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수(생명과학부 석박사통합과정)
임현수(생명과학부 석박사통합과정)

어느 여름날, 공부에 지쳐 있던 연구실에서 중학교 친구로부터 예상치 못한 전화가 왔다. 오랫동안 전화도 안 하냐며, 낯선 전화에 당황하는 나에게 물음을 던지는 말들이 들려왔다. 오랜만에 듣는 친근한 욕설이었다. 논리와 근거로 무장한 채 학계에 입문하려는 나에게, 그 욕설은 오래 전 들었던 익숙한 애정을 담고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나는 공부를 좋아하는 모범생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들과 함께 다니고 톡톡 튀며 즐거워하는 아이였다. 이제 와서는 함께 다니던 친구들의 이름과 좋아했던 것들이 떠오를 때, 조금은 쓸쓸한 마음이 든다. 가고 있는 길과 보는 곳, 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달라져 서로 멀어져 버린 우리를 이어주는 것은 과거라는 촉촉한 추억 하나뿐이었다.

전화기 너머로 우리는 언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대개 이런 약속이 그렇듯, 만날 날을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은 텅 빈 약속이었다. 스스럼없이 친구들과 어울리기에는, 친구들과 헤어지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생긴 상처들이 너무 큰 탓일까? 이미 겨울이 성큼 다가온 지금까지도, 만남은 기약이 없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마치고 나니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점심시간까지 지나버렸고, 나는 결론을 내지 못한 채 공부를 위해 연구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날 연구실에서도 집중이 어려웠다. 논문을 쓰고 데이터를 만들어 내는 일련의 일들이 힘들게 느껴졌다. 내가 꿈꾸는 나의 미래를 위해 공부하고 있으나 정작 가장 중요했던 나의 기억, 나의 추억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마치 한때 풍부했으나 말라 버린 강물처럼 나의 추억, 나의 마음 역시 메마르고 있었다. 연구실은 나에게 미래로 도약하는 장소였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연구를 하기 위해, 스스로를 훈련하고 스스로가 바르게 성장하는 장소였다. 현재의 행복과 미래의 불확실한 더 큰 행복은 결국 인간이 고대부터 생각해 온 고민이었다. 마시멜로 이야기 속의 아이처럼, 그 둘 사이에서의 고민은 결국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그날의 고민은 결국 집착이 돼 고통이 됐고 아직도 없애지 못한 마음이다.

아기 과학자의 시선에서 봤을 때도 연구는 스스로에게 강하게 몰두하는 것이어서, 필연적으로 나 자신과 연구 이외의 것은 신경 쓰기 어렵게 된다. 스스로와 연구뿐 아니라 주변을 챙긴다는 것은 대학원생들에게 있어 현재와 미래를 모두 챙기는 것과 같다. 그러나 사람의 몸과 마음은 유한 자원이라 둘 모두를 챙기는 것은 그리 오래 갈 수 없고, 정신과 체력의 파국으로 이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파국은 누구에게나 일어나서는 안 된다.

하지만 부디 나의 동료, 학우께서는 불안한 마음으로라도 둘의 균형을 맞추며 힘든 과정을 버텨 내셨으면 한다. 건강은 고무줄과 같아서, 있는 힘껏 사용하고 잡아당기면 언젠가는 끊어진다. 임계점을 넘은 끊어짐은 비가역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

사랑하는 나의 학교에서 더 이상의 비극은 없었으면 한다. 말라 버린 친구 사이가 안타까워 아직 없애진 못한 고통이 우리에게 다가오더라도, 우리는 계속해서 미래를 위해 나아가고 현재의 행복을 놓칠 수 없다. 이런 우리들의 마음과 노력을 대학원생이 아닌 분들께서도 알아주기를 바란다. 우리의 마른 마음에 언젠가는 행복한 단비가 내리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