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한국 특별사면 제도의 현재와 미래

지난 5월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이 공무상 비밀누설 등의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아 구청장 자격을 상실함에 따라, 지난달 11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진행됐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형 선고 3개월 만에 김태우 전 구청장을 특별사면하면서, 김 전 구청장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국민의힘 후보로 다시 출마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처럼 범죄를 저지른 정치인과 경제인이 ‘국민 대통합’ 혹은 ‘경제 살리기’라는 명분 아래 대통령의 결단 하나로 사면된 일은 한두 번이 아니다. 한국의 사면 제도는 지금껏 어떻게 운용됐고, 어떤 방향으로 변해야 할까.

 

기형적인 한국의 특별사면

사면제도는 형이 확정된 이의 선고 혹은 형을 면제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사면권은 전근대 군주의 초법적 통치권에서 유래했지만, 현대 국가에서도 법제도를 보완하는 역할로서 그 필요성을 인정받는다. 박찬걸 교수(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사법 절차가 아무리 치밀해도 불합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기에 구제 수단으로서 사면권이 인정된다”라고 설명했다. 장영수 교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사법적 판단과 국익이 배치되는 경우가 있고, 사법적 판단을 유지하지 않을 때의 국익이 명확하게 크다면 사면이 요구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사면법에서 사면제도는 일반사면과 특별사면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국회의 동의가 요구되는 일반사면의 경우 특정 죄 전체에 대해 형 선고 효력이 상실되고,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특별사면의 경우 대통령이 지정한 인물에 대해서만 형의 집행이 면제된다. 1995년을 마지막으로 일반사면은 이루어진 바가 없으나, 대통령 특별사면은 헌정사에서 총 91회 진행됐다. 올해 광복절에도 김태우 전 구청장을 포함해 2,176명이 특별사면됐다. 특별사면 한 번에도 신중을 기하는 대다수 유럽 국가와 미국의 사례와 비교해 볼 때, 한국의 특별사면 규모는 이례적으로 큰 편이다. 일례로 독일은 국가 수립 이후 특별사면이 단 4차례 진행됐다.

그뿐 아니라 전임 대통령을 비롯해 고위 정치인과 경제인이 대개 특별사면의 형태로 죄를 면제받는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대표적으로 전 대통령 중 반란수괴와 내란수괴 등의 죄목으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을 선고받은 전두환 씨와 노태우 씨, 직권남용 등 수많은 범죄로 22년을 선고받은 박근혜 씨, 부패 범죄로 징역 17년을 선고받은 이명박 씨 모두 구속 후 채 5년이 지나지 않아 특별사면됐다. 삼성 이재용 총수와 SK그룹 최태원 회장을 포함한 대부분의 재벌이 특별사면의 혜택을 받았으며, 심지어 최 회장과 삼성 이건희 전 회장을 포함한 몇몇 총수는 두 차례에 걸쳐 특별사면의 대상자가 되기도 했다.

 

오남용되는 권한, 도전받는 사법 질서

그러나 비리 정치인과 경제인의 특별사면은 사면제도의 본래 취지에 맞지 않는 오남용이다. 박광현 교수(광주여대 경찰법학과)는 “당리당략적 사면은 자제해야 하며, 특히 예우 차원에서 유명한 정치인을 사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국민 통합에도 이롭지 않다”라고 전했다. 또한 경제인에 대한 빈번한 사면은 돈을 가진 이에게는 법이 차별적으로 작용한다는 그릇된 세태를 강화할 뿐이며, 법과 정부가 재계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데에 이용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장영수 교수는 “재벌에 대한 반복적 사면은 그들이 불법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들며, 심지어는 암묵적으로 부추긴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특정 날마다 주기적으로 많은 사람을 사면하는 양태는 포퓰리즘적이며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유래돼 사법 질서를 위협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장 교수는 “사면은 사법체제의 결론을 완전히 뒤집는 행위기 때문에 매 건에 대해 그것이 정말 필요한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라며 “그런데 설날이나 광복절 등 특정 시기를 정해 많으면 수만 명에 대해 이뤄지는 특별사면에서는 이런 고려가 정상적으로 이뤄진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전했다. 일반 범죄자에 대한 특별사면이 경제인과 정치인의 사면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억제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행해진다는 비판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성숙한 민주사회로 나아가기

특별사면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특별사면의 대상자를 제한하는 것이 한 방법으로 거론된다. 박찬걸 교수는 “범죄를 저지른 자가 대통령의 정치 세력인 경우, 특별사면 혹은 감형 이후 재범을 한 경우, 반인륜적이거나 반인도주의적 범죄를 저지른 경우 사면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박광현 교수는 “몇 년의 최저 형량을 정해, 그것을 채우지 않은 경우 사면을 제한하는 방법이 있다”라고도 제안했다.

특별사면의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현행 제도상 특별사면은 법무부 장관 산하 사면심사위원회의 심사를 받는데, 그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박찬걸 교수는 “법무부 장관을 대통령이 임명하기에 현행 체제는 공정성의 확보가 어렵다”라며 “사면심사위원회의 소속을 변경하고, 일정 이상의 외부 위원 위촉을 강제하며 위원회 회의록을 즉시 공개해야 한다”라고 전했다. 김재윤 교수(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는 “독일의 경우 특별사면은 대상자에 대한 수사기관의 상세한 재조사를 바탕으로 재판과 유사하게 진행된다”라며 사전 심사 과정이 더욱 철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국민이 더욱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바탕으로 특별사면 대상자와 방식의 적절성에 대해 목소리를 낼 필요도 있다. 장영수 교수는 “사면제도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어 제도적으로 이를 제한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에, 사면이 이뤄질 때마다 국민이 이에 대해 주목하고 민주적 통제를 가하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라고 전했다.

 

독재의 역사를 겪었고 제왕적 대통령제 체제에 사는 우리에게 정당 간 정치의 일환으로 주기적으로 이뤄지는 대규모 특별사면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져 왔지만, 이제는 그 권력 행사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진지하게 재고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그 권력을 휘두르는 대통령과 정치계의 철저한 자기반성과 책임감 있는 행동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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