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중장년 비혼의 삶과 사회 ②

결혼하지 않는 삶, 즉 비혼은 이제 청년기의 일시적인 상태를 넘어 새로운 생애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비혼은 ‘가족 해체의 주범’으로 지목되기 일쑤다. ‘결혼을 안 하면 애는 누가 낳냐’라는 말이 뒤따르기도 한다. 이처럼 결혼과 가족에 대한 제한된 상상력 속에서 비혼인이 겪는 소외는 계속되고 있다. 두 번째 연재에서는 가족제도의 변화를 통해 비혼 현상을 살피고, 현실과 제도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변화의 가능성을 짚어본다.

 

 

가족 변화의 맥락에서 비혼을 이해하기

◇가족이라는 제도=가족은 흔히 가장 자연적인 공동체 형태로 여겨지지만, 사실 그 모습과 범위는 사회적으로 구성된다. 오늘날 가족의 형태를 규정하는 법과 제도는 그에 상응하는 문화적 맥락 속에서 등장하고 작동하는데, 학계에서는 특히 근대 이후 등장한 가족 개념을 ‘정상가족 패러다임’이라고 부른다.

정상가족 패러다임이 상정하는 핵가족 모델은 특정한 사회적 맥락의 산물이다. 이에 대해 전영수 교수(한양대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는 “가족제도는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기획된다”라고 설명한다. 가족구성권연구소 이유나 연구위원은 “정상가족 패러다임이 상정하는 핵가족 모델은 산업화 과정의 산물”이라며, “남성이 항시 노동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가사노동이 여성의 역할로 분담되고, 산아제한 정책에 의해 대가족 모델이 해체된 결과”라고 해설했다.

◇저항의 움직임으로 등장한 비혼=비혼은 정상가족 패러다임과 그를 토대로 하는 가족제도에 대한 저항의 일환으로 등장했다. 이유나 연구위원은 “1990년대 이후부터 기존 가족제도의 문제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고 남성의 노동만으로 생계를 부양하기 점점 어려워지자 맞벌이가 보편화됐고, 정상가족 모델하에서 여성이 출산과 양육에 대해 느끼는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서울대 비교문화연구소 지은숙 연구원은 “이런 변화의 결과 한국에서 ‘비혼’이라는 언어로 여성의 대안적 생애를 모색하는 정치적 운동이 등장했다”라고 설명한다. 이후 2000년대를 지나면서 ‘비혼들의 비행’ 등 전국 각지에서 비혼을 표방하는 공동체가 나타나고 관련 논의가 활발해지는 등 그 흐름이 가속화됐다.

◇흔들리는 정상가족 패러다임=가족제도와 현실의 괴리가 커지면서 비혼은 점차 일반화됐다. 이유나 연구위원은 “1990년대 후반에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것이 곧 정치적 운동이었지만, 결혼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지며 비혼은 점차 중립적인 용어가 됐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강유진 교수(총신대 아동학과)는 “개별적 삶의 모습이 다양해지며 결혼에 대한 가치중립적 태도가 확산된 결과 결혼하지 않은 사람을 ‘미혼’ 대신 ‘비혼’으로 부르게 된 것”이라며 사회적 환경과 인식의 변화를 언급했다. 

통계청 「사회조사: 결혼에 대한 견해」, 여성가족부 「2021 가족다양성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서 발췌.
통계청 「사회조사: 결혼에 대한 견해」, 여성가족부 「2021 가족다양성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서 발췌.

사회 전반의 인식이 다양한 삶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음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2022년 통계청의 「사회조사」에 따르면 결혼을 해야 하거나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중은 50.1%에 불과해, 2002년의 69.1%에 비해 크게 줄었다. 가족의 형태를 더 폭넓게 이해하는 사람은 늘고 있다. 2021년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가족 다양성에 대한 인식조사」에서 응답자의 60.5%는 혼인·혈연 관계가 아니더라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한다면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답했다. 이외에도 1인 가구나 비혼 동거,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한 사회적 수용도 역시 조사를 시작한 2019년부터 꾸준히 상승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는 가족 형성에 따르는 부담이 커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전영수 교수는 “오늘날 사람들이 결혼을 통해 가족을 형성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노후에 대한 보장과 같은, 가족을 형성함으로써 기대되는 것은 줄어든 반면 이를 위해 감수해야 할 것은 늘어났다는 것이다.

 

가족제도의 바깥, 비혼인의 어려움

◇여전히 가족을 단위로 하는 제도들=제도를 둘러싼 현실이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가족제도는 여전히 정상가족을 상정한 채로 더디게 움직인다. 이는 비혼인이 여러 영역에서 소외를 경험하는 원인이 된다. 가장 일상적으로는 친밀한 관계에 동반되는 다양한 권리들이 법적 가족의 범위 내로 한정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현행법상 수술 동의서 작성 등의 의료적 결정권은 당사자를 제외하고는 가족에게만 인정돼서, 가족이 아니면 당사자가 의식 불명일 때 법적 보호자로서 수술 동의서를 쓸 수 없다. 이외에도 비혼 상태로 맺은 친밀한 관계에 대해서는 고용보험이나 건강보험의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없고, 상속권이나 부양가족 인적 공제 같은 경제적 권리도 인정되지 않는다. 간병이나 육아 등의 이유로 돌봄이 필요한 경우를 위한 돌봄휴가·휴직을 사용할 권리나, 장례 절차에 관여할 수 있는 연고자의 범위도 제한된다. 이유나 연구위원은 “실질적으로 연고 관계에 있더라도 장례를 주관하거나 장례를 위한 휴가를 받을 수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주거 정책에 대해서도 많은 비혼인이 소외감을 호소한다. 지은숙 연구원은 “한국의 주거 정책은 혼인을 통한 가족 구성이라는 생애 모델을 전제한다”라고 짚었다. 대표적으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공공임대주택 사업인 ‘행복주택’의 경우 1인 가구를 위한 지원은 한시적이고, 가족을 구성하고 신혼부부가 돼야만 안정적인 주거 지원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중장년에 해당하는 40~59세는 주거급여 수급자가 아니면 주거복지의 혜택을 받을 수 없어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전세자금 대출 지원 등 다른 정책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실제로 동거하고 있더라도 비혼 상태라면 부양가족으로 인정되지 않아 청약 신청 시 가점을 받지 못하는 등의 제도적 불이익도 있다. 지은숙 연구원은 이처럼 특정 생애 모델을 따르는 분절적인 정책이 “사람들을 컨베이어 벨트에서 계속 밀어내며 그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주변화한다”라고 비판했다.

