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 매킨타이어와 아렌트의 눈을 빌려 탈진실 너머를 바라보다

가짜뉴스 문제는 ‘탈진실’에서 실마리 찾아야

“개인적 믿음이 사실 관계보다 우선시돼”

‘이미지’가 사실적 진리를 집어삼켜

기술 발전으로 허위 정보 전파 심화

윤석열 정부는 취임 초부터 ‘가짜뉴스 근절’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언론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에 따라 올해 9월 6일 가동을 시작한 방송통신위원회 ‘가짜뉴스 근절 태스크포스(TF)’는 허위보도가 적발되면 해당 언론을 바로 퇴출할 수 있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 입법을 추진하는 한편, 각 언론사의 팩트체크 시스템을 직접 점검하고 나섰다. 우리 사회가 셀 수 없이 많은 거짓 소문으로 가득 찬 것은 명백한 사실이고,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과제라는 것 역시 온당하다. 그렇다면 정부의 ‘가짜뉴스 근절’ 정책은 정답인 걸까. 탈진실의 철학은 이에 답하기 위해 가짜뉴스 현상의 이면을 볼 것을 제안한다. 이를 통해 탈진실을 넘어 더 나은 사회로 이행하기 위한 실마리를 좇는다.

 

진실이 힘을 잃을 때

우리는 사회에 혼란을 불러오는 거짓 정보를 흔히 ‘가짜뉴스’라 표현한다. 예컨대 코로나19 상황에서 백신의 안전성에 대한 음모론이 우후죽순 퍼져나갔고, 한국에서는 소금물로 가글을 하면 코로나19를 예방할 수 있다는 정보가 집단감염 사태를 부추기기도 했다. 우리는 흔히 이런 가짜뉴스를 배격하면 사회의 혼란을 근절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정부가 가짜뉴스를 검열하겠다는 정책도 이런 믿음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흔히 간과하는 것은 가짜뉴스라는 단어가 사실을 부인하고 진실을 거짓이라 매도하는 경우에도 사용된다는 점이다.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SNU팩트체크센터 정은령 센터장은 “한국에서 과거 군부독재 시절 정부가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사실성을 띠는 수많은 정보를 ‘유언비어’라고 불렀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전두환 정권하에서 보안사령부(현 국군기무사령부)는 5·18 사태에서 군인의 민간인 살해를 유언비어라고 규정했다. 그렇기에 가짜뉴스를 배제하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기는 어렵다. 정 센터장은 “가짜뉴스라는 단어는 정치적으로 오용돼 왔기 때문에 그 개념 자체가 거짓 정보가 만연한 사태를 다루기에는 적절치 못하다”라고 전했다.

가짜뉴스 개념 자체의 부적절성과 국가도 거짓 정보 유포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 비추어 볼 때, 가짜뉴스 규제가 국가에 의해 권위적으로 행해지는 것에는 더욱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한국아렌트학회 안효성 학회장은 “심지어 정치인과 정부가 거짓 정보를 생산하는 상황에서 이런 정책은 우려스럽다”라고 전한다. 종이컵을 규제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는 지난 7일(화) 환경부 공식 발표, 한국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달 10일 국무회의 발언, 그리고 8월 28일 국방부가 제기한 홍범도 장군의 자유시 참변 가담 의혹을 포함해 정부는 많은 거짓 정보의 진원지가 돼왔다. 

결국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거짓 정보가 만연한 현상의 본질은 가짜뉴스가 아니다. 그보다는, 단순한 거짓 정보의 전파를 넘어 정보 수용자가 사실 수용을 거부하는 ‘탈진실’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 김동현 교수(한국교통대 교양학부)는 “탈진실은 무엇이 참인지에 대한 관심이 부재하고, 여론 형성 과정에서 개인적인 믿음과 감정이 사실관계보다 우선시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탈진실은 세계적 경향으로 나타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행적은 탈진실이 거짓 정보를 광범위하게 퍼뜨리며 사회적 문제를 야기함을 명확히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의 대통령 취임식이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본 취임식이라는 새빨간 거짓말을 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임기는 3만여 건의 거짓말들로, 취임 연설에 비가 오지 않았다거나 오바마 전 대통령이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등 잠깐만 조사해 봐도 명확히 거짓이라는 점이 드러나는 발언들로 채워졌다. 그런데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명백히 확인 가능한 증거들을 부정한 채 그의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했으며, 2020년 트럼프의 대선 낙선을 부정선거에 의한 것이라 믿고 국회의사당을 점거하는 사태를 벌이기에 이르렀다.

