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학은 고문헌을 규장각한국학연구원(규장각)과 중앙도서관 고문헌자료실에서 나눠 관리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 『삼국유사』 등 주요 동양 고문헌은 규장각이 소장하고 있고, 중앙도서관 고문헌자료실은 「한성순보」 등 국가 문화재뿐 아니라 『청록집』 초판본, 『혈의 누』 초판본 등 사료가치가 높은 중요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문헌 수만 보면 고문헌자료실은 40여만 점의 문헌을 소장하고 있어 그 규모가 규장각 소장 자료의 1.5배에 달한다. 이 문헌들은 대부분 경성제국대학 도서관 자료라는 아픈 사연이 있으나, 20세기 전반기 우리나라 지식 세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고문헌자료실의 고문헌 관리는 규장각의 고문헌 관리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다. 현재 고문헌자료실에 보관된 고문헌은 기본적인 서지 연구 및 해제 작업조차도 이뤄지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해제는 문헌에 제작 경위, 서지사항, 내용, 의의를 간략히 요약한 짧은 글을 덧붙이는 것으로, 이는 연구자와 기관이 자료를 찾고 열람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규장각의 경우 해제 및 이미지 데이터베이스화 구축률이 90% 이상에 달하나 고문헌자료실 고문헌 장서의 이미지 구축률은 1.1%, 해제 구축률은 0.25%에 그친다. 고문헌자료실에 소장돼 있는 서양서 고문헌의 관리는 더욱 심각하다. 고문헌자료실에는 현재 서양 고문헌에 대한 학술 조사, 해제, 서지 연구를 실시할 수 있는 연구 인력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고문헌자료실에 소장된 서양서 약 15만 권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특별 관리 중인 서양 귀중 도서 387권에 대해서도 1996년 이후 수리, 복원의 필요성에 대한 조사조차 진행되지 못했다.

이와 같이 고문헌자료실 소장 자료에 대한 관리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이유는 연구 기관으로 분류된 규장각과 달리 고문헌자료실은 본부 지원 기관으로 분류돼 고문헌 관리를 위한 제도적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근대 이전의 한국 유산에 대한 보존 관리가 근대 시기 유산의 보존 관리보다 우선될 필요성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서양서 고문헌 역시 우리나라 지식 세계의 중요한 일부라는 인식을 진전시키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규장각의 고문헌이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새로운 다학제적 연구에 활용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고문헌자료실 소장 자료에 대한 관리 체계는 시급히 재확립될 필요가 있다. 지금의 체계하에서는 고문헌자료실이 소장하고 있는 고문헌의 가치가 온전히 활용되기 어렵다. 고문헌 관리 체계 개선을 통해 이제라도 고문헌 현황이 제대로 파악돼야 함은 물론이고 고문헌의 수리 및 복원을 위해 규장각과의 협업이나 외부 프로젝트 발주 등 다양한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 고문헌 관리에 대한 학내 구성원들의 관심과 지원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고문헌 수집과 관리 및 복원 체계 마련을 위한 건설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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