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환 교수(독어독문학과)
김태환 교수(독어독문학과)

작년에 한국인에게 잘 알려진 한 나라의 이름이 바뀌었다. 터키가 튀르키예가 된 것이다. 이는 터키 정부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지만, 터키의 국호 자체가 갑자기 바뀐 것은 아니다. 문제된 것은 토착명(endonym)이 아니라 외부명(exonym)이었다. 터키 이외의 많은 국가가 터키에서 사용하는 국명인 Türkiye(토착명) 대신 자국 언어로 변형된 이름(외부명)을 사용한다. 터키 정부는 2021년부터 이를 더 방관하지 않고 터키어로 된 토착 국명이 국제 사회에서도 통용되도록 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세계에 퍼져 있는 터키의 다양한 이름을 하나의 진정한 이름으로 통일시키려 한 것이다. 2022년 6월에는 터키 정부가 유엔에 터키의 공식 영어 명칭을 Türkiye로 바꾸어줄 것을 요청했고, 유엔도 이를 수용하기에 이른다. 터키 정부는 그 즉시 한국 정부에도 터키의 한국어 이름 변경을 요청했고, 한국 정부는 이를 수용하면서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 심의를 통해 터키의 한국어 이름을 Türkiye의 한글 음역인 튀르키예로 바꿨다. 터키 정부의 요청 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정부 공식 문서는 물론 언론 매체와 신간 도서에서도 일제히 튀르키예라는 이름이 사용되기 시작했고, 한국에서 적어도 100년의 역사를 가진 한 이름이 순식간에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문제의 발단은 영어 명칭 Turkey에 대한 불만에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것은 칠면조와 동음이의어이고 여기에서 ‘멍청이’같이 좋지 않은 뜻까지 파생된다. 특히 영어의 국제적 위상을 생각할 때 칠면조를 떠오르게 하는 영어 명칭을 터키 정부가 바꾸고자 한 것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문제는 국명에 대한 문제 제기가 단순히 영어만 겨냥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터키 정부는 영어권뿐만 아니라 로마자를 사용하는 다른 국가들에서도 터키의 이름을 터키어 표기인 Türkiye로 변경할 것을 요구했다. 예컨대 독일인들은 터키를 칠면조(Truthahn)와는 전혀 관계 없이 Türkei라고 부르지만, 주독일 터키 대사관은 자국을 독일어로도 Türkiye라고 표기하기 시작했다. 한국어에서도 터키라는 이름은 칠면조와 아무 관계가 없는데도 교체 요구의 대상이 됐다. 그것은 터키 정부의 노력이 문제가 있는 영어 명칭을 바꾸는 것보다 터키의 토착명을 세계적으로 관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발언은 이런 움직임 뒤에 있는 민족주의적 동기를 짐작하게 해준다. “Türkiye라는 말이 터키 민족의 문화, 문명, 가치를 가장 잘 대변하고 표현해줍니다.”

정부와 정부 사이의 외교 관계에서 자국 이름을 변경해서 불러달라는 상대 정부의 요청을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미심쩍은 것은 그 요청에 신속하게 반응해 터키라는 오래된 이름을 일사분란하게 지워나가는 한국 정부와 사회의 모습이다. 물론 ‘튀르키예’가 외국의 고유명사나 지명 표기에서 원어와 원음이 우선한다는 대원칙에 부합하는 것이기는 하나, 미국, 호주, 중국, 스페인처럼 원어 이름과 다른데도 이미 오래 전에 한국어에 들어와 많은 기억과 의미를 온축한 외국 국명과 지명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 국무부가 터키 정부의 요청에 따라 공식 문서에 새로운 국명을 사용하기로 하면서도 일반 사회와 대중이 잘 이해할 수 있는 ‘Turkey’도 비공식적 이름으로 나란히 통용될 것이라고 밝힌 것은 이름의 역사성을 고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몇몇 영어권 국가에서 터키는 여전히 Turkey로 불리고, 독일어도, 프랑스어도, 중국어, 일본어도 각 언어에 정착된 터키의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 영어 때문에 바꾸자는 발상이 나왔다지만, 한국어 이름만 바뀐 셈이다. 개인의 이름을 바꾸는 것도 복잡한 절차가 필요한데, 터키같이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의 이름을 바꾸는 것은 조금 더 신중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국가가 지정한 공식 국명 외에 다른 이름은 금지돼 마땅한 것인가? 이름은 단 하나여야 하는가? 이런 문제에 대한 숙고를 제안하는 의미에서 이 글의 필자는 터키를 여전히 터키로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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