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심리상담 시장의 실태와 심리상담사법

힘든 마음을 달래기 위해 심리상담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마음을 털어놓기 위해 찾은 상담사가 전문 지식도 갖추지 않은 일반인일 수 있다면 어떨까. 얼핏 그럴듯해 보였던 ‘심리상담사’ 자격증만으로 상대방을 전문가라고 생각했던 것이 근거 없는 믿음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무자격자가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는 심리상담 시장의 현 실태,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논의되고 있는 방안에 대해 차근차근 살펴보자.

 

너도 나도 심리상담사

앞으로 심리상담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나, 지금의 심리상담 시장은 관리 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현재는 누구나 심리상담사를 자처해 영리 목적의 심리상담을 할 수 있다. 심지어 범죄 이력이 존재해도 ‘심리상담소’를 상호에 내걸고 영업할 수도 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결격 사유나 자격 요건 등을 정하는 법적 규제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이런 제도적인 허점으로 인해 실제로 2020년 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성범죄자가 심리상담소를 운영하다 또 다시 성추행을 저지른 사례가 알려지기도 했다. 한국상담학회 손은령 학회장은 “심리상담을 제공할 수 있는 이에 대한 별도의 자격 제한이 없다 보니 범죄자가 스스로를 심리상담사라 소개하며 활동해도 마땅히 제재할 방법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가 상담사를 선택할 때 중요하게 참고할 수밖에 없는 자격증 역시 온전히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심리상담과 관련된 이름을 가진 민간자격이 우후죽순으로 난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 민간자격등록정보에 따르면, 2023년 6월 기준 자격명에 ‘심리’ 또는 ‘상담’을 포함한 자격은 ‘심리상담사’, ‘감정상담사’, ‘심리분석사’ 등을 포함해 6,400여 개에 달했다. 이런 상황은 누구나 그럴싸한 이름의 자격증을 신설하고 발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현행 자격제도의 허술함에서 비롯된다. 현행 자격기본법 제17조에 따르면 별도 법령에서 금지하고 있는 분야가 아닌 이상 민간에서 자유롭게 자격을 신설하고 운영할 수 있는데, 금지된 분야에 심리상담 영역은 포함되지 않는다.

일부 저명한 학회에서 발급하는 자격증 외에, 상당수의 자격증은 전문성이 부족한 민간단체가 자의적으로 발급하고 있다. 예컨대 모 업체에서 발급하는 ‘심리상담사’ 자격의 경우에는 고등학교 졸업자가 온라인 강의 25강 중 15강만 수강하고, 100점짜리 온라인 시험에서 60점을 넘기기만 하면 자격발급비를 결제하고 자격증을 따낼 수 있었다. 손은령 학회장은 “상담 분야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로 학문적 지식, 다년간의 수련 경험, 엄격한 윤리 의식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라며 “그런데 남발되는 자격증을 ‘구매’한 사람들이 전문가를 자처하며 비전문적 상담행위를 하고 있어 내담자들이 위험에 노출돼 있다”라고 토로했다.

 

오도 가도 못하는 심리상담사법 제정 논의

이와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국회에서는 심리상담사법을 제정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동일한 문제를 두고 최종윤, 전봉민, 서정숙, 심상정, 김민철 5명의 의원이 각각 법안을 대표 발의했는데 이들 법안은 공통적으로 상담사의 자격 요건을 정하고 이들에게 상담을 제공할 수 있는 독점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심리상담계 안팎의 이해관계자들이 법안의 세부 내용을 두고 대립각을 세우면서 법안 제정은 지체되고 있다. 우선 심리상담계는 의료계와 갈등을 빚고 있다. 특히 정신건강의학계에서는 상담의 형태로 이뤄지는 정신과적 치료행위인 ‘정신치료’와 심리상담사법에서 규정하려는 ‘심리상담’을 구분하는 기준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김상욱 부회장은 “어떤 심리상담이 정신과적 치료냐 아니냐는 대상자의 증상, 정신질환 진단 여부, 상담 기법, 상담 시간, 상담자의 자격 여부 등을 복합적으로 따져 구분한다”라며 “심리상담사법은 이런 지점에 대한 충분한 논의 없이 상담의 개념을 포괄적으로 정의하고, 이들에게 상담의 독점권을 부여해 비의료인에 의한 의료행위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손은령 학회장은 “일반적인 심리상담과 정신과적 상담의 경계를 무 자르듯 구분하긴 어렵다”라면서도 “상담사들이 정신과적 치료를 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담자의 증상이 정신질환으로 심화되는 일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심리상담을 하겠다는 것이다”라고 반론했다. 

심리상담계 내부에서도 상담사의 자격 요건 규정을 두고 심리학계와 상담학계의 미묘한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심리학회와 한국임상심리학회는 법안이 규정할 법정 자격 요건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심리학계에서 기존에도 취득 요건이 까다로운 민간자격을 여럿 운영해 왔다는 점에 기인한다. 예컨대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의 경우 임상심리학 석사 학위와 더불어 3년 동안 3,000시간의 수련을 요구하는데, 새로운 법안도 이에 준하는 수준으로 자격 요건을 규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임상심리학회 김석웅 홍보이사는 “현재 발의된 심리상담사법은 학과와 학위의 취득 여부를 지나치게 느슨하게 규정하고 있다”라며 “이들에게 독점적인 상담의 자격을 부여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심리상담의 질이 낮아질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이에 반해 손은령 학회장은 “상담은 심리학뿐 아니라 교육학, 간호학, 사회복지학, 철학, 종교학 등 다양한 학문에 기반을 두고 있다”라며 “법에서는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전문상담사자격심의위원회에서 시험과목이나 선발 인원 등을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맞서는 상황이다.

 

상담사 선택 시 유의할 점은

법이 제정되고 심리상담 시장이 제대로 관리 감독되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상담 시장의 질서가 정리되기 전까지는 소비자의 주의가 요구된다. 그렇다면 비전문적인 상담으로 인해 피해받는 상황으로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떤 점을 유의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일단 심리상담을 받기로 결정하고 상담사를 선택하게 된다면 상담사가 보유한 자격이 공신력 있는 기관으로부터 발급된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이훈진 대학생활문화원장(심리학과)은 신뢰할 수 있는 심리상담 자격으로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임상심리사 △여성가족부 청소년상담사 △한국심리학회 임상심리전문가 △한국심리학회 상담심리사 △한국상담학회 전문상담사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인지행동치료 전문가를 꼽으며 “이 자격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학위와 다년간의 수련 과정을 요구하기 때문에 공신력을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한국임상심리학회, 한국심리학회, 한국상담학회,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에서는 홈페이지를 통해 자격 취득자의 명단을 공개하고 있으므로 심리상담소에서 안내하는 내용과 일치하는지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라고 조언했다.

 

심리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놓여있는 내담자에게는 상담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큰 영향을 미친다. 심리상담사법 제정 논의가 지지부진한 사이, 누군가는 또 비전문적인 상담의 위험에 노출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법안 제정 논의가 소모적인 논쟁으로 확대돼 또 다른 피해자를 낳아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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