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국민연금 개혁을 둘러싼 두 시선

노령인구가 늘어나고 생산인구가 줄어듦에 따라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성에도 물음표가 붙었다. 지난 1월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는 국민연금기금의 소진 시점이 2057년에서 2055년으로 앞당겨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발표했다. 이처럼 국민연금기금 소진 시점이 점점 빠르게 다가오면서 개혁의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됐으나, 한국은 2007년 소득대체율을 인하한 이후 어떤 개혁도 이루지 못했다. 지난달 27일 보건복지부가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발표했으나 이 역시 피상적인 논의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민연금 개혁이 이토록 어려운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흐지부지 국민연금 개혁

국민연금은 공적인 노후 소득 보장 제도이자 사회보험 제도다. 본인이 납입한 보험료를 훗날 본인이 받는 개인연금과 달리 세대 간 계약의 원리에 따라 운용되는 국민연금은 보험료 납부자와 연금 수급자가 다르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오종헌 사무국장은 “국민연금은 개인연금과 달리 가입이 강제되며, 퇴직세대가 조성한 생산기반에서 생산세대가 노동해 납부하는 보험료 등으로 재원이 구성된다”라고 설명했다. 이때 생산세대가 월 급여에서 연금 보험료로 납부하는 금액의 비율을 보험료율, 퇴직세대의 국민연금 가입 기간 중 평균소득을 연금이 대체하는 비율을 소득대체율이라고 부른다. 

국민연금법 제4조는 국민연금 재정이 장기적으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정에 맞춰 조정돼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5년마다 국민연금 운영 전반에 대한 계획을 수립해 당해 10월까지 국회에 제출한다. 오종헌 사무국장은 “국민연금은 보통 초기 가입자의 부담 완화를 위해 낮은 보험료에서 출발하며 경제 발전 정도, 부담 능력 등에 따라 보험료를 점진적으로 조정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노령인구 증가와 임금 상승 등 외부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그간 두 차례의 소극적인 개혁만을 거쳤다.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문유진 대표는 “우리나라는 1988년 국민연금 제도가 시행된 이래로 1998년과 2007년에 연금 개혁을 실시한 바 있지만, 결과적으로 9%인 보험료율은 그대로 두고 소득대체율만 70%에서 40%로 낮춘 정도에 그쳤다”라고 설명했다. 가속되는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하기에 보험료율이 지나치게 낮으며, 국민연금 수급액이 월평균 60만 원 정도에 불과한 상황에서 소득대체율도 충분치 않다는 비판이 계속해 제기됐다.

▲보건복지부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에서 발췌.
▲보건복지부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에서 발췌.

지난달 27일 발표된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 역시 추상적인 개혁안에 그쳐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이번 계획은 △연령별 보험료 차등 인상 △자동안정화 장치 마련 △확정급여방식에서 확정기여방식으로의 전환 등 연금 지급액을 유동적으로 조정해 재정 안정을 달성하고자 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의 수준 등 실질적인 수치가 제외돼 재정 안정성과 보장성에 사실상의 변화를 주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주은선 교수(경기대 사회복지학과)는 “재정 안정을 위한 색다른 논의가 언급됐지만, 목표와 정책 수단에 관한 얘기가 없어 막연하다”라고 분석했다. 양재진 교수(연세대 행정학과)는 “종합운영계획에서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지 않는 경우는 굉장히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보장 강화와 재정 안정이라는 딜레마

이처럼 지지부진한 국민연금 개혁의 이면에는 국민연금의 보장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과 국민연금의 재정 건전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 간 매우 치열한 대립이 존재한다. 주은선 교수는 “국민연금 개혁을 둘러싼 갈등은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에 대한 표면적인 입장 차이를 넘어서 국민연금이 노후 소득 보장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관점의 차이가 존재해 합의가 쉽지 않다”라고 전했다.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을 중시하는 이들은 현재의 소득대체율을 유지 혹은 인하하면서 보험료율을 높이자고 주장한다. 아직은 노령 인구가 적어 보험료 수입이 연금 지급으로 인한 지출보다 많아 기금이 축적되고 있지만, 2050년경 전체 노인 중 연금 수급자 비율이 80%에 이르면 기금이 고갈돼 연금 지급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양재진 교수는 “기금이 고갈되면 보험료만으로 연금 지급을 해결해야 하기에 보험료율을 대폭 높여야 제도를 유지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이들은 미리 보험료율을 높여 기금 규모를 키우고, 기금의 이자 등으로 운용수익을 높여 기금 고갈을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이들은 국민연금 개혁보다 기초연금 등의 보완적 제도를 강화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극심한 노인빈곤에 대처하는 데 더욱 효과적이라고 제안한다. 양재진 교수는 “비정규직 노동자나 실직자 등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사람은 국민연금의 수혜를 받지 못한다”라며 “노인 빈곤 문제가 국민연금만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근본적으로 노인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후세대에만 큰 부담이 가는 국민연금기금이 아니라 국고를 사용하는 기초연금의 보장 수준을 개선하는 편이 낫다”라고 설명했다. 

반대로 국민연금의 보장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은 안정적인 노후 대비를 위해 소득대체율을 인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주은선 교수는 “전체 임금 노동자의 70% 정도가 국민연금에 가입돼 있다”라며 “노동자의 절대다수에게는 국민연금이 핵심적인 노후 대비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오종헌 사무국장은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OECD 최하위 수준이다”라며 “이처럼 소득대체율이 낮은 상태에서는 보험료율 인상이라는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들은 적절한 보장성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방식의 재원 마련을 통해 국민연금의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 문유진 대표는 “점진적인 보험료 인상과 기금운용 수익 활용, 국가의 재정 분담 등이 이뤄진다면 적정 보장을 하기에 재원이 부족하지 않다”라고 분석했다. 

 

국민연금 개혁이 가능하려면

국민연금 개혁은 다른 사회 제도의 전반적인 개혁이 필연적으로 동반돼야 하기에 더욱 합의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주은선 교수는 “이번 개혁안에서 언급된 대로 연금 수급 연령을 늦추기 위해서는 정년제와 고령자 일자리 질을 개선하는 등의 선행 조치가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양재진 교수는 “국민연금 개혁이 보험료율을 높이고 소득대체율을 낮추는 방향으로 이뤄진다면 기초연금 등 다른 공적 연금 개혁도 동반돼야 한다”라고 짚었다. 

첨예한 대립 속에서 합의점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주도 아래 각계각층의 끊임없는 대화가 필요하다. 문유진 대표는 “지금의 개혁 논의처럼 몇 차례 전문가 회의를 통해서만 개혁을 진행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계층의 국민이 모인 사회적 대화가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오종헌 사무국장도 “부담과 수급의 주체가 되는 대표성을 가진 국민들이 사회적 합의 기구에 참여해 개혁안을 만들고, 그 합의를 바탕으로 개혁안을 입법화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라고 전했다. 

 

이번 개혁안은 국회에서의 공론화 과정을 앞두고 있다. 국민연금은 현 청년 세대와 그들의 부모님 세대 모두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연금 개혁이 앞으로 성숙한 합의를 끌어낼 수 있을지 귀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포그래픽: 박재아 기자

0204jae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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