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에서 ‘대학 기업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표출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변화하는 대학 사회에서 교육이 기업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올해 5월 급속도로 결정된 첨단융합학부의 신설은 대학 교육의 의미에 대한 오랜 질문을 다시금 던지는 중요한 이슈였다. 우선 차세대지능형반도체학과나 혁신신약학과 등 신설 학과가 과연 기존 학문 분과와 얼마나 차별화되는지 의문이 제기됐다. 동시에 이런 학과의 신설이 특정 분야 기업의 수요에 필요한 ‘인재’를 빠른 속도로 생산해내는 일종의 ‘계약학과’ 창출이 아닌지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지속가능기술 등을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며, 산업에 연결되는 지식 교육은 이미 여러 학과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첨단융합학부의 커리큘럼은 기존 학과에서는 학부와 대학원에서 장기간에 걸쳐 교육하는 내용을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주입하는 방식으로 짜여 있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지식을 습득한 졸업자를 해당 분야 기업이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학의 학부 교육은 과연 특정 산업 분야에 채용될 기술 노동자를 빠른 속도로 생산해 내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가? 서울대는 첨단융합학부의 필요성에 대해 기존 학부 교육의 한계를 지적하며 학문 분과 간의 융합과 이를 통해 달성되는 창의성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첨단융합학부 커리큘럼은 오히려 다양한 학문을 통섭적으로 접하며 교양을 쌓고 스스로 문제의식을 탐구해 나갈 여유를 기존 학부 교육보다 더 심하게 박탈하고 있다. 

그동안 대학 사회는 첨단융합학부 신설에 대한 문제 제기와 숙의의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제부터라도 기존 학과의 학생들, 그리고 ‘계약학과’에 새로 입학할 학생들이 첨단융합학부 신설안 속에서 교육권을 제대로 보장받을 수 있는지 고민을 모아나가야 한다. 졸속으로 결정된 신설 이후 기존 학과 학생들은 교육 공간과 교수자를 충분히 보장받을 수 있는가? 융합과 창의 등을 내걸고 있지만 사실상 기업의 노동자 재생산 비용을 대학에 과도하게 전가하는 가운데, 첨단융합학부로 입학할 학생들은 스스로 다양한 관심을 탐구해 나갈 수 있는가? 대학 교육의 의미가 무엇이며 그 속에서 학생은 어떤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는지, 서울대는 책임 있게 대답해야 한다.

 

이재현

서양사학과·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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