통상적으로 생각했을 때 너무나 자명하게 거짓인 정보가 그토록 광범위하고 영향력 있게 퍼져나가는 모습은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경희대 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 허의진 연구원은 “거짓 정보가 광범위하게 확산하는 현상은 트럼프 지지자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 됐고, 옥스퍼드 사전은 ‘탈진실’을 그 해의 단어로 선정했다”라고 전했다.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양극화된 정치 지형 속에서 사람들이 각자 믿는 바만을 말하며 정반대의 정보를 유포하는 지금, 탈진실은 분명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탈진실의 철학 –매킨타이어와 아렌트

현대 철학자 리 매킨타이어는 탈진실 현상을 규정하고 그 원인을 설명한 대표적인 학자다. 김동현 교수는 “매킨타이어는 탈진실 현상을 세 단계로 나누었다”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첫 단계는 진실이 아닌 정보가 생성되고 전파되는 것이다. 그러면 두 번째 단계에서 정보를 재생산하는 사람은 그 정보가 미심쩍다고 암묵적으로는 인지하지만, 이를 억누르며 정보를 진심으로 참이라고 믿는 자기기만의 단계를 거친다.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결국 마지막에 이르러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이 사실관계를 역으로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기게 되고, 무엇이 진실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정소라 강사(전남대 교육혁신본부)는 “매킨타이어는 탈진실이 발생하는 원인을 진리가 퇴색되고 있다고 믿는 개인의 감정에서 찾는다”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매킨타이어의 분석은 탈진실을 이해하는 강력한 틀을 제공하지만, 거짓 정보가 광범위하게 발생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한계점 역시 존재한다.

한나 아렌트의 이론에 비춰보면, 탈진실은 정치 구조에 내재한 위험성이다. 안효성 학회장은 “아렌트는 정치를 반론의 여지가 없는 진리에 대해 논하는 과정이 아니라 복수의 인간이 의견을 갖고 논쟁하는 행위로 이해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반박할 수 없는 자명한 전제인 ‘이성적 진리’와 다르게, 실제 현실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났는지를 의미하는 ‘사실적 진리’는 더욱 쉽게 그 권위가 부정된다. 정 강사는 “사실적 진리는 목격자의 증언, 기록물, 문서 등을 통해 구축된다”라며 “이 때문에 다른 의견을 가진 이가 증거가 위조됐다고 의심하면 사실적 진리는 그 진리성을 쉽게 위협받는다”라고 부연했다. 사실적 진리를 대체하는 거짓말은 ‘이미지’가 되고, 이미지는 원본인 사실적 진리를 삼키려 시도한다. 이 과정에서 수용자가 이미지에 부합하지 않는 사실적인 진리를 배척하는 현상이 나타나며, 거짓 정보의 만연은 사실적 진리의 판별에 무관심해지는 탈진실로 귀결된다.

현대 사회의 구조적 요인에 의해 탄생한 두 종류의 새로운 거짓말로 인해 탈진실 현상은 과거에 비해 더 치명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게 됐다. 아렌트는 첫 번째 거짓말을 ‘홍보 담당자의 거짓말’이라 칭한다. 정 강사는 이에 대해 “가짜 이미지를 고의로 만들어 과거의 사실을 대체하는 기법”이라고 전했다. 안 학회장은 “넘쳐나는 광고로 상품이 아닌 이미지를 소비하게 하는 자본주의의 본질에서 유래한 거짓말”이라고 설명하며, “인품이 나쁜 정치인을 선거철 훌륭한 성인군자이자 국가를 위해 한 몸 바치는 인물로 그려내는 행위가 대표적이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 거짓말은 지식 엘리트가 중심이 되는 관료제 국가 체제에 의해 발생하는 ‘전문적 문제해결사의 거짓말’이다. 안 학회장은 “이론의 전문성을 앞세워 현실의 관측을 이론에 맞춰내고 맞지 않는 현실을 배제하려는 태도”라고 소개했다. 그는 “일례로 아렌트는 이상적 게임 이론을 활용해 억지로 현실을 해석하려는 미국 사회과학계를 비판했다”라며, “한국에 적용해 보면 특정 정치 이론에 맞춰 북한의 행위를 모두 전쟁의 징조로서 해석하는 것이 그 예시다”라고 설명했다.