◇가족제도에 위임된 안전망=돌봄의 공백으로 인한 위기가 가족제도 바깥에서 심화되기도 한다. 지난 연재에서 만난 김용운 작가(47)의 “나이가 들면 보살펴 줄 사람이 없다는 고민”이나 박정순 씨(간호사‧51)가 말한 “가족이라는 경제공동체 밖에서 사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비혼인들의 보편적인 걱정거리다. (『대학신문』 2023년 10월 9일 자) 노인 돌봄의 역할이 가족에게 크게 위임돼 있기 때문에,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지 않은 비혼인은 노화에 따른 건강 악화와 경제적 불안정에 대한 우려가 클 수밖에 없다. 동시에 지금의 중장년 비혼인은 원가족 부양의 부담을 더 크게 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이중고를 겪기도 한다.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혼 자녀가 결혼한 자녀에 비해 노인이 된 부모의 돌봄에 더 많은 참여를 요구받기 때문이다. 성미애 교수(한국방송통신대 생활과학부)는 “중장년 세대의 경우 전통적인 가족관의 영향으로 여성 비혼인이 부모를 부양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가족이 사적 안전망으로서 많은 부담을 떠안는 상황은 비자발적으로 비혼 상태에 놓인 이들에게 더 큰 문제가 된다. 이혼이나 사별 등의 이유로 중장년기에 비자발적 비혼으로 살아가게 된 경우 사회적·경제적 불안정성에 대처할 자원이 더욱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가장 취약한 집단으로 중장년 저소득 남성을 꼽는다. 박승곤 교수(나사렛대 사회복지학부)는 “지금의 중장년 이상 남성에게는 사회적 관계보다 경제적 능력을 성취하는 것이 강조됐기 때문에 같은 세대의 여성에 비해 직장이나 가족 외의 사회관계를 맺지 못한 경우가 많다”라며, 이들은 경제적 어려움에 더해 사회적으로도 고립될 위험이 크다고 강조했다.

 

비혼의 미래, 가족의 미래

◇이제는 제도가 변해야 할 때=한편, 일각에서는 이런 문제를 파악하고 전통적 가족제도가 포괄하지 못하는 비혼을 비롯한 대안적 가족 공동체를 모색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가족의 형태에 관한 규정을 삭제하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이 2020년에, 가족의 범위를 혈연과 혼인 외의 관계로 확장할 것을 골자로 하는 생활동반자법이 올해에 각각 발의됐다. 현재 두 법안은 모두 사회적 합의에 대한 논쟁과 관련법 검토 등의 이유로 계류 중이다. 이에 대해 이유나 연구위원은 “아직 이런 변화를 정치적으로 밀고 나갈 힘은 부족하다”라며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사회·복지 분야의 거의 모든 제도를 건드리는 법안이 발의됐다는 자체로도 의의가 있다”라고 평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늘어나는 1인 가구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사회정책의 대상자를 확대하고 있다. 서울특별시나 부산광역시의 1인 가구 지원 조례에서 “혈연이나 혼인 관계로 이뤄지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취사·취침 등 생계를 함께 유지하는 형태의 공동체”를 ‘사회적 가족’으로 규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다양한 가족, 지속 가능한 사회를 향해=전문가들은 이처럼 변화하는 사회 환경과 인식에 맞춰 가족의 범위를 유연하게 확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영수 교수는 “지금의 시스템은 국가가 결혼과 가족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결혼 독점제’와 같다”라며 “친밀한 관계 등 가족의 기능을 한다면 제도적으로도 가족의 범위 안에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전했다. 이유나 연구위원도 “가족제도에 대한 저항의 일환으로 전개됐던 비혼 운동은 가족구성권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라며 “정상가족이 아닌 방식으로도 생존의 단위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사회 시스템이 가족주의적 모델에서 개인주의적 모델로 변해야 사회의 지속 가능성도 담보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유나 연구위원은 개인주의적 모델이란 “개인이 홀로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특정 형태로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상호의존적 관계 속에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처럼 다양한 삶의 모델을 인정하고 노동과 돌봄이 양립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정립되는 것이 저출생을 극복하는 길이기도 하다”라며 비혼에 대한 편견과 혼인만을 장려하는 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전영수 교수도 “결혼을 통해서만 ‘정상적인’ 출산이 가능한 지금의 시스템은 후속세대 재생산의 가능성을 제약하는 일”이라고 평하면서, “개인들이 가족을 자연스럽게 결성하려면 가족의 범위가 유연해져야 할 뿐만 아니라 포용적인 거버넌스가 재구축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가족은 더 이상 혈연과 혼인이라는 좁은 틀 안에 갇혀 있기를 거부한다. 지금의 현실을 반영하고 더 포용적인 미래를 품은 새로운 상상력으로, 비혼과 가족의 변화를 바라볼 때다.

 

삽화‧인포그래픽: 김예라 기자

siksik0928@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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