정되면 가장 먼저 손상 상태를 촬영하고, 이후의 복원 과정 역시 모두 촬영한다. 이는 만약 복원에 문제가 생겼을 때 원본과 대조하기 위해서다. 다음으로 색도, 산성도, 섬유소와 종이 제작 방식 등의 기초 물성을 분석해 고문헌과 가장 가까운 재료를 준비한다. 고문헌자료실 김주희 담당관은 “경우에 따라 무형문화재 한지 장인에게 한지를 주문 제작하기도 한다”라며 복원 과정의 철저함을 전했다. 이후에는 고문헌의 띠지를 풀고 연결부를 해체해 낱장으로 분리한다. 붓으로 고문헌의 먼지를 털어내는 건식 클리닝을 먼저 진행하고, 번질 수 있는 부분은 아교로 칠해 중성수에 헹구는 습식 클리닝도 진행한 후, 평활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압축기로 눌러 건조한다. 이후에는 준비된 재료로 낱장 하나하나의 복구를 진행하는데, 결손부를 메꾸고 띠지와 연결부를 보강한다. 수리 검토까지 마치면 실로 다시 책을 엮는다. 복원된 고문헌을 보관 상자에 넣는 포갑 작업을 하고 평시와 같이 서가로 위치시키면 복원은 완료된다.

*평활도: 종이의 매끄러운 정도.

 

보존의 새로운 모습: 보관함을 넘어 인프라로

이렇듯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고문헌자료실은 그 전신에서부터 한국의 문화유산을 지켜 왔다. 그러나 이들이 단순히 고문헌을 보관하는 역할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두 기관은 모두 소장 고문헌을 디지털화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해당 사업을 진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더욱 안전하고 편리하게 고문헌을 보존하기 위해서다. 연구 목적일지라도 실제 고문헌의 열람을 줄이는 것이 관리에 가장 좋으며, 사고로 자료가 심각하게 훼손되더라도 원본을 확인할 수 있기에 데이터베이스 구축은 중요하다. 이에 두 기관은 세계기록유산·국보·보물·등록문화재와 외부 요청 자료, 세계 혹은 국내에 단 하나뿐인 유일본 자료를 우선적으로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있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정진숙 학예연구사는 “조도와 압력 등이 일정한 이미지를 얻기 위해 스캔이 아닌 촬영을 통해 사진을 얻고 이를 축소해 디지털화한다”라고 밝혔다. 고문헌자료실 김진호 담당관은 “고문헌의 낱장 사진들이 한 책으로 묶여 도서관 홈페이지와 규장각 홈페이지, 새로 개설될 고문헌 홈페이지에 데이터베이스로 등록돼 있으므로 누구나 검색창에서 책을 검색해 열람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데이터베이스화된 고문헌은 직접적으로는 한국학 연구의 근거가 되고 간접적으로는 빅데이터로서 데이터과학과 디지털 인문학, 사회과학 등 여러 학문의 발전을 위한 근간이 된다.

 

정진숙 학예연구사는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고문헌을 기관이 보존하고 관리해 후대에 물려주는 것은 당연한 의무다”라고 밝혔다. 앞으로도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고문헌자료실이 ‘한국학 인프라’로서 연구 발전의 토대가 되기를 기대한다.

 

 

사진: 박선영 기자 leena1208@snu.ac.kr

최수지 기자 susie2003@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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