이미지 조작과 이것이 초래하는 탈진실 현상은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심화된다. 정 강사는 “아렌트 역시 이미지를 조작하는 기술의 발전을 고려했으나, 현대의 인공지능·딥페이크 기술과 같이 사람들을 시청각적으로 혼란에 빠뜨리는 디지털 기술까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라며 “그는 이미지 조작 기술 자체의 허술함에 의해 사실적 진리가 종래에 드러날 것이라 믿었다”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서 이미지의 조작은 아렌트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정교하기에, 탈진실은 이 시대에 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정은령 센터장 역시 “과거에 비해 허위 정보를 생성하는 기술적 장벽이 낮아졌으며, 소셜 미디어는 허위 정보 전파에 매우 유용한 구조를 가진다”라고 디지털 시대에서 더욱 급격히 전파되는 허위 정보의 문제를 지적했다.

 

같은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

탈진실 현상을 일으키는 근원은 명료하게 규정해낼 수 없으며 학자에 따라 그 기원을 근대의 해체, 정치의 본질, 디지털 기술의 발달, 자본주의, 민주주의 체제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허위 정보의 광범위한 전파와 영향력은 탈진실이라는 배경을 떼놓고 단순하게 사회에 떠도는 정보를 사전에 검열하거나 거짓 정보를 골라 없애는 방식만으로는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보를 수용하고 이용하는 사회 전반의 변화가 필요하다.

우선 사실의 가치를 인정하려는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자세가 필요하다. 매킨타이어가 지적했듯 탈진실의 배경에는 사실적 진리의 쇠퇴를 믿는 개인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적 진리에 대한 믿음은 거짓 정보 사이에서 진실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과 시민교육을 통해 회복될 수 있다. 정소라 강사는 “사실의 가치는 우리 세계를 구성하는 기본 원리며, 그 건전한 상식을 유지하기 위한 교육이 요구된다”라고 강조했다.

이를 기반으로 시민이 정보를 수용할 때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할 수 있도록 관련 역량을 강화할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정은령 센터장은 “시민들이 수많은 정보 사이에서 진실을 가려내는 진실 확인 능력을 함양하는 것이 요구된다”라고 설명했다. 이때 제시되는 현실적 방책 중 하나가 언론의 ‘팩트체크 저널리즘’이다. 정 센터장은 “팩트체크 저널리즘은 언론이 적극적으로 정치인의 발화와 떠도는 소문에 대해 진실을 검증하는 태도”라며 “여기에는 검증된 1차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 역시 포함된다”라고 전했다. 이는 언론의 신뢰도 회복과 더불어 정보수용자가 직접 사안의 진실을 확인할 수 있게 만든다.

궁극적으로는 여러 구성원이 모여 공적 소통과 토론의 장 위에서 함께 진실을 찾아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 안효성 학회장은 “아렌트는 정치적 판단 능력을 길러 이런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라며, “그에 따르면 정치는 평등한 개인 사이에서 이뤄지기에 공감과 유대능력을 키우는 전인적 교육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김동현 교수는 “개인의 인식적 능력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기에 올바른 세계상을 찾는 과정은 공동체 전체의 협동 작업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이는 스스로의 믿음이 옳은지 공동체 내 다른 사람에게 거리낌 없이 물어볼 수 있는 태도에 기반할 때 가능한 것”이라며 상호 심의에 열린 자세를 가질 것을 강조했다. 정 강사 역시 “공적 담론에 적극 참여해야 시민이 자신의 개인적이고 특수한 경험에서 나온 판단을 보편적 담론 안에서 점검할 수 있다”라며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교류의 가치를 전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관료제 대의민주정 체제와 자본주의는 현대문명을 가능하게 했고,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동시에 인류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선물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각자의 진실이 파편화되고, 서로가 공유하는 현실이 좁아지는 탈진실이 발생했다. 아렌트는 그 끝에 정치의 상실과 인간성의 소멸이 올 것을 경고한다. 탈진실 시대 너머로 나아가는 것은 이제 피할 수 없이 눈앞으로 다가온 숙제이며, 이제는 그 너머로 나아가기 위한 사회적 숙고가 필요한 때다.

 

삽화: 박재아 기자 0204jae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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