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경찰 앞에 놓인 총기와 물리력 사용의 딜레마

최근 7월 21일 신림역 칼부림 사건을 시작으로 8월 3일 서현역 칼부림 사건, 8월 17일 신림동 공원 강간살인 사건까지 수차례의 이상동기 범죄가 연이어 발생했다. 당시 경찰은 총기의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다. 반면 정부는 저위험 권총 도입을 위한 예산을 편성하고, 흉기 난동에 강경하게 맞서겠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은 ‘총을 쏠 결심’을 내린 걸까?

 

◇테이저건 vs 실탄, 선택은 저위험 권총?=최근 무차별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며, 기존 경찰이 사용하는 무기가 현장 대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부상했다. 흉기를 든 범죄자와 대치할 때, 원칙적으로 경찰은 제압 효과가 확실한 38구경 리볼버를 사용할 수 있으나 살상력이 커서 부담을 느낀다. 국민의힘 김웅 의원실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지난 8월까지 범죄 현장에서 실탄이 사용된 사례는 ‘0건’이었다. 대신 경찰은 차선책으로 살상력이 적은 테이저건을 활용한다. 그러나 테이저건의 사용에도 한계는 존재한다. 장현석 교수(경기대 경찰행정학과)는 “테이저건은 바늘을 사람 몸에 꽂고 방아쇠를 당겨 고전압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방식인데, 지금 사용하는 테이저건의 경우 사거리가 5~6m로 매우 짧고 1발만 장전할 수 있어 오발했을 시 장전과 겨냥을 다시 반복해야 한다”라고 전했다.

그러자 정부가 내린 결단은 ‘저위험 권총’의 도입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8월 29일에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든 현장 경찰에게 저위험 권총을 보급하겠다고 밝혔다. 올해는 저위험 권총 도입을 위해 13억 5,000만 원이 편성됐으며, 이날 발표된 2024년 예산안에서는 지난해 대비 6.3배 많은 86억 원의 예산이 저위험 권총 도입을 위해 책정됐다.

 

◇저위험 권총, 도입되기엔 시기상조=저위험 권총은 일반 실탄보다 살상력은 작고 테이저건보다 제압 효과는 좋다. 저위험 권총은 기존 권총보다 300g 정도 가벼운 550g의 무게로 휴대하기 편하고, 격발 시 반동도 기존 대비 30% 수준이다. 사용되는 탄환에도 차이가 있는데, 저위험 권총 개발사 ‘SNT모티브’ 박수만 책임연구원은 “저위험 탄환은 플라스틱 재질로 위력은 35줄(J) 정도로 360~380J의 파괴력을 가진 실탄의 10분의 1 수준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저위험 권총은 안전성에 대한 논란으로 인해 도입에 차질이 생겼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확보한 「저위험 대체총기 안전성 검사 결과 보고서」에는 돼지 뒷다리를 대상으로 한 저위험 권총의 관통 시험 관련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 7.5cm의 관통 깊이가 측정됐다. 인체의 7.5cm를 관통하면 주요 혈관과 뼈는 물론 신경까지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수 있다. 

심지어 안전성 검증을 위한 규격도 정립되지 않아, 곧바로 저위험 권총을 도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였다. 현행 ‘경찰장비관리규칙’에 따르면, 경찰청이 위해성 장비를 보급하기 위해서는 장비의 안전성을 입증할 안전성 검증규격과 표준검사 규정 및 기준을 거쳐야 하는데, 규격 기준에 대한 사전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형석 의원은 “대통령의 지시라면 전후 사정을 따지지도 않고 일단 치안 현장에 배치하겠다는 것은 국민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라며 행정당국의 섣부른 판단을 비판했다.

결국 정부의 계획은 다소 틀어졌다. 올해 저위험 권총 구매 예산으로 편성된 13억 5,000만 원은 기존에 사용하던 38구경 리볼버 1,400정을 추가 구매하는 것으로 용도가 변경됐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제78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서도 “흉악범죄에 대한 효과적 대응을 위해 저위험 권총과 같은 신형 장구를 신속히 보급하겠다”라고 약속하며 여전히 저위험 권총의 도입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법적인 보호 없이는 제자리 걸음=이처럼 정부는 저위험 권총의 도입이 능사인 것처럼 강조하지만, 저위험 권총의 도입만이 정답인지에 관한 사회적인 숙고는 부족한 상황이다. 저위험 권총을 사용하는 경찰의 법적 보호에 대한 논의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 대표적인 예다. 현행 경찰관직무집행법은 ‘경찰이 살인 등 강력 범죄나 가정폭력 등의 긴급 상황 시 직무를 수행하다가 타인의 피해가 발생해도 고의나 중대 과실이 없으면 형사책임을 감면받는다’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현장 경찰관이 고의나 중대 과실이 없음을 스스로 증명해내기는 매우 어렵다. 이윤호 명예교수(동국대 경찰행정학부)는 “범인 진압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경찰의 물리력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니다”라며 “대응 이후 발생하는 사후 처리를 경찰 개인이 전부 부담해야 하는 것이 문제”라고 경찰이 물리력을 행사하는 데 제약이 생기는 원인을 지적했다. 경찰청 인권위원을 지낸 이주민법률지원센터 ‘모모’ 김원규 변호사는 “경찰 대응의 어려움에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하급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경찰 조직의 관료적 대응이 주요하게 작용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위험성이 일반 권총보다 낮다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저위험 권총을 도입하는 것보다 조직 차원의 대응 시스템을 갖춰 현장 경찰관들의 법적 대응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우선이다”라며 경찰 조직 내에서 현장 경찰관을 위한 법적 보호가 마련돼야 함을 촉구했다.

 

아직 총기의 안전성 검증도, 그에 앞서 필수적인 물리력을 행사한 경찰 개개인의 법적 보호도 이뤄지지 못한 지금, 저위험 권총이 실효적으로 이용되기는 요원해 보인다. 성급하게 정책을 추진하기보다는 총기 도입의 정당성과 대응 방향에 대한 섬세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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