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박재아 기자 0204jaea@snu.ac.kr
삽화: 박재아 기자 0204jaea@snu.ac.kr

정부의 일회용품 규제 정책이 사실상 백지화됐다. 지난 7일(화) 환경부는 11월 24일부로 종료될 예정이었던 종이컵, 플라스틱 빨대 등 일회용품 사용 금지 정책의 계도기간을 무기한 연장하겠다고 했다. 계도기간 종료까지 불과 2주 정도 남은 시점에서 갑작스럽게 정책 방향을 바꾼 것이다. 동시에 편의점 등에서 실시하던 비닐봉투 사용 금지도 철회됐다. 이에 일회용품 사용 금지로 인해 운영 비용 상승을 걱정하던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환영의 목소리도 있으나, 환경정책이 후퇴했다는 평가와 동시에 환경정책의 일관성이 없어 현장에 혼란만 가중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일부에서는 내년 총선을 대비한 선심성 정책 철회라는 말도 나온다.

환경부는 1년의 계도기간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이 많고, 비용 문제로 소상공인들의 부담이 커 정책이 잘 정착되지 못한 것을 정책 철회의 이유로 설명했다. 하지만 일반 비닐봉투 사용 시 과태료 부과를 취소한 것에 대해서는 일반 비닐봉투 대신 생분해성 봉투나 종량제 봉투의 사용이 정착되는 등 현장에서 적응이 잘 이뤄지고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정책 철회의 이유를 놓고 한쪽으로는 정착이 잘 안 되기 때문이라고 하고, 다른 한쪽으로는 정착이 잘 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일관성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런 자가당착에 빠진 주장을 하는 환경부의 정책을 과연 신뢰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환경부는 이번 정책 철회가 결코 일회용품 사용을 권장한다는 취지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희생을 전제로 하는 일회용품 규제보다는 사회구성원이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쪽으로 정책을 수정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것이다. 강제적인 제도 도입보다 인식 개선이 우선이라는 것인데, 말은 좋아 보인다. 그런데 정말 강제성 없이 일회용품 사용을 줄일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회의적이다. 대학신문사에서는 오래전부터 종이컵 사용을 줄여오다가 최근에 와서 종이컵을 아예 구비하지 않고 있다. 물론 처음에는 불편했다. 하지만 현재 종이컵 대신 머그컵을 쓰는 데 잘 적응하고 있다. 이렇게 나는 적어도 신문사 안에서는 일회용 컵을 쓰지 않는 데 적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밖에 있는 카페에 갈 때 텀블러를 챙겨가거나 머그컵을 쓰지는 않는다. 왜? 당연히 일회용 컵을 쓰는 것이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환경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인 한 이게 보통이다. 안타깝지만 강제성이라는 고삐가 풀리는 순간 자연스럽게 편리함을 찾게 된다.

실제로 한국은 이미 2003년 음식점에서 일회용 컵 사용을 금지했다가 2008년에 소비자 불편을 이유로 규제를 푼 적이 있다. 이번과 비슷한 사례다. 결과는 2008년 이후로 5년 동안 종이컵 사용량이 약 4배 폭증했다.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는 증거다. 이런 반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계획도 밝히지 않은 채 인식 변화에만 호소하는 것은 환경부가 과연 일회용품 사용 억제에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정부는 환경정책 방향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여동하 간사

lyrikosstb@snu.ac.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